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약에서 구하옵소서 10


온도와 습도가 느껴지는 말들이 있다. 케어(care)란 단어가 그렇다. ‘조심’, ‘주의’라는 뜻도 있지만 ‘관심’, ‘배려’, ‘보살핌’이란 의미가 있어 따뜻하고 촉촉하다. 케어라는 단어의 온기를 잘 전달하는 우리말은 ‘돌봄’이다.
아줌마, 요양보호사
권위적 문화가 팽배한 시절에는 보살핌과 돌봄 대신 시중이나 수발 같은 상하 구분이 뚜렷한 말들이 사용됐다. 돌봄과 보살핌에서 느껴지는 정(精)과 성(誠) 대신 명령과 복종, 지시와 수행의 엄격함과 건조함만이 감돌았다.

89세 어머니는 얼마 전 혈당 충격으로 전신 경련과 마비를 겪으셨다. 며칠간 병원에서 고비를 넘기신 어머니는 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집에 뭐가 있는데”라고 물으니 요양보호사가 기다린다고 하신다.

어머니 상태는 한계점에 이르렀고 여러 조건을 고려해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정작 고집을 부린 사람은 요양보호사였다.

집에 돌아오면 책임지고 돌보겠다고 우겨 댔다. 약을 줄이고 혈당 조절 식단과 운동, 투석과 수면 관리까지 잘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시겠다고 했다.

의사도 자식도 아닌 그녀. 그녀의 약속에서 어떤 결기가 느껴졌다. 아무도 그녀의 주장에 토를 달지 못했다. 헌신 때문이다. 헌신보다 강한 설득은 없다.

고령의 환자에게 가족이 하는 일은 심적 성원과 물적 지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육체노동은 종종 빠져 있다. 세우고 앉히고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걸어 주고 재워 주는 손과 몸이 되는 노동. 정과 성이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돌봄은 아웃소싱(outsourcing)되고 가족들은 그 ‘고역’에서 면제된다. 바쁘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언제나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바쁘다.

퇴원한 어머니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됐다. 아침에 눈 뜨면 침상에 누워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녀가 도착해야 하루가 시작된다. 밥도 먹고 세수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아들 딸보다 더 믿고 의지하신다. 생의 마지막 구간에 얻은 딸이라고 부르며 당신의 인복을 자랑하신다.
몇 해 전 국민건강보험이 제작한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아줌마~ 아줌마라니! 아줌마, NO! 요양보호사. 국가 자격 취득한 전문가. 돌봄 필요해? 싹 다 케어해. 식사, 약 챙겨드리고 병원도 같이 가는 YO, 마스터, 요양보호사~.” 그 ‘아줌마’는 요양보호사다. 그녀의 이름은 전정화다.조선족 간병인 박 씨
아버지는 작년 봄 화창한 4월 돌아가셨다. 임종한 이는 부인도 아들도 아닌 간병인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절정기라 가족 혹은 간병인 중 한 사람만 병원 상주가 허용됐다.

바쁘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34kg 노쇠한 몸으로 호흡만 유지하는 아버지 곁을 24시간 지킬 마음, 불편한 간이침대, 밋밋한 구내식당 밥, 음습한 긴장감의 병동,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까지 모두 마음에 걸렸다.

이 불편들을 금전적으로 해소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간병비 일당 13만원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3주간 중환자실 병원비보다 더 많은 간병비를 치르고 나서야 간병보험이 왜 성행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힘든 노동이 있다. 돌봄 노동이 그렇다. 특히 정서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가족 간의 돌봄이란 만만치 않다. 가급적 피하고 싶어 용역을 찾는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은 생면부지 타인에게 ‘외주’ 된다.

돌봄 노동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뉴스를 자주 접한다. 아동 보호나 요양 복지 시설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학대에 대한 공적 분노가 커졌다. 하지만 그 분노 뒤에는 가족들의 미안함과 약간의 수치가 감춰져 있다. 경제 효율이나 안전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임종 전 아버지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셨다. 아니, 전전하셔야 했다. 가족들이 당신을 건사하기엔 마음이 부족했다. 그 대신 그곳에서 만난 조선 동포 간병인을 벗삼으셨다. 박 씨 아저씨라고 했다. 둘은 함께 귤을 까 먹고 바둑을 두거나 TV를 시청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셨다.

직접 면회가 금지됐던 때라 멀리 서 안부를 물으면 아버지와 함께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걱정 마시라~.” 그 한마디가 든든했다. 그리고 미안했고 고마웠다. 삐쩍 마른 조선족 박 씨 아저씨,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의탁한 노인의 마지막 구간을 함께하고 있으리라.
홍콩 가정을 지키는 외지인들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정문 앞에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인파가 웅성인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아이들은 자기 보모를 잘도 찾는다. 찰칵, 두 손이 자석처럼 붙고 집으로 향한다. 두 손의 피부색이 다르다. 홍콩 아동들의 보모는 동남아 출신 이주 여성이다.
돌봄, 그 특별한 노동에 대하여 [몸의 정치경제학]
하교하는 아이들을 픽업하는 홍콩의 외국인 돌봄 노동자들. (사진: SCMP)

홍콩 부동산은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그래는 작은 평수에 3대가 같이 사는 경우가 흔하다. ㎢당 1만7000명, 한국의 34배가 밀집해 있다. 그 밀집 공간에 외국인 ‘가정부(domestic worker)’가 들어가 산다. 가족과 얽히고 설킬 수밖에 없다.

맞벌이는 홍콩 가정의 당연지사다. 경제적 성평등을 안겨준 영국 통치 영향도 있지만 부동산을 비롯한 살인적 물가 탓이 크다. 부모가 일로 바쁘니 아이들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보모 손에 자란다. 보모의 손을 타 친부모와의 신체 접촉을 꺼리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말이 보모지 그들의 역할은 전방위적이다. 청소·빨래·장보기·요리·설거지 등 대부분의 가사 노동이 그들의 몫이다. 거기에 아동이나 노인 돌봄까지…. 홍콩의 가정은 이 ‘외지인’들이 지킨다. 그들 없이는 홍콩 전체가 당장 마비되고 만다.
돌봄, 그 특별한 노동에 대하여 [몸의 정치경제학]
휴일을 맞아 홍콩 센트럴에 결집해 휴식을 취하는 필리핀 출신 돌봄 노동자들.(사진: 홍콩뉴스)

그들 상당수는 기혼이거나 싱글 맘이다. 본국에 두고 온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돌본다. 통상 친정 엄마의 몫이다. 한국이든 동남아든 친정 엄마는 제일 ‘만만한’ 무급 자녀 돌보미다.

장기 체류 때문에 아이들과 소원한 경우가 많다. 화상 통화로 유지되는 끈적함에는 한계가 있다. 먹이고 입히고 등하교시키는 홍콩 아이들과의 밀착도가 휠씬 높다. ‘내 새끼’가 누구냐는 필자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몇몇도 있었다.

돌봄은 늘 이렇게 엇갈려 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 뒤에는 타인의 보살핌이 있다.
돌봄 노동을 향한 경제성 논리의 우매함
홍콩의 외국인은 62만 명, 인구 750만 명의 8.4%에 달한다. 이들 중 42%에 달하는 26만 명이 가사와 돌봄 이주 노동자다. 필리핀 출신이 13만 명, 인도네시아 출신이 11만 명으로 두 나라 여성이 전체의 90%를 웃돈다.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홍콩 당국과 시민 사회의 지원은 인상적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쌓아 온 관록이 돋보인다. 물론 괄시와 착취, 성범죄와 인종 차별은 잔존하지만 그들의 존재 가치를 깊이 인식한 현지인들의 존중과 배려가 뿌리깊다.

하지만 이들의 급료만큼은 충격적이다. 법정 임금은 월 4730홍콩 달러. 여기에 1196홍콩 달러의 식비가 추가돼 총 5926홍콩 달러, 100만원이다. 지난 3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언급한 100만원은 홍콩과 싱가포르 기준을 염두에 둔 듯하다.

한국의 1.7배에 달하는 홍콩의 1인당 총소득 7000만원을 감안하면 월 100만원 급료는 거의 저주에 가깝다. 유급 연차, 병가, 공휴일 보장에 출산 휴가와 상해 보험도 필수화됐지만 혹독한 임금 착취 위 덧칠에 불과하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을 지시했다. ‘도우미’란 깜찍한 용어 뒤에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임금 착취의 비수가 도사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가사 돌봄은 가정이라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인간이라는 가장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이다. 언어와 정서 신체 접촉은 물론이고 습관, 사고방식, 시청 후 촉각의 뒤섞임이 불가피하다.

돌봄은 헌신과 감사의 교환으로 이뤄지는 인간관계의 대사(大事)다. 보살핌 노동의 소중함과 묵직함을 인력 시장 수급과 임금 효율만으로 접근하다가는 정말이지 큰 변고를 치르고야 말 것이다.
돌봄, 그 특별한 노동에 대하여 [몸의 정치경제학]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필리핀 출신 간병인. (사진: 재팬 타임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