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미·중 샌드위치 신세 된 한국 반도체, ‘슈퍼 을’만이 살길
한국 반도체 슈퍼 을(乙) 전략
전병서 지음 | 경향BP | 2만3000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K-반도체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온 한국 반도체산업은 글로벌 수요 감소에 따른 시세 하락 등의 여파로 2022년 말부터 부진을 이어 가고 있어 실적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미·중 첨단기술 패권 전쟁에서 한국 반도체는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수 없는 샌드위치 신세다. 한국은 반도체산업 구조상 생산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고 수요와 관련해선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신냉전 시대에서 한국 반도체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중국통’인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저서 ‘한국 반도체 슈퍼 을(乙) 전략’을 통해 한국 반도체가 지금 당장 취해야 할 11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먼저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 소장은 반도체는 한국을 지킬 ‘최종 병기’이자 ‘국가 대항전’이라고 정의하며 지금 반도체산업을 재벌의 수익 사업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도 국가의 명운을 건 안보산업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반도체 전쟁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전 소장은 미국의 동맹에서 벗어나는 두려움과 중국의 보복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하며 ‘발상의 전환’을 역설한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 낀 나라지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미·중을 연결하는 국가일 수 있다.

한국은 미국에는 ‘안보’를 제공하고 중국에는 ‘심장’을 제공할 수 있어 양국 모두에게 필요한 국가다. 한국은 미·중에 ‘보복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든 구슬려야 하는 ‘협상의 대상’이라는 게 전 소장의 진단이다.

미국과 일본이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것은 한국에게 반드시 악재일까. 전 소장은 ‘단기로는 악재, 장기로는 호재’라고 본다. “당장 한국 기업들의 중국 메모리 공장들이 타격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메모리의 공급 부족을 불러오고 중국과의 메모리 기술 격차를 더욱 커지게 만들어 추격자를 없애는 효과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 소장은 한국 반도체가 미·중이 무시 못 할 ‘슈퍼 을(乙)’의 길을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ASML은 최첨단 공정에 필수인 노광장비를 세계 시장에 독점 공급해 업계에서 ‘슈퍼 을’로 불린다.

미국·대만·한국은 경쟁적으로 2024~2026년을 목표로 5나노미터(nm) 이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있다. 업계에선 생산 공장을 짓는 것은 반도체 기업 마음이지만, 완공은 ASML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소를 위한 유럽 출장길에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도 네덜란드의 ASML이었다.

대체 불가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 반도체 전쟁 승부의 키를 ASML이 쥐고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 소장은 “기술 격차가 아닌 대체 불가 기술이 답”이라며 “반도체 세계 1위는 불황에 자기자본 이익률(ROE)을 계산해서 투자를 축소하는 전략이 아니라 투자 확대로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대불황에 빠진 지금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수익 부진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전 소장은 오히려 지금 담대한 투자가 해법이라고 말한다. 반도체산업의 47년 사이클에서 보면 끝나지 않은 불황은 없었고 끝나지 않은 전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대불황의 경기 하강기에 한국은 담대한 투자로 하수 죽이기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전략은 반도체를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서 ‘다이아몬드 알을 낳는 거위’로 키우는 것이다. 전 소장은 “책에서 제시한 11가지 담대한 책략으로 메모리에서 세계 제패를 이루면 한국의 반도체는 미·중이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슈퍼 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전병서 소장은

반도체 산업과 중국 경제 관련 손꼽히는 ‘중국통’이다. 여의도 금융가에서 17년간 반도체·정보기술(IT)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애널리스트 시절엔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도 수차례 선정되며 반도체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중국 베이징 칭화대 석사, 상하이 푸단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이자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다.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에게 중국경제론, 중국자본시장론, 중국 비즈니스 사례 분석, 국제금융 이슈 분석, 글로벌 공급망 분석 등을 강의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