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쿠팡플레이는 ‘존 윅 4’를 시작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극장 상영작을 골라 주말마다 해당 OTT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쿠플 클럽’을 운영한다. ‘와우 회원’이면 누구나 추가 비용 없이 쿠플 클럽 작품을 볼 수 있다. 와우 회원은 월 4990원을 내고 쿠팡플레이를 비롯해 온라인 플랫폼 쿠팡의 로켓배송·직구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이른다.
극장 상영작을 OTT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되면 달라지는 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영화 극장 가서 보실래요. OTT로 보실래요.”“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본다”
영화 시장에 오랜 시간 존재하던 ‘홀드백(holdback)’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홀드백은 1차 플랫폼에서 공개된 이후 2차 플랫폼에서 상영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극장에서 개봉된 이후 주문형 비디오(VOD) 등으로 OTT나 IPTV에서 공개되기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 OTT의 등장 이전 한국에선 홀드백이 주로 10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길면 8주, 짧으면 4주로 대폭 축소됐다. 그리고 아예 OTT에서 동시 공개하는 작품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 산업에서 홀드백의 의미는 남달랐다. 특히 ‘극장’이란 플랫폼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견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개봉 신작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방법은 극장에 가는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한국 영화 산업에서 극장 매출이 70%에 달하는 비율을 차지했다.
홀드백 기간을 기다리지 않고 부지런히 먼저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겐 일종의 ‘혜택’이 있었다. 남들보다 앞서 영화를 봤다는 자부심,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짜릿한 즐거움이 주어졌다. 가수 이문세 씨의 ‘조조할인’이란 노래가 있듯이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특별한 낭만도 있었다.
하지만 홀드백이 무너지면서 이런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어졌다. 누구나 조금만 기다리면 최신작을 볼 수 있게 됐으니 굳이 시간을 내 극장을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과거의 낭만보다 홀드백 붕괴로 얻게 된 편의성과 효율성에 더욱 열광하고 있다.
극장만의 차별성도 사라지고 있다. 집에서 스마트 TV의 커다란 화면을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반드시 스크린을 통해 작품을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크게 밀리게 됐다. 평일 기준 극장 티켓 가격은 1만4000원에 이른다. OTT 한 달 구독료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렇게 극장은 사람들의 일상과 점점 멀어져 아주 가끔 또는 특별한 날 가는 공간이 돼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극장만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산업의 중심축을 차지하던 극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곧 한국 영화계의 커다란 위기를 의미한다.
최근 들려온 한 안타까운 소식은 영화계가 처한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새벽 시간대에 특정 영화의 티켓이 매진되는 등 이상 징후가 포착되며 관객 수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흔들리는 영화 산업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예고된 홀드백 참사에 흔들리는 영화 산업
극장이 무너지고 있는 주요 원인인 홀드백 붕괴는 일찌감치 예고됐었다. 2017년 넷플릭스가 첫 한국 오리지널 영화인 ‘옥자’를 선보이면서 홀드백 논란이 처음 일었다. 당시 넷플릭스는 ‘옥자’를 OTT와 극장에서 동시 공개하려고 했다. 그러자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는 홀드백 붕괴를 우려하며 크게 반대했다. 이로 인해 이 영화는 3대 멀티플렉스를 제외하고 일부 극장에서만 상영됐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홀드백 관행은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됐다. 심지어 OTT 자체 제작 영화가 아닌 이상 반드시 극장 개봉을 한다는 원칙마저 완전히 뒤집혔다. ‘사냥의 시간’과 ‘승리호’ 등이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직행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팬데믹이 끝나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홀드백 관행은 무용지물이 돼버렸고 OTT는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극장 상영작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지난해에도 영화 ‘한산 :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을 극장 상영 중일 때 무료로 공개했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들도 고육지책으로 기존의 홀드백 관행을 깨고 OTT에 작품을 공급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극장 산업이 무너져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극장 관객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조차 힘들고 시장 변화가 워낙 빠르게 이뤄지다 보니 흐름에 편승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홀드백을 중심으로 한 영화계 변화는 해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OTT에 가장 높은 장벽을 세우고 규제를 강화하던 프랑스마저 최근 한 발 물러섰다. 프랑스에선 원래 극장 개봉 이후 3년이 지나야만 OTT에서 해당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이를 절반 수준인 15개월로 줄였다.
물론 한국에서 보면 이 또한 강력한 규제이기도 하다. 지금 개봉된 신작을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1년이 넘게 볼 수 없다니 한국 관객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그동안 자국 영화 산업을 지켜 온 방식들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는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된 작품만 출품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극장 개봉을 하지 않은 OTT 영화는 출품 자체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 등 해외 주요 국제 영화제가 모두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에 빗장을 활짝 연 것과 달리 칸 국제영화제 만큼은 여전히 OTT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프랑스에서 홀드백 규정을 바꾼 것은 파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OTT의 성장과 함께 홀드백 붕괴는 불가피한 흐름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홀드백 붕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한국 영화계에도 ‘묘안’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홀드백 기간을 축소하면서 OTT가 3년 동안 4000만 유로(약 550억원)를 투자해 현지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우리도 국내외 OTT가 영화 산업에 더욱 다양한 투자와 지원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제도적 재정비가 절실하다. 2017년 ‘옥자’를 둘러싸고 홀드백 논란이 일어나자 작품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규칙이 생기기 전에 영화가 먼저 도착했다. 업계 규칙을 정비하는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그런데 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홀드백에 관한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홀드백뿐만이 아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영화 산업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지만 법적·제도적 보완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우리의 눈앞에 도착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규칙 정도는 작동하는 시장이 돼야 하지 않을까.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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