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교 이야기할머니



어릴 적 방학이 되면 늘 찾던 할머니 댁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를 모티브로 시작한 이야기할머니 사업이 어느덧 15주년을 맞았다. 2009년 경북에서 30명을 배출한 이 사업은 올해 3000명이 넘는 이야기할머니를 배출·양성했다. 올 초 모집에서는 전국 500명 선발에 3352명이 지원해 경쟁률 6.7대1을 기록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2014년 이야기할머니로 선발돼 올해 10년 차가 된 오춘교 씨는 “10년 동안 이야기할머니를 했지만 늘 아이들을 만나기 전날에는 설렌다”고 말했다. 여성 노년층에게 인생 2막의 설렘을 안겨주는 직업, 이야기할머니에 대해 들어봤다.
△2014년부터 시작해 올해 이야기할머니 10년 차를 맞은 오춘교 씨.
△2014년부터 시작해 올해 이야기할머니 10년 차를 맞은 오춘교 씨.
요즘 이야기할머니가 노년층 사이에서 인기라고 들었어요. 어떤 일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야기할머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 같은 기관에 방문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나 미담을 들려주는 일을 해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함양시키고, 세대 간 단절된 부분을 소통시키는 역할이에요.”

아이들에게 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나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혜나 정직, 효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선정해요. 현재까지 총 220편으로, 선현미담 134편, 우리 옛이야기 86편으로 구성돼 있어요.”

이야기 발굴 과정

-이야기 소재 : 우리 옛이야기와 선현미담
-이야기 수 : 총220편(선현미담 134편, 우리 옛이야기 86편)
-내용(주제) : 선행, 지혜, 보은, 효, 나라사랑, 검소, 감사, 우애 등


일주일에 몇 번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나요.
“전 일주일에 3회, 집 근처 어린이집 두 곳과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방문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일주일에 3회를 기본으로 이야기할머니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요.”

시간과 수당은 정해져 있나요.
“보통 어린이집을 방문하면 아이들과 교감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20분 정도 걸려요. 수당은 회당 4만 원 정도 책정됩니다.”

이 일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가 10년 차예요. 젊었을 땐 회사생활을 한 적도 있었지만 전업주부로 긴 시간을 보내왔었죠. 아이들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손자 손녀를 제가 돌봤어요. 손주들을 돌보는 과정이 참 힘들었는데, 그만큼 또 보람과 행복도 있더군요. 그 무렵 이야기할머니로 활동 중인 친구가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해 도전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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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할머니 지원방법

-만 56세~만 74세 사이의 여성 어르신
-정확한 언어 구사능력을 갖추신 분
-자원봉사자로서의 의지와 사명감을 높은 분
-건강이 양호한 분
-교육과정 수료 후 현장 활동이 가능한 분

지원서류

-지원서 1부 / 자기소개서 1부 / 개인정보 수집·이용동의서 1부 / 주민등록초본 1부


이야기할머니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매년 이야기 할머니를 모집하고 있어요.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에 합격하면, 합격자에 한해 7개월 간 이야기할머니 양성교육을 받게 됩니다.”

합격 당시인 10년 전에도 경쟁률이 치열했나요.
“당시에도 6대1 정도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서류합격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솔직히 좀 놀랐어요. ‘과연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면접에서는 어떤 질문들이 나왔나요.
“여러 질문들이 나왔는데, 아주 현실적인 것들이었어요. ‘어린이집 원장님과 트러블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전 원장님과의 트러블 이전에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겠다고 말한 것 같아요.”

오래 전이지만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전업주부로 오랜 시간을 보낸 저로서는 어느 분야에 도전을 해본 기억이 없었어요. 이야기할머니에 도전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될까’라는 걱정이 더 앞섰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무렵 합격명단에 제 이름을 보고 정말 감격했죠. 제 평생에 이런 기쁨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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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이후 교육기간에는 어떤 걸 배우게 되나요.
“그 기간 동안에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잘 들려줄 수 있는 방법들을 교육받아요. 이야기 작품을 전달 받아 집에서 연습 한 뒤 발표를 하는 방식이에요. 대다수의 이야기할머니들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이 과정을 통해 연습을 하는 거죠.”

기관 배치는 어떤 식으로 정해지나요.
“저희 땐 1년에 세 곳을 배정 받아 활동을 했었어요. 요즘엔 처음 1년은 두 군데를 배정 받아 활동하고 이듬해부터 세 곳으로 늘리는 걸로 알아요.”


“이야기할머니 만 56세~74세 여성만 지원 가능···언어 구사 능력 및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연기력도 중요해”



이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요.
“사업명이 이야기 할머니잖아요. 그래서 연령 제한이 있어요. 만 56세부터 74세까지인데, 나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건강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정확한 언어 구사 능력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지혜와 꿈을 심어준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꼭 필요한 능력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옛날을 배경을 한 주제가 많아요. 그래서 말투가 예스럽죠. 그런 말투를 맛깔스럽게 살리기 위해 평소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 연습을 해요. 밋밋한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금세 딴짓을 하거든요.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추기 위해 드라마 보면서 대사를 따라하면 옆에 있던 남편이 웃기도 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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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이들이 집중력이 짧아 이야기를 전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언제 가장 힘드세요.
“일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를 아이들이 잘 안 들어 줄 때 속상하죠. 간혹 집중 못하는 아이들이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이상한 소리를 낼 때도 있어요. 처음엔 이야기 중간에 질문을 하거나 말을 끊는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솔직히 몇 번 못하겠다고 말하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한 알의 밀알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다시 가다듬고 다시 시작했죠.”

반면, 이야기할머니의 매력은 뭔가요.
“이 일은 제 삶의 활력소예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은 아침부터 설레요. 그래서 전날부터 뭘 입고 갈지 고민하는 자체가 저에겐 행복이죠.”

최근 이야기할머니에 관심 갖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분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해 주실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야기할머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해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마음을 읽어줄 수 있다면 이미 이야기할머니의 자격을 갖췄겠죠. 더불어 활동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런 부분을 해결할 방법은 연습이에요. 물 흐르듯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하면 최고의 이야기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