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위해 정부 지출 늘려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
정권 탈환해야 하는 공화당
재정 개혁 놓고 갈등, 저소득층 급식 프로그램도 쟁점으로 떠올라

[경제 돋보기]

미국의 연방 정부 부채 증액 협상 타결 불발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1주일 앞으로 다가온 해외 순방 일정을 전격 변경했다. 당초 5월 19~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세계 주요 선진국(G7) 정상회의에 참여하고 바로 파퓨아뉴기니와 호주를 방문하기로 했다. 특히 호주에서는 중국 견제 목적으로 결성한 쿼드(미국·호주·일본·인도) 정상회의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G7 정상회의 기간 중에 잠깐이라도 틈을 내 쿼드 정상회의를 대신 여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지만 그만큼 미국 내 사정이 다급하다.

미국의 연방 정부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미 의회는 부채 한도를 정하고 한도 내에서 정부의 국채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은 행정부의 요청을 수용하고 있지만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현재 31조4000억 달러인 부채 한도 증액에는 동의하지만 정부 지출 삭감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즉 재정 개혁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과 하원 케빈 매카시 의장 간에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재정 적자에도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시장 기능을 중시하면서 현재의 재정 적자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디폴트가 발생하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미국 경제와 국민이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의 매카시 의장은 연방 정부 부채가 이미 국민총생산(GDP)의 120%로 높고 정부 지출을 당장 줄이지 않으면 얼마 되지 않아 더 큰 국가적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날인 5월 16일 협상에서 양측은 디폴트를 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이에 따라 월스트리트 주가지수도 오르는 등 낙관론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 디폴트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상대에게 넘기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동아시아 순방 일정을 무리하게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대책과 중국 견제를 위한 여러 가지 경제 안보 법 제정으로 미국은 엄청난 재정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미 경제가 살아났고 내년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재선을 위해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정부 지출 제한을 받아들일 수 없고 정권을 탈환해야 하는 공화당으로서는 디폴트 책임을 피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재정 씀씀이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의 디폴트 위기는 2011년 상황과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 당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듬해 재선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고 하원은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과 공화당은 선거 전략 차원에서 예산안에 대해 대립하고 있었다. 급기야 예산안 처리 시한 1시간을 앞둔 시점에 합의함으로써 연방 정부 폐쇄를 겨우 면할 수 있었다.

당시 양당은 연방 정부 부채 한도를 증액하면서 정부가 마련한 예산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385억 달러를 삭감하기로 했다. 이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디폴트 발생의 피해는 2008년 금융 위기보다 더 클 수 있다고 주장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골수 민주당 의원을 설득해 공화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결국 국정을 책임진 민주당이 양보했지만 대선에서 이겼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직후 바로 귀국하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과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시간은 채 1주일이 되지 않는다. 5월 29일이 메모리얼데이(현충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어야 하는 사항은 근본적인 의견 차이가 있어 비관론 역시 만만치 않다.

저소득층 급식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쟁점 분야다. 급식 프로그램을 유지하되 부양가족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 대해서는 의무 노동 시간을 강화해야 한다고 공화당은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와 저소득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은 현재보다 노동 조건을 강화하는 안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수백만 표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양보할 수 있겠는가.

만약 미국에서 디폴트가 발생하게 되면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금융 시장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시나리오별 가능성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세계는 미국 디폴트 우려에 긴장하는데 정쟁에 바쁜 美 [정인교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