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압박 위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화석 연료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글로벌 현장]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G7 정상들이 둘러앉아 있다.  5월 21일 세션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 가운데)도 참석했다.(사진=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G7 정상들이 둘러앉아 있다. 5월 21일 세션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 가운데)도 참석했다.(사진=연합뉴스)
5월 19~21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개최 도시 히로시마에 924억 엔의 경제 효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분석된다. 약 5조5000억 엔인 히로시마시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사흘 동안 벌어들인 셈이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세계를 주도하는 힘이 예전 같지 않은 G7이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넥스트 G7’에 지원을 요청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넥스트 G7은 한국·호주·인도 등 차세대 G7 후보국들을 말한다.

여덟째 G7 회원국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와 인도, 각 지역 연합 의장국 등 8개국이 초청됐다. 국제 정치 전문가들도 이번 회의를 ‘국제 질서를 주도할 힘을 잃어 가는 G7이 넥스트 G7 국가에 구원을 요청했다’고 요약했다.
중·러 견제 위해 ‘넥스트 G7’에 도움 요청
세계 GDP에서 G7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2년 64%에서 2022년 44%로 급감했다. 그 사이 중국과 러시아의 비율은 5%에서 20%로 높아졌다. 최근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가’, 중국과 러시아와 같이 패권주의 국가를 ‘힘의 지배에 기초한 국가’로 표현한다.

G7과 중국 러시아의 GDP 비율 변화에서 보듯이 2023년은 기존의 국제 질서가 뒤바뀌는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이번 G7 히로시마 정상회의가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가’가 ‘힘의 지배에 기초한 국가’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는 이유다.

G7이 ‘그들만의 리그’를 포기하고 넥스트 G7을 끌어들인 배경이기도 하다. G7 결속의 토대 위에 법의 지배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동맹국 네트워크를 만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한다는 게 의장국 일본과 G7이 그리는 전략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회의 첫날인 5월 19일 “법의 지배에 기초해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를 지켜 나가자”고 호소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히로시마를 전격 방문한 것은 넥스트 G7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G7의 구상이 극적으로 나타난 장면으로 꼽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참가국 정상들을 만나 지원을 호소함으로써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이던 인도와 베트남의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의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인도와 내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넥스트 G7에 대한 G7의 구애는 회의의 구성도 크게 바꿔 놓았다. 우선 회의 의제가 10개로, 역대 G7 정상회의 중 가장 많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코로나19 방역, 생성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진전 등 머리를 맞대야 할 지구적인 과제가 늘었기 때문이다.

의제가 다양해진 만큼 ‘넥스트 G7’에 대한 의존도도 커질 수밖에 없다. 10개 정상회의 의제 가운데 3개가 참가국 정상이 함께하는 확대 정상회의로 이뤄졌다. 지금까지는 2회가 가장 많았다.

정상회의 성과를 정리한 공동 성명에서도 넥스트 G7 국가의 위상이 확인된다. G7은 지금까지 신흥국·개발도상국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글로벌 하우스’란 표현을 공동 성명에서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신흥국을 내려다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대신 ‘동반자’를 뜻하는 ‘파트너’라는 표현을 썼다. 파트너란 단어가 사용된 빈도도 지난해 독일 엘마우 정상회의 공동 선언의 36회에서 66회로 약 두 배 늘었다. ‘힘의 지배’를 시도하는 패권주의 국가와 반대되는 개념인 ‘법의 지배’라는 표현도 5회에서 11회로 늘었다.
'넥스트 G7' 목소리 커진 G7 정상회의 살펴보니 [글로벌 현장]
러시아는 완전 압박, 중국은 공급망 의식?
다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차별적인 접근법을 시도한 것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눈여겨볼 부분으로 지적된다.

40쪽 분량의 G7 히로시마 정상회의 공동 선언에서 러시아는 23차례 등장했다. 공동 성명 제1항이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략이 계속되는 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였다. ‘불법적이고 잔악한 침략 전쟁’을 ‘가장 강력한 표현을 다시 한 번 비난한다’는 등 직설적인 표현으로 러시아를 압박했다.

반면 공동 성명에서 18차례 등장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강온 양면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평가다. ‘티베트와 신장을 포함한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남지나해에서의 팽창적인 해양 정책에는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군사 행동에 반대한다’고 중국을 직접 거명했다.

하지만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포함해 대만에 대한 G7의 기본적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거나 ‘G7의 정책은 중국에 해를 끼치거나 위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문구를 대거 반영했다.

중국이 G7의 포위망에 대항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욱 장기화할 수 있고 G7 회원국과 참가국들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 의존도를 의식해 균형을 찾으려고 한 점이 역력했다.

반도체 공급망 강화, 경제적 위압에 대항하기 위한 협의체 신설에 합의하는 한편 중국 경제를 세계 공급망에서 완전히 잘라내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공동 성명의 셋째 합의 사항에 ‘경제 회복과 경제 안보를 위해 탈동조화(de-coupling)가 아니라 리스크 경감(de-risking)에 기반해 협력한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대신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이다.

G7 정상회의는 간혹 선진국 정상들이 뜬구름 잡는 논의를 하는 모임으로 평가절하되곤 한다. 하지만 정상회의의 논의 결과는 의외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대세가 된 기후 변화와 탈석탄화,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과제로 떠오른 경제 안보 등이 모두 G7에서 처음 등장하고 논의된 과제들이다.

이번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도 지구촌의 일상을 바꿀 합의가 다수 이뤄졌다. G7은 공동 성명을 통해 석탄뿐만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 연료 전체를 단계적으로 없애 나가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는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만 폐지 대상으로 거론됐는데 이번 회의에서 화석 연료 전체로 대상이 확대됐다. 화석 연료를 사용한 화력 발전 비율이 74%에 달하는 일본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본의 반발로 인해 G7은 석탄 화력 발전을 모두 없애는 시한을 공동 성명에 못 박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공동 성명에는 ‘온실가스 배출 억제는 모든 경제 대국이 완수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문구가 담겼다. G7 회원국이 아니면서 경제 규모가 크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한국과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G7의 첫째 의제인 경제 분야에서는 생성 인공지능(AI) 챗GPT가 주요 논의 사항에 올랐다. G7은 ‘생성 AI의 가능성과 과제를 조속히 파악해야 한다’며 담당 장관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연내 저작권 보호와 허위 정보 대책 등을 포함해 생성 AI에 대한 G7의 방침을 제시할 계획이다.

일본은 챗GPT 활용에 적극적인 반면 유럽은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공방전 결과에 따라 생성 AI 서비스의 향방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G7의 신재생에너지 도입 목표량도 처음 공개됐다. G7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를 10억 킬로와트(kW) 이상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현재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를 위해 해상 풍력 발전을 1억5000kW 더 늘리기로 했다. 2021년 증가량의 8배에 달하는 규모다.

경제 안전 보장은 G7 히로시마 회의에서 처음 독립 의제로 다뤄졌다. 글로벌 정세가 급변함을 상징하는 변화다. ‘경제 안보’라는 단어는 지난해 독일 엘마우 정상회의에서 처음 등장했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