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펍(pub)은 영국의 오랜 문화다. 퍼블릭하우스(public house)의 준말로 모두의 공공장소라는 의미다. 빅토리안 시대 영국인들은 수질 오염이 심해지자 물보다 깨끗한 음료로 맥주를 찾았고 펍은 노동자들의 휴식처가 됐다. 그러니 펍은 유흥 주점이 아닌 사람들과 교류를 위한 노동자들의 살롱에 가깝다. 다시 바삐 일하러 가야하는 노동자들의 문화 때문인지 고상하게 앉아 먹기에 시간이 없어서인지 런던 펍에서는 대부분 맥주를 서서 마신다.
노커어퍼는 영국의 펍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게 안에는 스탠딩 테이블 몇 개와 창가 앞 의자가 전부다. 운좋게 의자에 앉더라도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테이블로 오지 않는다. 자리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출입구 정면에 있는 계산대로 가는 것이 좋다. 10시가 넘은 시간에는 손님이 많아져 그들 틈 사이를 헤집고 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스파클링 칵테일·까바·하이볼·맥주 등 여러가지 주류를 병과 잔술로 제공한다. 곁들일 수 있는 안주는 간단한 타파스 형태다. 잔술과 안주 모두 1만원대의 가격에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다. 문제는 주문한 뒤다.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가방은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하며 겨우 난간에 기대 있는 형편이다. 영국에서 펍이라는 말이 17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했으니 영국인들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서 마셔서 익숙하겠지만 좌식 문화가 발달한 우리에게는 왠지 어색하다.



노커어퍼라는 이름은 노커 어퍼(Knocker-upper)라고 불린 사람들에서 따왔다. 영국 1920년 산업혁명 시절 있던 직업이다. 교대 근무를 하던 영국 노동자들을 깨워주는 것이 이들의 일이었는데 기다란 막대로 창문을 툭툭 치거나 작은 돌을 던져 노동자들을 깨웠다. 노커어퍼를 기획한 식음료(F&B) 크리에이터 진내경(이하 내궁)은 노커어퍼에서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이 다시 한 번 깨어나길 바랐다. 그는 낯선 공간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다양한 시도로 기획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스탠딩 문화가 어색한 사람들을 위해 개업 초반에는 전혀 없던 의자를 평일에는 창가 위주로 배치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들어오라는 사인이었다. 주저하던 공간에 발을 디디면 쭈뼛대던 사람도 음악과 분위기에 금세 어우러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적인 행위를 하면서 비일상을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부담 없이 간편하게 좋은 음악과 약간의 소란 속에서 칵테일 한 잔을 마시는 일. 지친 하루가 이야기와 사람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환기된다. 낯선 공간에서 또 다른 자아가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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