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맞붙은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첨단 방산 기술 뽐내며 미묘한 신경전
울산급 배치3·한국형 구축함 수주전서도 격돌
국제해양방위산업전 르포

[비즈니스 포커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국제해양방위산업전(마덱스) 한화오션 부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국제해양방위산업전(마덱스) 한화오션 부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방산 업체의 홍보와 수출 진흥을 위해 격년으로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 이하 마덱스)’에서 한화그룹이 화려한 첨단 방산 기술을 선보이며 K-방산 대표 주자의 위상을 뽐냈다.

한화그룹은 한화오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등 방산 계열사와 함께 3개의 대형 부스를 마련해 ‘오렌지 로드’를 꾸려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화오션은 함정 건조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첨단 추진 체계와 한화시스템의 최신 전투 체계를 연계한 시너지를 통해 한국 해군에 최고 품질의 함정을 공급할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해저에서 우주까지’ 모두 아우르는 종합 솔루션 공급 기업으로 입지를 더욱 다질 계획이다.

방산 3사 총출동…김동관 부회장도 깜짝 방문

6월 7일 방문한 부산 벡스코 마덱스 행사장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바이어와 군 관계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출범 이후 방산 계열사들이 처음으로 함께한 행사로, 한화오션에는 공식 데뷔 무대나 다름없었던 만큼 취재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행사 관계자는 “올해 행사는 한화그룹 덕분에 역대급 흥행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깜짝 방문은 마덱스에 열기를 더했다. 이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마덱스에 참가한 한화오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부스를 차례로 둘러봤다. 김 부회장의 마덱스 방문은 새 가족이 된 한화오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그의 한화오션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부친인 김승연 회장이 2008년 인수를 시도했다가 무산된 이후 약 15년 만에 한화오션 인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진에 합류해 빠른 경영 정상화와 해외 시장 확장을 지휘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 부스 앞에서 처음으로 취재진과 미팅도 열었다. 그는 “한화오션이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많은 투자와 중·장기적인 전략을 갖춰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인수로 육·해·공 방산을 모두 품은 한화그룹이 나가야 할 비전에 대해선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세계 평화와 국제 정세에 기여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세계 속에서 한국의 방산 역할을 확대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한화오션 직원들의 구조 조정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인위적인 구조 조정 계획은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조직을 떠난 분들을 다시 모셔오고 추가 채용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HMM 인수 가능성에 대해선 “추가적인 인수·합병(M&A)은 검토하고 있지 않고 한화오션의 정상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부스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 부스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과 군함 수주 혈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미묘한 신경전도 마덱스의 또 다른 관심거리였다. 양 사는 6월 말 예정된 차세대 호위함 ‘울산급 배치3(Batch-III)’ 5·6번함 수주를 두고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부스가 나란히 자리했는데 HD현대중공업은 2019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지만 유럽 경쟁 당국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한화오션은 울산급 배치3 5·6번함과 2024년 예정된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사업 수주를 위해 전방위로 뛰겠다는 각오다. 이미 KDDX 사업의 개념 설계를 수행한 바 있는 한화오션은 두 사업의 수주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정통 수상함 명가의 위상을 보여줄 계획이다.

울산급 배치3 사업은 대한민국 해군이 추진 중인 3500톤급 최신형 호위함 6척을 건조하는 프로젝트다. 6척 중 4000억원 규모의 선도함(1번함)은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2·3·4번함은 2022년 SK오션플랜트(구 삼강엠앤티)가 수주했다.

한화오션은 울산급 배치3에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복합 센서 마스트와 전투 체계가 탑재되는 만큼 ‘선도함보다 뛰어난 후속함’이라고 자신했다. 업계는 선도함을 수주한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한다.
한화오션 부스 중앙에 울산급 배치3 모형이 전시돼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한화오션 부스 중앙에 울산급 배치3 모형이 전시돼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미니 이지스함’ 설욕전 준비하는 한화

해군의 ‘미니 이지스함’을 만드는 KDDX 수주전에서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치열한 수주 경쟁이 예상된다.

KDDX는 선체부터 전투 체계, 다기능 레이다 등 핵심 무기 체계를 비롯해 각종 무장까지 모두 한국 기술로 개발한 전투 체계를 탑재해 한국형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린다. 2020년부터 2036년까지 개발비 1조8000억원, 건조비 6조원을 들여 총 6척을 건조하는 프로젝트로 한국 최초로 ‘통합 전기식 추진 체계’가 적용된다.

현재 HD현대중공업이 KDDX의 기본 설계를 진행 중인데 사업자 선정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여전하다. 2020년 첫 단계인 기본 설계 사업 제안서 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이 0.0565점 차이로 한화오션을 누르고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됐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의 특수사업부 소속 직원 9명이 한화오션이 2012년 수행한 KDDX 개념 설계 자료를 촬영해 내부 서버에 공유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2018년 기소됐고 2022년 11월 1심에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2025년 11월까지 3년간 방위사업청 무기 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불공정 행위 이력 감점(1.8점)을 받게 됐다.

문제는 KDDX 기본 설계 제안서 평가가 이뤄지기 이전부터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KDDX 기밀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울산지검에 송치된 상태였음에도 방위사업청이 감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입찰 업체의 범죄 경력 여부 등을 조회할 권한이 없어 몰랐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 같은 논란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HD현대중공업은 “방위사업청의 KDDX 사업의 기본 설계 사업자 선정과 관련, 한화오션이 2020년 8월 HD현대중공업이 자사 개념 설계 자료를 활용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중앙지법에 자사가 우선 협상 대상자임을 확인하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근거가 없다며 기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 말에도 한화오션이 방위사업청에 같은 취지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방위사업청 재검증위원회가 HD현대중공업이 개념 설계 기밀을 사업 제안서 작성에 활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KDDX 선정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는지 확인해 달라며 감사원에 국민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한화오션은 이를 통해 향후 수주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방침이다.

KDDX 기본 설계 사업 수주 등 최근 함정 사업에서 강세를 보였던 HD현대중공업은 2023년 4월 해군 합동화력함 사업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에 고배를 마셨는데 군사 기밀 유출 관련 벌점이 부과된 데 따른 것이다.

합동화력함은 다양한 수직 발사체를 장착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함정으로, 한화오션이 함정설계기술처와 개념 설계에 착수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방산 기술력을 총동원해 해군을 위한 최적의 신개념 함정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