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더현대 서울의 한 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김기남 기자
더현대 서울의 한 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김기남 기자
대표적 오피스 상권인 여의도와 판교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백화점 등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소비자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게임 체인저의 등장이 상권의 ‘고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것이다.

대형 쇼핑몰의 등장은 기존 상권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시너지를 내기도 했고 블랙홀처럼 기존 고객인 직장인과 새로운 소비자를 독식하기도 했다. 어쨌든 여의도와 판교는 이제 주말 수요도 생겼다. 복합 상권으로서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재택근무 해제와 게임 체인저의 등장이 맞물린 여의도와 판교역 상권의 변화를 살펴봤다.
◆여의도 찾는 젊은이들
여의도IFC몰 모습. 사진=김기남 기자
여의도IFC몰 모습. 사진=김기남 기자
“더현대 서울 들어서고 젊은 친구들 방문이 많이 늘었어요. IFC몰은 집객 효과를 봤죠.”

서울 여의도역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4월 20일 점심 여의도를 찾았다. 삼삼오오 모여 바쁘게 거리를 걷는 직장인들 속에 에코백을 든 20대 방문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더현대 서울과 IFC몰을 찾았다.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햄버거 매장에서 만난 대학 3학년생 김 모 씨는 “팝업스토어도 많이 열리고 좋아하는 식품 브랜드나 유명한 보세 매장도 입점해 가끔씩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현대 서울에서 쇼핑이 끝나면 IFC몰로 향한다고 했다. “뭘 사지 않아도 구경을 하거나 애플 스토어(2호점)를 방문하기 위해 간다”고 덧붙였다.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 여의도가 달라졌다. 평일 점심과 저녁 시간에만 붐볐던 여의도역은 이젠 하루 종일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여의도역 지하와 연결된 더현대 서울과 IFC몰에 찾아가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일평균 승하차 인원은 5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약 약 4만6000명) 유동 인구를 훌쩍 뛰어넘었다.

복합 쇼핑몰은 20대만 홀린 게 아니다. 여의도 상권의 중심이었던 3040 직장인들도 더현대 서울과 IFC몰에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한다. IFC몰에 있는 독일계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서 모(33) 씨는 “구내식당이 없어 외부에서 점심을 사 먹는데 요새는 쇼핑몰에서 밥과 커피를 모두 해결한다”며 “저녁 약속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주말 공동화 현상도 옛말이 됐다. 더현대와 IFC몰에는 주말에도 사람이 몰렸다. 빅데이터 전문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더현대 서울과 IFC몰에 방문하는 이용객의 주말 비율은 약 25% 정도다.

유통 기업들은 체험형 매장 등 다양한 경험 콘텐츠로 젊은이들의 취향을 사로잡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공유를 적극 유도했다. 특히 기존 팝업 행사가 패션과 잡화 브랜드 중심이었다면 더현대 서울에선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부터 완성차 업체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팝업 행사를 꾸준히 열고 있다.

성적도 좋다. 2021년 2월 출점한 더현대 서울은 1년 만에 매출이 8000억원을 넘었고 2023년 1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지난 2년간 문을 연 팝업스토어는 총 321개, 방문객은 약 460만 명이다. 서울 시민 두 명 중 한 명꼴로 더현대 서울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셈이다. 지난해 IFC몰은 2012년 몰을 오픈한 이후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약 30% 늘었다.

임대료는 덩달아 올랐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여의도 IFC몰의 3.3㎡당 임대료는 2019년 약 36만원에서 2022년 약 74만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기존 여의도 상권도 부활 신호탄?
여의도 백화점 지하 1층 식당가의 한 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한경비즈니스
여의도 백화점 지하 1층 식당가의 한 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한경비즈니스
여의도역 기존 상권도 지난해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재택근무가 풀리면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여의도역 상권의 올해 2월 총 매출은 658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54% 증가했다. 식당·카페 등 음식점 매출(약 335억원)이 압도적으로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이는 작년 2월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뛴 수치다.

샛강역 인근 직장인 김 모(30) 씨는 “거리도 멀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식대로는 더현대나 IFC몰의 물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여의도백화점·전경련빌딩·백상빌딩·종합상가 등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밥 한 끼 먹으려면 미리 가거나 예약해야 한다”며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건물 서너 곳을 돌아다녀야 할 만큼 만석인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으로 여의도백화점 지하에 있는 진주집 등 맛집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76~83㎡(23~25평)대인 이곳 음식점들은 대부분 25년 이상 자리 잡은 곳이다. 최대 40년 넘게 장사하는 곳도 있다. 유명 맛집 몇 곳은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보증금은 5000만원, 임대료는 300만원이다. 권리금은 1억원이 넘는다.

전문가들은 기존 여의도역 상권과 복합 쇼핑몰을 별개의 상권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여의도역 인근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밥집 위주의 상권이었다면 복합 쇼핑몰은 각종 팝업 행사로 문화생활을 소비자에게 제공해 새로운 유입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김유리 나이스지니데이타 연구원은 “여의도는 더현대 서울이 생기기 전부터 야간 매출이 많은 상권이었고 더현대와 여의도의 주요 상권은 업종 구성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면서 “더현대 서울이 기존 상권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분석했다 .

그는 “백화점이 출점할 때 해당 지역 상권과 상호 보완적인지, 대체적인지에 따라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며 “판교 현대백화점은 기존 상권과 업종이 겹쳐 출점 이듬해인 2016년 평일 점심 장사가 핵심인 인근 가게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다만 “주말과 야간 매출이 높은 업종은 백화점 입점 후 오히려 매출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명암 갈린 판교
4월 21일 경기도 판교를 찾았다. 한국 ‘재택 1번지’로 변했던 판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분당선과 경강선이 정차하는 판교역 출입구로 이용객들이 쉼없이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 사태로 2년 넘게 재택근무를 유지하던 카카오·넥슨·엔씨소프트·한글과컴퓨터 등 이곳 대표 기업들이 대면 근무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2만 명대로 급감했던 판교역 일 사용자는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인 4만 명대로 회복됐다.

출입구 밖으로 나오자 공사판으로 둘러 있던 판교역 인근이 드라마틱하게 변한걸 볼 수 있었다. 먼저 대형 빌딩 4개와 이를 한 번에 연결하는 ‘공중 보행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카카오·네이버 등 굵직한 정보기술(IT) 공룡 기업이 입주한 ‘알파돔시티’와 스카이 브리지 ‘컬처밸리’다. 총사업비 5조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 ‘판교 알파돔시티’가 작년 완전 준공돼 판교의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지하 1층부터 지상 1~3층에 들어선 상가는 인파로 북적였다. 옥복수산 등 일부 음식점에선 점심시간에 줄을 서야 했다. 각 건물 1층에는 편의점과 투썸플레이스·올리브영·탑텐·파리바게뜨 등이 입점해 있었고 2~3층엔 은행·병원·약국 등 편의 시설과 각종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지하철과 연결돼 있고 4개 건물 안에서 갖출 것은 다 갖춘 ‘쇼핑몰’ 같은 형태였다.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판교역 상권의 월평균 매출은 444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369억원) 월평균 매출과 비교해 20% 증가했다. 식당·카페 등 음식점 매출(올해 2월 약 215억원)이 1년 만에 2배 이상 뛰면서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했다.
‘알파돔시티’와 스카이브릿지 ‘컬쳐밸리’ 모습. 사진=한경비즈니스
‘알파돔시티’와 스카이브릿지 ‘컬쳐밸리’ 모습. 사진=한경비즈니스
하지만 4개 건물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힐스테이트’와 ‘라스트리트’ 상가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같은 프로젝트로 묶였지만 상가에 공실이 가득했다. 현대백화점 바로 맞은편에 있어 분양 당시 판교 역세권 상가 중에서도 황금 입지로 꼽혔던 힐스테이트 상가는 90% 이상이 공실로 남아 있는 상태다. 안쪽에는 부동산이 즐비했고 그나마 현대백화점과 마주보는 대로변에 편의점과 스타벅스, 핫도그와 스시 등 한두 개의 음식점이 입점했다.

라스트리트 상가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사정은 조금 더 낫다. 1‧2동으로 구성된 이 상가는 총 69개 점포 중 공실이 25% 정도였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분양가는 높은데 상가의 위치가 현대백화점을 방문하는 유동 인구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동선에 있고 4개 건물 내에서 밥·커피·병원·약국 등 모든 소비가 가능해 굳이 대안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직장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대백화점이 소비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네이버웹툰에 다니는 직장인 이 모(30대) 씨는 “일반식은 무료고 유료로 샐러드나 도시락도 살 수 있어 주로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소속 김 모(30대) 씨는 “주 2회 정도는 팀원들과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맛집을 가는데 아비뉴프랑 등 기존 상권을 찾거나 회사 건물 내 맛집 또는 현대백화점 지하 식당을 간다”고 말했다.
힐스테이트 판교역 1층 상가에 ‘임대 문의’ 딱지가 붙어있다. 사진=한경비즈니스
힐스테이트 판교역 1층 상가에 ‘임대 문의’ 딱지가 붙어있다. 사진=한경비즈니스
◆MZ세대와 남성 지갑 타깃하는 현대百
궁금해서 현대백화점도 방문했다. 금요일 낮 시간에도 젊은 커플과 가족 등 곳곳에 사람들이 보였다. 명품관은 대기표를 받아야 했고 5층에 문을 연 ‘디즈니 100주년’ 기념 팝업스토는 북새통을 이뤘다.

2015년 8월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2022년부터 명품관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고객을 타깃해 리뉴얼을 단행했다. 판교 신흥 부자들의 구매력이 입소문 나면서 럭셔리 브랜드가 줄줄이 입점 대기 중이다. 상반기 중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마르지엘라와 이탈리아 럭셔리 패딩 브랜드 에르노 등이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입점한 럭셔리 브랜드 수는 75개로 전년 3월 대비 40% 늘었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발판삼아 연내 매출(거래액) 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2층에 MZ세대를 위한 편집숍을 마련했다면 6층은 남성을 겨냥해 ‘럭셔리 멘즈관’으로 꾸몄다. IT 전문직 등 고소득 남성 고객이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은 루이비통·디올·구찌·톰포드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물론 고급 시계 전문관까지 열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판교는 원래 영 리치 고객이 많은 상권인데 코로나19 사태 때 IT 업종의 연봉이 오르면서 남성 고객이 새로운 타깃으로 부상했다”며 “강남권 백화점과 경쟁해 이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판교역 상권을 방문한 이용객 중 40대 남성이 월평균 지출의 26%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이어 30내 남성(17%)과 50대 남성(13%)이 뒤를 이었다. 여성의 소비는 30대 12%. 40대 10% 수준에 그쳤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왼쪽)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힐스테이트 판교역. 사진=한경비즈니스
현대백화점 판교점(왼쪽)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힐스테이트 판교역. 사진=한경비즈니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