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삼성전자 임원 등 7명 재판행
검찰 "최소 3000억원어치 반도체 기술 빼돌려"
기업생존·국가 경쟁력 갉아먹는 기술 유출 범죄 "양형 기준 높여야"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진성)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등의 혐의로 삼성전자 전 임원 A씨(65)를 구속기소했다고 6월 12일 밝혔다.
또한 A씨가 대표로 있는 중국 반도체 제조회사 직원 5명과 공장 설계 도면을 빼돌린 삼성전자 협력업체 직원 1명 등 6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전 삼성전자 임원, 중국 시안에 삼성 복제 공장 설립 추진
A씨는 삼성전자에서 18년, SK하이닉스에서 10년동안 임원으로 재직한 반도체분야 전문가다.
A씨 등은 2018~2019년 대만의 전자제품 생산·판매업체인 B사로부터 투자받아 중국 시안에 반도체 건설을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자 국가 핵심 기술인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와 공정 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을 부정 취득·부정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공장 설립 과정에서 고액 연봉을 내세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반도체 인력 200여명을 자신의 회사로 영입하고, 이들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 등을 입수해 활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세우려 한 복제판 공장은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 BED는 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공간인 '클린룸'에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다. 공정배치도는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8대 공정의 배치, 면적 등의 정보가 기재된 도면이다.
이들 기술은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30나노 이하급 D램' 및 '낸드플래시' 반도체 공정 기술로써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
A씨 등이 계획한 중국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복제공장은 투자 불발 등을 이유로 실제 건설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A씨가 중국 청두시로부터 약 4600만원을 투자받아 2022년 연구개발(R&D) 건물을 완공해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A씨 회사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가 입은 피해가 최소 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술 유출 범죄 증가 추세…한국은 ‘솜방망이 처벌’ 그쳐
첨단산업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반도체·2차전지·자율주행차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 유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처벌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계에선 기술 유출 범죄가 기업의 생존과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는만큼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기술유출 범죄 양형 기준 개선에 관한 의견서'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최근 전달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총 87.8%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실형과 재산형(벌금 등)은 각각 2건(6.1%)에 그쳤다.
한국과 달리 미국, 대만 등은 관련 법을 개정하거나 양형 기준을 피해액에 따라 가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해 형량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유출은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피해액에 따라 15년 8개월에서 최대 33년 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대만은 2022년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 영역을 넘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 행위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과 대만달러 500만위안 이상 1억위안(약 4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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