‘이상한 나라의 동물원’ 전시 진행 백화점 곳곳에 미술 작품 설치
가벽 없애고 전면 통유리 도입…밝은 빛 드는 갤러리로 동물원 느낌 살려
BTS RM·뷔가 선택한 작가, 대전 신세계에서 작품으로 만날 수 있어

김우진 작가의 ‘도그(Dog)’. (사진=최수진 기자)
김우진 작가의 ‘도그(Dog)’. (사진=최수진 기자)
‘지인이 대전에 놀러 올 때’, ‘대전 관광 알고리즘’ 등을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한 이미지가 있다. 대전에 오면 칼국수 또는 두부두루치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유명 빵집 성심당을 들른 뒤 집에 보내면 된다는 내용이다. 더 이상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즐길거리가 적다는 의미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전을 나타내는 하나의 밈(meme)으로 통한다. ‘노잼’ 도시다.

그런데 이 관광 코스에 얼마 전 한 곳이 추가됐다. 2021년 8월 유성구 도룡동에 문을 연 ‘대전신세계 아트앤 사이언스점’이다. 특히 미술 전시를 중심으로 볼거리가 많다는 게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모여들고 있다. 신세계는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백화점 어디든 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콘셉트다.

올해는 5월 가정의 달과 6월 환경의 달을 맞아 ‘이상한 나라의 동물원’을 주제로 전시를 준비했다. 4월 28일 대전을 찾았다.
이정윤 작가 '아빠의 서커스' 작품.  (사진=최수진 기자)
이정윤 작가 '아빠의 서커스' 작품. (사진=최수진 기자)
“갤러리가 이렇게 밝아?”…상식 깨버린 이색 시도백화점 1층 정문으로 들어가자 2층에 놓인 알록달록한 거대한 조형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강아지의 모습을 한 5m가 넘는 대형 풍선이었다. 이 작품은 김우진 작가의 ‘도그(Dog)’로, 한쪽 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김 작가는 버려진 플라스틱 의자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작품을 주로 만들며 지난해 말에는 방탄소년단(BTS) 뷔가 구매한 작품을 만든 것으로 입소문을 탔다.

‘도그’는 이번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가장 부피가 크다. 신세계는 제일 큰 제품을 전략적으로 메인 공간에 배치했다. 대전 신세계의 전시 사업을 총괄하는 오명란 신세계갤러리 수석큐레이터는 “백화점 입구부터 갤러리로 꾸며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목표다. 이걸 보고 궁금증이 생기면 갤러리가 있는 6층으로 올라와 다른 작품도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내부.  (사진=최수진 기자)
갤러리 내부. (사진=최수진 기자)
‘도그’ 바로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니 신세계의 아트 갤러리가 나왔다. 가장 먼저 고객을 맞는 것은 이정윤 작가의 ‘아빠의 서커스’란 작품이다. 3m 크기의 코끼리가 서커스 모자를 쓰고 앉아 북을 치는 모습이다.

오 큐레이터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코끼리를 인간에 비유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라라며 “가정의 달과 환경의 달을 맞아 의미 있는 작품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갤러리 밖에서도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 큐레이터는 “개관 2년을 앞둔 만큼 이제 전시장 성격을 잡아야 하는 시점”이라며 “백화점은 상업적인 곳이다. 고객을 그러모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있다. 이번 전시도 그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갤러리 외벽.  (사진=최수진 기자)
갤러리 외벽. (사진=최수진 기자)
갤러리에 들어가자 어딘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전면 통유리를 그대로 개방해 331㎡(100평)가 넘는 공간을 밝게 비추는 햇빛이었다. 통상 갤러리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두운 공간에서 핀 조명이 작품을 비추는 모습이다. 햇빛으로 인한 작품 손상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관람객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세계는 통유리로 막았던 가벽을 과감하게 없앴다. 오 큐레이터는 “주제가 ‘자연 친화적인 동물원’이라 창을 개방해 빛을 넣었다. 어색하지만 여러 시도를 해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갤러리 안에 전시된 작품은 총 80여 점이다. 그림·조형물·그래피티(벽에 낙서로 흔적을 남기는 예술)·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갤러리 외벽.  (사진=최수진 기자)
갤러리 외벽. (사진=최수진 기자)
입구로 들어가 바로 보이는 오른쪽 벽면에는 곽수연 한국화 작가의 대형 그림이, 왼쪽 벽면에는 자수로 그림을 그리는 백은하 작가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갤러리 가운데는 김우진 작가와 백윤호 작가의 업사이클링 작품이 있고 통창 바로 앞에는 이상수 작가의 홍학 다섯 마리가 자리 잡고 있다.

오 큐레이터는 “유리 너머로 갑천이 보인다”며 “홍학을 여기에 배치해 갑천과 어우러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번 전시에는 강민규·곽수연·민지·이원경·이종서·이정윤·염석인·최혁·황중환 씨 등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작고한 김중만 사진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김우진 작가는 전시회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백화점에서 진행하는 전시를 좋아한다”며 “상업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를 긍정적으로 본다. 시대가 변해 미술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왔기 때문에 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백화점과의 협업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 내부.  (사진=최수진 기자)
갤러리 내부. (사진=최수진 기자)
백화점 곳곳이 ‘갤러리’…42층 올라가 보니“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서울의 한 갤러리에 다녀가면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덴마크 출신의 ‘올라퍼 엘리아슨’이라는 설치 미술가가 있어요. 그 작가의 작품이 여기에도 있는 것은 모르셨죠. 심지어 그 작가만을 위해 한 층을 전부 사용해요.”
디 아트 스페이스 193.  (사진=최수진 기자)
디 아트 스페이스 193. (사진=최수진 기자)


현장에서 만난 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신세계는 이번 전시 외에도 다양한 공간에서 상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가 대표적이다.

오 큐레이터는 “문화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중앙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며 “우리는 대전에서 지역 문화와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 모든 시도가 대전에서 미술과 관련한 기회를 얻기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전 신세계과 연결된 엑스포타워 42층 ‘디 아트 스페이스 193’에 있는 엘리아슨 전시는 대전 신세계에서 가장 공들인 공간이기도 하다. 계절과 날씨·시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 특징으로, 현장에 설치된 7개의 조형물과 벽면, 창문쪽 커튼까지 모두 작품에 해당한다.

엘리아슨에 대한 신세계의 애정은 관람 조건에서 잘 나타난다. 가까이에서 보고 관찰해야 하는 조형물이라 영유아의 입장은 불가하다. 초등생은 보호자 동반 시에만 들어올 수 있다. 또, 인파가 몰리면 제대로 된 관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30분당 1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사진=최수진 기자)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사진=최수진 기자)
오 큐레이터는 “컬러 시트지를 통해 빛을 투과시켜 시간대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며 “석양이 질 때 방문하면 가장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엘리아슨의 전시는 환경의 달 전시와도 연관이 있다. 작품을 통해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작가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엘리아슨은 2019년 유엔개발계획의 재생 에너지와 기후 변화 대응 친선 대사로 임명될 만큼 적극적으로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사진=최수진 기자)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사진=최수진 기자)
신세계는 5월부터 한시적으로 엘리아슨 전시를 무료로 개방한다. 4월까지는 성인 기준 1만8000원의 입장료를 받았지만 전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무료 전시로 전환한다.

신세계에 있는 조형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밖에 디 아트 스페이스 193 41층에는 원투차차차(OTC) 작가의 스툴이, 백화점 7층에는 이본규 작가의 조형물이, 6층 테라스에는 최병훈 작가의 아트벤치 조형물이, 2층 입구에는 채미지 작가의 손수건 조형물이 있다.

앞으로도 신세계는 대전 신세계를 아트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대전에는 갤러리나 전시 공간이 생각보다 없어 고객들이 전시를 어색해 한다. 친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다양한 아이템을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