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지속으로 지난해 아이거 CEO 복귀…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와 ‘진흙탕 싸움’
[글로벌 현장]
디즈니 주가는 그동안 곤두박질쳐 왔다. 2021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영상 콘텐츠와 테마파크, 스포츠 채널(ESPN)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데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후 경제 재개 효과까지 누릴 것이란 일각의 기대는 무너졌다. 작년 말 ‘왕년의 스타 최고경영자(CEO)’인 밥 아이거가 전격 소환됐던 배경이다. 아이거 CEO는 위기의 디즈니를 구할 수 있을까.
![정치 이슈 한복판에 선 ‘콘텐츠 왕국’ 디즈니 [글로벌 현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AD.33714033.1.jpg)
취임 직후 사업 재편·감원 단행한 아이거
아이거 CEO는 명실상부 디즈니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2005년부터 팬데믹이 막 터졌던 2020년 2월까지 15년간 디즈니를 이끌었다. 재임 기간 픽사·마블·루카스필름·21세기폭스 등을 줄줄이 인수했다. 시장점유율을 5배 높이며 디즈니를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키워 냈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적자 수렁에 빠진 미디어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다. 올해 2월 대대적인 감원을 시작하며 총 55억 달러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구조 조정 대상자만 7000여 명에 달했다. 글로벌 임직원의 3.6%다. 뚜렷한 성과가 없던 메타버스 전략 부서는 아예 폐쇄했다.
그 대신 ‘최고브랜드책임자(CBO)’란 직책을 신설했다. 강력한 디즈니 브랜드를 소비자들과 더 많이 접목하겠다는 의도다.
조직은 큰 틀에서 3개로 재편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위주의 엔터테인먼트 부문, 스포츠 채널인 ESPN 부문(ABC방송 포함), 디즈니랜드를 아우르는 파크·경험·상품 부문이다. 월스트리트 일각의 전망과 달리 ESPN 부문을 매각하지 않고 오히려 전략 자산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별도로 스트리밍 서비스(디즈니 플러스)의 추가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사 콘텐츠를 경쟁사에 제공하는 방안도 열려 있다고 공개했다. 성장을 중시해 온 아이거 CEO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과거 재임 시절엔 점유율 확대에 방점을 찍으며 요금 인상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디즈니는 과거부터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 디즈니 플러스의 저가 정책을 고수해 왔다. 출범 2년여 만에 가입자 1억 명을 확보할 수 있던 배경이다. 막대한 콘텐츠 투자와 마케팅 비용 때문에 디즈니 플러스는 만성 적자 사업이 됐다.
아이거 CEO는 “디즈니 플러스에서도 성장과 수익을 동시에 확보하는 한편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디샌티스 주지사와 진흙탕 싸움에 휘말린 것이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발단은 디즈니의 전임자인 밥 체이펙 전 CEO다. 작년 5월 디샌티스 주지사가 추진해 온 성 정체성 교육 금지 법안(게이 교육 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아 논란을 자초했다는 평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성적 취향 등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없도록 만든 이 법안은 성 소수자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화당과 민주당 간 대립 구도 속에서 디즈니가 한쪽 편에 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디즈니를 상대로 집중 공세를 펴고 있다. 올랜도 디즈니 관광 감독지구(CFTOD)에 50년 넘게 부여해 온 감세 혜택을 박탈하도록 의회에 요청했다.
또 감독위원회 5명을 모두 자신이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디즈니 관광지구를 직접 통제하며 추가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관광지구는 디즈니월드와 그 일대 2만5000에이커(약 101㎢)에 적용된다. 디즈니는 그동안 관광지구 내 다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거나 정부 허가 없이 직접 개발할 수 있었다.
디즈니도 반격에 나섰다. 작년 체이펙 전 CEO는 “플로리다 주에 대한 모든 정치 자금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바통을 넘겨 받은 아이거 CEO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성 소수자에 대한 방침을 바꾸면 더 센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주 감독위가 디즈니의 재산권을 박탈하는 등 반위헌적 행위를 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거 CEO는 “(전임자가) 성 정체성 교육 금지 법안에 대한 방침을 잘 처리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기업들 역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즈니는 또 9억 달러 규모의 플로리다 투자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2026년 올랜도 노나호수 인근에 180만㎡ 규모의 사무 공간을 짓는 프로젝트다.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던 직원 2000여 명도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6월 초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성 소수자 축제 ‘디즈니월드 게이 데이즈’도 열었다. 수만 명의 성 소수자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춤과 공연을 즐겼다. 이 행사는 1991년 성 소수자 3000여 명이 붉은 셔츠를 입은 채 지역 테마파크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1995년 성 소수자 1만여 명이 디즈니월드를 동시에 방문한 뒤 연례 행사가 됐다. 양쪽 진영의 대립이 더욱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즐기며 지지 세력 결집에 나서고 있다. 디즈니로선 대선 주자와 득 될 게 없는 장기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엇갈린 월가 평가…일각에선 애플 인수설도
월스트리트에선 아이거 CEO의 디즈니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키파이낸셜의 패티 브래넌 CEO는 “가족 중심 콘텐츠 측면에서 디즈니는 충분한 경쟁력과 가격 결정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아이거의 강력한 구조 조정 아래 머지않아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벤저민 스윈번 모간스탠리 애널리스트는 “회사 수익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테마파크 부문이 올해 강력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했다.
스티븐 케이홀 웰스파고 애널리스트는 “디즈니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지만 핵심은 스트리밍 부문의 수익력 여부”라며 “장기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종목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반면 팀 놀런 맥쿼리 애널리스트는 “동영상 스트리밍의 순가입자와 테마파크 비즈니스가 동시에 둔화하고 있다”며 “디즈니가 자체 역량을 동영상 콘텐츠 쪽으로 집중시키고 있지만 이 부문에서 내년까지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드브리지의 제이미 럼리 애널리스트 역시 “다양한 비용 절감 조치에도 불구하고 동영상 콘텐츠는 여전히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라며 “디즈니가 원하는 방향과 현실 사이에 여전히 커다란 괴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애플의 디즈니 인수설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아이거 CEO는 수년 전 자서전에서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디즈니와 애플이 통합됐거나 그 가능성이 진지하게 논의됐을 것”이라고 썼다.
콘텐츠가 풍부한 디즈니와 모바일 플랫폼의 최강자인 애플이 결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잡스와 아이거는 과거 컴퓨터 그래픽 스튜디오 픽사의 경영권 이전 과정에서 협업했던 적이 있다. 다만 아이거 CEO는 최근 애플의 디즈니 인수 가능성과 관련해 “순전히 추측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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