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로보틱스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신사업으로 낙점한 협동 로봇 제조 업체로, 한국 시장 1위 사업자다. 올해 1분기 기준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가 총액 5000억원 이상·자기 자본 1500억원 이상’을 충족해 유니콘 기업 특례 요건으로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소는 유니콘 기업의 한국 증시 입성을 유도하기 위해 시가 총액 1조원 이상 또는 시가 총액 5000억원 이상, 자기 자본 1500억원 이상 요건이 충족되면 다른 재무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했다. 시장에선 두산로보틱스의 기업 가치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1월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오랜만의 ‘조’ 단위 대어다.
6월 19일에는 SGI서울보증보험과 중고차 플랫폼 업체 엔카닷컴도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심사 청구에 들어간다. 등산 용품 전문 업체 동인기연 또한 6월 유가증권시장 상장 예비 심사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예비 심사 청구서를 접수한 에코프로머티리얼즈와 넥스틸 등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IPO 시장 ‘대어’로 기대 받은 곳이다. 모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의 오너 리스크가 변수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최대 주주는 에코프로(지분율 52.78%)로, 에코프로의 최대 주주는 지분 18.84%를 보유한 이동채 전 회장이다. 두 기업 모두 이르면 8~9월쯤 상장이 예상된다.
코스닥시장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공모주 일반 청약을 계획하는 기업이 6월에만 11곳에 달한다. 백신 개발 기업 큐라티스가 6월 7일까지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을 진행했고 체외 진단 의료 기기 개발 기업인 프로테옴텍도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일반 청약을 진행한다. 이 밖에 필에너지(19~20일), 알멕(20~21일), 파로스아이바이오(20~21일), 시큐센(20~21일), 오픈놀(21~22일), 에이엘티(26~27일), 버넥트(26~27일), 틸론(26~27일), 이노시뮬레이션(27~28일) 등도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작년만 하더라도 IPO에 성공하는 것은 제조 중심의 중소형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많았다”며 “지금은 인공지능(AI) 신약 개발(파로스아이바이오), 산업용 XR(버넥트), XR·메타버스(이노시뮬레이션) 등 정보기술(IT)과 결부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이 상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6월 8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화장품 기업 마녀공장 또한 기관투자가 수요 예측에서 180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끌어내며 공모가가 희망 범위(1만2000∼1만4000원)보다 높은 1만6000원에 정해졌다. 공모가 기준 상장 후 시가 총액은 2621억원 수준이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IPO의 성적을 기대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증시 한파가 닥치면서 공모주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공모 규모가 큰 대형 IPO 기업들은 상장을 연기하거나 철회했고 공모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다수 기업들은 스팩(SPAC)을 통해 상장을 시도했다. 지난해 자람테크놀로지 외에도 현대엔지니어링·SK쉴더스·태림페이퍼·원스토어 등이 상장 예비 심사 통과 후 수요 예측 과정에서 상장 계획을 취소했고 하반기에는 골프존커머스·라이온하트스튜디오·제이오·밀리의서재·바이오인프라 등이 상장을 철회하거나 늦췄다. 지난해 상장을 준비했던 컬리와 케이뱅크 등도 공모 시점을 미루며 ‘IPO 잔혹사’라는 얘기가 따라붙을 정도였다. 이 결과 2022년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IPO를 추진하다가 철회 공시를 낸 기업은 13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상장 기업 수 역시 총 70개로 전년도 상장 기업 수(91개)에 비해 23% 정도 줄었다. 1조원 이상의 ‘대어급’ IPO 역시 2021년 6개에서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 1개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초에도 IPO 시장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둘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국내외 증시 불확실성에 더해 증시를 끌어올릴 호재가 마땅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유진투자증권 측은 앞서 펴낸 IPO 시장 전망 리포트에서 “2023년 IPO 예상 기업 수는 전년 수준으로 예측되고 공모 금액과 시가 총액은 전년 대비 절반 수준 달성이 예상된다”며 상반기보다 하반기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특히 지난해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 하락으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기관투자가들이 많다는 점에서 중대형 IPO의 상장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실제 기업 공시 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7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은 단 2건(이전 상장, 재상장 제외)이었다. 반면 코스닥시장의 신규 상장은 34건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주식 시장의 불안감은 지속되고 있지만 5월 들어 한국의 IPO 시장은 기가비스 등 중형급의 성공적인 상장에 따라 하반기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상장 철회 기업도 재도전 올해 6월 IPO 예상 기업 수는 12~14개 수준으로 최근 5년(2018~2022년) 동안 IPO 기업 수 평균 9개를 웃돌았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5월 31일 기준 기관 수요 예측을 마치고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은 3개이고 이를 포함한 6월 상장을 목표로 수요 예측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은 모두 14개다. 이들 기업의 예상 공모 금액은 3000억~3700억원으로, 예상 시가 총액은 1조5000억~1조7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5월까지만 해도 중소형주 중심의 IPO로, 연간 전체 공모 금액이 지난 2년 추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머물렀지만 하반기 대어급 IPO 출몰로 반전이 예상된다.
IPO를 접었던 기업들도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11월 수요 부진에 코스닥시장 상장 계획을 접은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가 6월 1일 거래소에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며 7개월 만에 재도전에 나섰다.
증시 분위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자동차·반도체·AI·의료 장비 및 서비스 관련주들이 잇달아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덩달아 코스피도 강세다. 코스피는 6월 2일부터 2600선을 회복하더니 6월 7일 2615.60에 마감됐다. 2600선을 회복한 것은 지난해 6월 9일 이후 1년 만이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6월은 코스피가 월간 마이너스 13%라는 기록적인 낙폭을 세웠던 때”라며 “증시가 여기서 폭락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52주 신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2차전지 중심으로 4월까지 초강세를 보였던 코스닥지수나 다른 글로벌 주요 증시들과 비교하면 이제 막 시작된 편”이라며 “한국 증시의 향후 이익 전망에 점차 낙관론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이익 턴어라운드가 주가지수의 강세장 진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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