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6개월 간 18.3% 하락…스마트폰 사업 실패와 성능 대신 디자인에 집중한 결과
‘가전제품계의 애플’이라고 불리던 발뮤다가 명성을 잃어 가고 있다. 실적과 주가는 고꾸라졌고 프리미엄 가전의 이미지마저 퇴색해 가고 있다. 발뮤다는 지난 1분기에 전체 매출이 41.2% 하락했고 모든 사업 영역에서 매출이 줄면서 영업 적자를 냈다. 주가는 6개월 동안 18.3% 떨어졌다.전문가들은 발뮤다의 실패 원인으로 안일한 혁신, 무리한 사업 확장, 실패한 시장 전략을 꼽는다.
발뮤다가 가전제품계의 애플이라고 불린 이유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디자인 때문이었다. 여기에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팬덤과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의 ‘공장 없는’ 생산 모델까지 애플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애플엔 있고 발뮤다엔 없던 것들이 있다. 성능 대신 감성에 호소한 스마트폰 “기술의 발명이 아닌 가치의 발견이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토스터로 유명해진 발뮤다가 2021년 폭탄 선언을 했다. 애플과 삼성이 양분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발표한 것. 테라오 겐 발뮤다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한 언론 매체에 경쟁사보다 앞선 기능보다 체험 가치를 추구하며 레드오션에서 차별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발뮤다는 가전 기업 교세라, 통신 기업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공동 개발한 스마트폰을 2021년 11월 출시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다. 도시바·후지쯔 등도 실패한 일본 스마트폰업계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자국 스마트폰이었기 때문에 일본 국민의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출시 두 달 만에 전파 문제로 판매를 긴급 중단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미 시장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정쩡한 포지셔닝도 문제였다. 프리미엄 폰은 애플과 삼성이, 중저가 폰은 중국 기업이 장악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능은 보급형, 가격은 고급형’인 스마트폰을 들고나왔다. 우선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 스냅드래곤 765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이는 발뮤다 폰 출시 3년 전인 2019년 나온 갤럭시 S10 수준이다.
카메라 성능도 뒤처졌다. 발뮤다 폰의 카메라는 성능은 4800만 화소, F/1.8후면 카메라로 중급형 스마트폰 중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렌즈 3개를 장착하고 나온 아이폰 13이나 1억8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하고 망원 카메라와 레이저 자동 초점 센서까지 탑재한 갤럭시 S21과 경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4.9인치의 작은 화면은 대화면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역행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고가는 10만4800엔. 100만원 수준으로 그해 출시된 아이폰13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발뮤다의 프리미엄 전략을 이어 가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이미 구축해 놓은 구글조차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시장”이라며 “발뮤다의 스마트폰은 성능·가격·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발뮤다는 삼성과 같은 하드웨어 기술력도, 애플의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없었다. 경쟁사보다 3년은 뒤처진 기술력과 성능, 비싼 가격으로 출시 직후 시장에서 외면받았고 이후 출고가보다 90% 가까이 하락한 가격에 온라인에서 판매되며 발뮤다가 쌓아 온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이미지에도 손상이 갔다.
발뮤다는 지난 5월 1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지 1년 반 만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실패한 시장 전략 발뮤다는 애초에 ‘기술이 아닌 경험’으로 승부하겠다고 했다. 디자인 경영과 스토리텔링을 내세운 브랜딩은 발뮤다의 정체성이었다. 발뮤다는 뮤지션 경력의 창업가인 ‘테라오 겐’의 창업 스토리나 제품 하나하나의 개발 스토리를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과 연결해 왔다. 기타리스트였던 테라오 겐이 2003년 창업한 발뮤다는 ‘가전의 가구화’에서 한국 기업보다 한 발 앞서기도 했다.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과 만나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가전 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중단 없는 혁신도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장이다. 발뮤다의 혁신은 지속적이지 않았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토스터와 간단한 디자인의 선풍기, 물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공기청정기는 이미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난 것들이다. 매년 새로운 기술력과 디자인을 넘어 전에 없던 제품이 탄생하기도 하는 가전업계에서 성능 대신 디자인에 집중하는 발뮤다의 행보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토스터·공기청정기 등 기존 주력 사업과 관계 없는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 또한 실패 요인이었다. 스마트폰·태블릿·PC·노트북·무선 이어폰·헤드셋·스마트워치 등 IT 기기로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과 다른 점이다. 결국 발뮤다는 1분기 스마트폰 사업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 영역에서 성장이 멈췄다. 스마트폰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8.4% 급감했고 선풍기와 공기청정기가 속한 공기 조화 사업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7.9% 추락했다. 발뮤다의 핵심 사업인 토스터와 전자레인지 등이 속한 주방 용품 사업은 41.5% 하락했다.
모든 사업에서의 매출이 감소하면서 결국 전체 매출은 41.2% 줄었다. 일본 내에서의 매출은 40% 줄었고 둘째로 큰 시장인 한국 매출은 55.5% 급감하며 반 토막이 났다. 영업이익은 4억1600만 엔(약 3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주가도 급락했다. 2020년 12월 일본 스타트업 전문 주식 시장인 마더스에 상장한 발뮤다는 상장 직후 공모가 대비 63% 오른 3150엔으로 시작했다. 2021년 1월에는 최고가를 찍었다. 9700엔까지 오르며 1만 엔을 바라봤던 주가는 현재(6월 7일) 2290엔까지 떨어졌다. 최고가 대비 4분의 1토막이 났다. 올해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발뮤다의 주가는 6개월 동안 18.3% 하락했다.
발뮤다의 실패는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테라오 겐의 성공 신화는 그동안 ‘브랜딩의 힘’과 ‘디자인의 힘’을 설명하는 바이블로 통했다. 기타리스트 출신 CEO의 혁신과 감각적인 디자인은 많은 이들에게 각광받았지만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에만 머물러 있던 기업의 한계가 드러났다. 애초에 ‘죽은 빵도 되살리는 토스터’로 유명해진 발뮤다의 신화는 디자인이 아니라 성능이 써 내려간 것이다.
1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도전에 나선 것이 좋았다”고 말한 테라오 겐의 혁신이 이제는 기술을 향할 때가 아닐까.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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