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투자 시장 뉴 트렌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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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채는 ‘안전 자산의 대명사’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파산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국채 금리는 통상 아무리 우량한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회사채 금리보다는 낮기 마련이다. 금리는 부도 가능성에 반비례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국채 금리보다 회사채 금리가 낮은 이례적인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이 타결(5월 28일)되기 전 ‘디폴트(채무 불이행) 현실화’에 대한 시장의 위기감이 증폭되며 마이크로소프트(MS)나 존슨앤드존슨(J&J)과 같은 우량 회사채들의 금리가 미 국채보다 낮게 거래된 것이다. 시장은 미국 정부와 야당인 공화당이 결국은 협상을 타결시킬 것을 알면서도 눈앞에 벌어지는 위기감을 가격에 반영했다.

채권 시장 정보 업체인 솔브데이터는 5월 23일 “오는 8월 8일이 만기인 MS 회사채 금리는 4%를 살짝 웃돌고 있지만 8월 6일 만기인 미국 국채 금리는 5.2% 수준에서 거래됐다”고 전했다. 채권은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가격이 오르게 되면 금리가 떨어진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MS가 망할 확률이 미국이 망할 확률보다 낮다고 판단하는 투자자가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가격만 놓고 하는 말이다.

예상한 대로 미국의 디폴트는 현실화되지 않았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은 5월 28일 부채 한도를 높이기로 합의했다.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고 미 국채 금리 또한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해프닝으로만 넘기기에는 투자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시장의 불안함이 가장 극대화됐던 그 시기에 왜 월가의 큰손들이 MS나 J&J와 같은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에 주목했을까” 하는 점이다. 향후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더욱 커지더라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만큼이나 ‘망할 확률이 낮은’ 글로벌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에 대한 투자 매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한 세대만에 온 채권 투자 시대” 왜?
투자 전문 매체인 바론즈는 5월 19일 월가 채권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채권 투자의 전성시대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2022년 최악의 해를 보낸 채권 투자자들은 2023년 금리 인상기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채권의 총수익률이 주식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바론즈에 따르면 투자 등급 회사채의 금리는 2년 전 약 2.8%에서 현재 약 5%로 뛰어올랐다. 그만큼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회사채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기대도 채권 시장의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분석에 따르면 Fed는 1990년 이후 금리 인상 이후 금리를 처음 인하하기 전 평균 10개월 동안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 갔다. 채권 시장은 그때마다 기준금리 동결 초창기 채권 시장 랠리를 보인 바 있다.

Fed는 여전히 기준금리를 더 인상할 수 있다는 ‘매파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올해 상반기 금리 인상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데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추가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금리 인상이 정점에 다다랐다면 고금리에 따른 ‘이자 수익’과 함께 향후 금리가 인하되면 ‘평가 차익’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금리 인상 막바지에 특히 회사채의 인기가 높아지는 이유다.

투자자들의 관점에서 더욱 반가운 것은 미국 기업들 또한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금융 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미국 ‘투자 등급’ 기업들은 5월 들어 공격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5월 21일 기준 1120억 달러(약 148조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60억 달러)의 두 배가 넘고 전월 대비 세 배가 넘는다.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향후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될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회사채는 국채와 달리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 채권 발행 기업이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면 채권은 하루아침에 종이 조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회사채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애플과 메타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다. 신용 등급이 ‘AAA’로, ‘미국만큼 망할 확률이 낮은’ 우량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신용 평가 기관이 부여하는 회사채의 신용 등급은 원리금 지급 능력이 양호한 투자 적격 등급(AAA~BBB)과 지급 능력이 의문시되는 투기 등급(C~D)으로 나눠진다. 신용 등급이 최고 등급인 ‘AAA’가 아니더라도 투자 등급 회사들 가운데는 ‘믿고 투자할 만한 우량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국채만큼 안전하면서도 국채와 비교해 높은 금리까지 챙길 수 있는 기회가 투자자들에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시가 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5월 8일 50억 달러(약 6조6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만기 2~30년인 5가지 (2026년, 2028년, 2030년, 2033년, 2053년 만기)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이 중 30년 만기 채권 금리는 동일 기간의 미 국채 대비 1.35%포인트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는 5월 1일 최장 40년물을 포함해 만기가 다른 5종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발행 규모는 약 85억 달러(약 11조3891억원)다. 메타의 회사채 발행은 지난해 8월 100억 달러(약 13조원) 규모에 이어 둘째다. 특히 40년 만기채는 미 국채보다 1.92%포인트 높은 이자가 지급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밖에 미디어그룹 컴캐스트(50억 달러), 초콜릿 제조업체 허쉬(7억5000만 달러) 등 모두 11개 기업이 약 220억 달러(약 29조5000억원)가 넘는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