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꽤 잘하고 있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엔진의 시대에는 한국 자동차가 유럽·미국·일본 차에 뒤졌지만 전기차 경쟁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선 ‘한국 차가 유럽 차를 앞섰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단순 통계만으로 우위를 판단하기 힘들지만 판매량도 만만치 않다. 철공소 수준에서 시작한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시대엔 유럽 명차들의 경쟁자가 됐다.
◆유럽에서 잘나간 현대차‧기아
독일 매체 WELT는 독일 수입차 시장에서 한국이 프랑스 차를 몰아내 버렸다고 극찬했다. 지난 3월엔 여러 경쟁자가 나타나고 있지만 현대 아이오닉 5에 대해 “일상적인 테스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수성을 입증했다”며 “가성비 역시 세계 최고의 전기차”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독일자동차청(KBA)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18만1213대를 판매하며 5위를 기록했다. 폭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BMW 등 독일 자동차에는 밀렸지만 포드(13만1256대)와 르노(7만9861대)는 큰 격차로 따돌렸다.
전기차 시장에서의 성적표도 좋았다. 현대차 코나와 아이오닉 5가 판매 순위 6, 9위를 기록하며 독일·이탈리아의 전기차와 경쟁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기아가 선전하고 있다. 현지 매체 더치뉴스는 지난 1월 기아가 폭스바겐을 누르고 최다 판매 차량으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지난해 3만 대 이상의 기아 자동차가 네덜란드 도로를 누볐고 폭스바겐 자동차가 2만6000대로 뒤를 이었으며 도요타는 2만5300대 팔렸고 푸조와 BMW가 4위와 5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기아는 전기차 시장에서도 점유율 23.5%를 기록했다. 기아의 니로가 가장 인기 모델로 올라섰다. 니로는 유럽에서 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전기차 등의 3가지 모델로 판매되고 있다. 유럽은 친환경차 시장이 가장 활성화해 있고 좁은 도로로 인해 낮은 차급의 차량을 선호한다. 니로가 이런 유럽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고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아는 친환경차의 대표 시장인 스웨덴에서도 EV6·니로EV 등 전기차를 내세워 선전하고 있다. 특히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 EV6는 현지에 출시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전체 판매량 상위 10위에 올랐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독일 등 유럽 10개국에서 전기차 9만6988대를 판매하며 점유율 10%를 기록했다. 전기차 전문 매체 클린테크니카에 따르면 주요 완성차 그룹별 순위로는 폭스바겐·스텔란티스·테슬라에 이은 4위였다. 현대차(판매량 5만4906대)와 기아(4만2082대)의 점유율은 각각 5.7%, 4.3%를 기록했다.
이번 집계는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을 비롯해 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스페인·이탈리아·스위스·덴마크·아일랜드·핀란드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 시장은 서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의 64%를 차지한다. ◆저가 브랜드에서 글로벌 자동차로
“싸고 촌스러운 자동차로 평가받았던 현대차가 이제는 전기차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5월 ‘현대차가 어떻게 이렇게 멋있어졌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현대차가 보여준 성장 스토리와 전기차 시장에서 약진을 집중 조명했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셋째로 많은 전기차를 판매하면서 테슬라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파른 성장세의 원동력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리더십을 꼽았다.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발 빠른 투자를 단행한 점에 주목했다. 세계 3대 디자이너로 꼽혔던 피터 슈라이어 등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선 점도 현대차의 위상과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6’가 글로벌 주요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이오닉 6는 지난 4월 뉴욕 오토쇼에서 ‘세계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6월 ‘미안해요 일론 머스크. 현대차가 조용히 전기차 시장을 지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는 “현재 업계에서 가장 핫하며 전기차다운 전기차는 현대차와 기아에서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 누적 50만 대…
중국 전기차‧IRA는 과제
현대차와 기아의 유럽 내 전기자동차 판매는 누적 50만 대를 넘어섰다. 2014년 처음 유럽에서 전기차(기아 쏘울EV)를 출시한 지 9년 만이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와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누적 기준 현대차가 27만3879대, 기아가 23만4543대였다.
현대차그룹의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2014년 662대에서 2015년 5000대를 넘어섰고 2017년 1만 대를 돌파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탑재한 모델인 아이오닉 5, EV6, 아이오닉 6 등이 유럽에서 출시되며 판매 속도는 더 빨라졌다. 2021년 처음으로 10만 대를 넘었고 2022년 14만3460대를 기록했다. 올해 1~4월 누적 판매 대수는 4만5500대였다. 이는 미국 판매량의 두 배 이상이다.
니로EV·EV6·코나EV·아이오닉 5 등이 골고루 판매됐다. 유럽은 지역 특성상 소형과 준중형으로 분류되는 B·C세그먼트 수요가 높은데 4개 차종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현대차는 올해 유럽에서 코나 일렉트릭을 출시하며 기아도 EV9을 하반기에 유럽에 공개할 계획이다.
다만 중국 전기차의 도전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실제 현대차‧기아의 올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감소세다. 유럽에선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며 현대차그룹이 타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코나가 차지했던 연간 유럽 전기차 판매 9위 자리를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가 인수한 영국 MG의 MG4에 빼앗겼다. MG4는 지난 3월 한 달 만에 7722대가 팔려 월간 유럽 전기차 판매량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도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IRA 발효 전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테슬라에 이은 시장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IRA 보조금 탈락이 최종 확정된 지난 4월 현대차 아이오닉 5의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 감소한 2323대를 팔았다. 기아 EV6(판매량 1241대)는 전년 대비 52.8% 수직 하락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기후 변화 대응을 이유로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보조금 7500달러(약 1000만원)를 지급하는 IRA를 발효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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