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15년 전 쯤의 일입니다. 꽤 비싼 시계를 갖게 됐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자리에 차고 나갔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취재원 한 명이 시계를 보더니 “아 시계 눈에 띄네요”라고 했습니다. 뿌듯했지요. ‘알아봐 주는군.’ 하지만 유심히 시계를 보던 그는 “그런데 그거 진품 맞나요? 시곗바늘이….” 아놔. 아마도 평소 행색이 명품 시계와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곗바늘 움직임이 이상해 보였겠지요. 다행히 다른 일행이 “진품 맞네. 바늘이 원래 그렇게 움직여”라고 해줘 오해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물론 나이가 좀 들고 나니 의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몇 년후 겨울. 한 중견기업 회장님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회장님은 검정 패딩을 입고 왔습니다. 폼도 나고 회장이 입었으니 당연히 명품이겠거니 하고 브랜드를 살짝 봤습니다. 웬걸, 유***였습니다. 명품은 어쩌면 누가 걸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품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즉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줄지 않는 재화입니다.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 ‘유한계급론’에서 언급해 베블렌 효과로도 불리지요.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면 백화점 앞에 줄을 서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원래 명품은 특정 계층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상류층이 되고자 하는 신분 상승의 욕망이 소비로 나타나며 대중화되기 시작했지요. 이를 ‘파노플리 효과’라고 합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파티나 중요한 행사 때 명품 시계를 차고 백을 든다고 하지요.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명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립니다. 일상 템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출퇴근길에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1인당 명품 구매액 세계 최고 국가가 된 배경입니다.

한국인들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내면의 나보다 보여지는 나를 중시하는 비교 사회가 가져 온 현상’, ‘개인의 신분과 표상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방어적 수단’, ‘스펙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부풀리는 인조 근육을 부착하는 것’ 등입니다. 명품은 그렇게 디폴트가 됐습니다.

물론 뜻밖의 효과도 있습니다. 퇴사율을 낮춰 주는 효과입니다. 명품 백이나 시계를 지르고 나면 카드 값을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퇴사 충동을 조절해 준다는 것이지요. 주변에서도 몇 명 봤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 명품 창업자의 삶을 돌아볼까요. 12살에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에 버려지고 생계를 위해 바느질을 배우고 가수가 되고 싶었던 여성. 하지만 꿈을 버리고 재봉사가 된 후 여성들을 불편한 옷에서 해방시켜 주고자 했던 디자이너.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외교관과의 관계로 고국 프랑스에서 쫓겨나 잊힐 뻔했지만 71세의 나이에 복귀해 1950년대 미국과 유럽을 다시 열광시켰던 디자이너.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입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총격으로 사망할 당시 재클린의 피묻은 드레스도 샤넬 것이었지요. 명품과 관련된 인상적인 스토리여서 가져와 봤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명품 시장의 변화를 다뤘습니다. 다양한 명품으로 젊은이들이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명품을 대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명품 백을 살 수도, 명품 주식을 살 수도 있습니다. 명품 스토리에 빠져들 수도 있고 디자이너의 삶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명품을 대하는 수많은 생각과 접근 방식은 물론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명품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샤넬은 답합니다. “럭셔리의 반대는 빈곤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