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난해 4월 초진부터 원격의료 허용…산이 많고 인구 밀도 낮은 지역 중심으로 보급률 높아

[글로벌 현장]
일본의 원격의료 현장 모습.(사진=정영효 특파원)
일본의 원격의료 현장 모습.(사진=정영효 특파원)
노나카 후미아키 나가사키의대 조교수 “쓰와타리 씨 안녕하세요, 잘 들리세요?
쓰와타리 도시카즈 “네, 잘 들립니다."
노나카 조교수 “혈압과 맥박은 어떤가요?”
이와다 쇼고 이동식 원격 진료 전담 간호사 “맥박은 80회, 혈압은 97~148입니다.”

일본 나가사키현 고토시의 이동식 원격 진료의 실제 모습이다. 일본 서쪽 국경의 섬 고토열도의 주민들은 올해 1월 23일부터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고토시 외에 나가노현 이나시 등 7개 지역이 올해부터 이동식 원격 의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낙도와 산간 지역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은 작년 4월 원격 의료를 전면 허용했다. 한국은 올해 6월 원격 의료를 통과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원격 의료의 쟁점 가운데 하나가 초진, 즉 첫 진료부터 원격 의료를 허용할 것이냐다.

초진부터 원격 의료 허용한 일본

한국은 초진을 재외하는 방향으로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초진부터 원격 의료를 허용한다. 작년 9월 30일부터 약국도 원격 의료가 가능해졌다. 약사가 자택에서 온라인으로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고 복약 지시도 가능하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원격 의료를 허용했다. 의료진과 병원이 사라진 지역의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10년 넘게 원격 의료를 운영해 본 결과 오진 등의 문제가 없었다. 초진에 대한 원격 의료 수요가 높다는 점도 반영됐다.

한국도 원격 의료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의 99%가 감기 등 경증으로 찾는 초진 환자다. ‘재진 환자 중심’의 원격 의료 제도화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 모두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초진부터의 원격 의료를 일시적이라는 조건을 붙여 전국적으로 허용했다. 2020년 2월 실시한 한국이 일본보다 두 달 더 일렀다. 일본은 ‘일시적’이었던 의료법상의 문구를 ‘영구적’으로 바꾼 게 한국과의 차이다.

일본 의사들도 원격 의료에 강력히 반대했다. 소득이 줄기 때문이었다. 마에다 다카히로 나가사키의대 낙도의료연구소장은 “코로나19 확산과 생활의 편리성, 낙도의 의료 지원 등의 측면에서 원격 의료의 장점을 받아들이자는 방향으로 변해 갔다”고 말했다.

류머티즘 전문의이기도 한 마에다 교수에 따르면 일본 의사협회는 원격 의료를 먼저 허용한 나라들의 사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의사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원격 의료를 일찍 받아들인 의사와 그러지 못한 의사의 양극화가 벌어졌다. 일본 의사협회가 시대의 흐름인 원격 의료를 거부하기보다 빨리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다.

2020년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원격 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성인은 30%대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지 1년 뒤인 2021년 3월 이 비율은 45%까지 높아졌다. OECD 국가 중 한국 등 6개국을 제외한 32개국에서 원격 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도 2022년 12월 28일 기준 원격 의료가 가능한 의료 기관의 비율이 16.1%까지 올랐다.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4월 27일의 9.7%보다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일본에서 원격 의료가 가능한 의료 기관이 가장 많은 현은 야마가타현(41.8%), 나가노현( 38.8%), 고치현(37.9%)의 순이다. 모두 산이 많고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이다. 원격 의료의 메리트를 실감하기 좋은 지역일수록 보급률도 높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방 소멸 막는 일본의 원격 의료

고토시 등 7개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이동식 원격 의료는 원격 의료가 지역 사정에 맞게 진화한 형태다. 고토열도는 나가사키시에서 100km 떨어진 섬이다. 페리로 4시간, 고속선으로 1시간 30분, 비행기로 35분이 걸린다. 고속선 편도 요금은 9000엔, 비행기는 1만1500엔이니 본토를 오가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제주도와의 거리도 180km로 멀지 않다. 면적은 420㎢로 강화도만 하다. 낙도지만 인구 3만7000명의 규모가 있는 섬이다.

한국의 지역 공공의료원이 연봉을 3억~4억원씩 내걸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것과 달리 고토열도에는 의사도 많다. 현재 28개 의료 기관에 66명의 의사가 근무한다. 고토시에는 인구 238.4명당 1명의 의사가 있다. 일본 전체 평균인 267명당 1명과 나가사키현의 333명당 1명에 비해 의사가 많은 지역이다.

문제는 병원과 의사가 고토시에 몰려 있다 보니 섬의 다른 지역 주민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의사가 도시에 몰려 있는 점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섬 반대편 마을 다마노우라초에서 고토시를 가려면 하루 세 편뿐인 노선 버스로 80분이 걸린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58.6%에 달해 병원 가기를 포기한 사람이 늘어났다.

낙도일수록 고령화율은 더 높다. 일본 전체와 나가사키현의 고령화율이 각각 29.1%, 33.7%인 데 비해 고토시는 42.1%다. 고령화율이 50%를 넘는 지역도 적지 않다.

고령자들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면 만성 질환이 중증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안방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받는 의료가 아니라 이동식 원격 의료가 ‘의료 난민’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진화형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이동식 원격 의료가 일반적인 원격 의료와 다른 점은 원격 의료 시설을 갖춘 차량이 간호사를 태우고 환자의 자택 근처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간호사가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재고 의사가 쓰는 전문 용어를 설명해 준다.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고 정보기술(IT) 기기 사용이 서툰 데다 의사들의 전문 용어를 어려워하는 고령자에게 맞춰 진화한 서비스다. 의료보험증 번호를 입력하는 일 등등 고령자들이 낯설어하는 절차를 동승한 간호사가 도와준다.

원격 의료는 고령화와 지역 쇠퇴로 의료 체계가 붕괴될 위기를 맞은 산간·도서 지역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에는 255개의 유인도가 있고 일본인 61만4453명(2018년)이 낙도에 거주한다.

나가사키의 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12만3048명으로 가고시마·오키나와에 이어 셋째로 많다. 왜 나가사키에서 이동식 원격 의료가 가장 먼저 시작됐을까. 나가사키는 가파른 언덕이 많은 항구 도시다. 이 때문에 원래부터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방문 의료가 번성한 지역이다. 여기에 일본 최고 수준의 의료 정보 시스템을 일찍부터 갖췄다는 점이 원격 의료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

가와카미 아츠시 나가사키대 대학원 의사약학종합연구소 주임교수는 “나가사키현 환자의 40% 이상이 적어도 1회 이상 이 시스템을 사용할 정도로 나가사키현은 사물인터넷(IoT) 환경이 확립돼 있다”고 설명했다.

가와사키 교수는 이어 “방문 진료가 활성화돼 있고 IoT 환경이 갖춰진 점이 합쳐져 앞으로 원격 의료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원격 의료는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안고 있는 문제인 지방 소멸을 막는 데도 기여한다. 고토열도는 꽤 외진 섬이지만 지난 5년간 1000명이 넘는 이주자가 유입됐다. 대부분 온화한 기후와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찾아 온 30~40대 육아 세대였다.

고토시가 2021년 3월 실시한 조사에서 ‘고토시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응답이 72%에 달했다. 반면 53%가 ‘의료 서비스가 충실하지 않다’고 답했다. 고토시가 이동식 원격 의료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돈이 들지도 않았다. 이동식 원격 의료 차량을 도입하는데는 4818만 엔이 들었다. 모두 중앙 정부의 ‘디지털 도시 구상 사업’ 예산과 ‘지역 의료 체계 강화’ 지원금으로 해결했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