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벤처 주력하던 BRV, 이례적으로 코스닥 상장사 메지온 낙점..FDA 승인 가능성 높게 평가
에코프로머티리얼즈 투자로 수천억 수익 예상, 상장 후 자금 회수 계획 없어..장기 투자 고수
BRV 투자의 중심에 있는 윤관 BRV캐피털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기술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거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한 회사들을 눈여겨보고 있다”며 “모빌리티와 반도체 장비, 배터리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의 투자 비율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혁신성과 확장성에 투자
윤 CIO는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보는 지표로 혁신성과 확장성을 꼽았다. 메지온에 투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메지온이 개발 중인 약은 전 세계에서 치료제가 없는 희귀 질환 신약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처방될 수 있다”며 “한국 제약 바이오 회사가 FDA 승인을 받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소셜 임팩트 투자 관점에서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치료 대안을 제공할 수 있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메지온은 작년 ‘폰탄 수술(선천성 심장기형 수술)’ 환자의 운동 능력 개선을 위한 치료제인 ‘유데나필(성분명)’의 FDA 허가를 신청했지만 실패했고 올 초부터 FDA의 권고로 추가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윤 CIO는 “임상 결과와 FDA 리포트를 살펴보니 재임상 시 승인 확률이 상당히 높고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회사가 FDA 승인을 받은 이후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갖출 때까지 재무적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CIO는 앞으로 제약 바이오 분야가 BRV의 중요한 투자 영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BRV는 의약품 제조사 에스티팜이 상장하기 전인 2015년 약 200억원을 투자해 상장 후인 2020년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지분을 매각해 554억원을 벌어들였다. 2019년엔 SK바이오팜이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판권을 매각한 스위스 아벨테라퓨틱스에 리드 투자사로 참여해 500억원을 투자했다. 아벨테라퓨틱스는 2021년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에 약 1조원에 매각됐다.
윤 CIO는 “아벨테라퓨틱스 투자 때 SK바이오팜과 협업하면서 한국에서 개발된 신약을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상업화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며 “앞으로도 확장 가능성 있는 파이프라인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제2의 에코프로 발굴 윤 CIO는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부품 소재 기업의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RV는 양극재 핵심 소재인 전구체 생산 업체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초기 투자자로 지금까지 약 500억원을 투자했다. 연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추진 중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기업 가치가 2조원 이상으로 거론된다. BRV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2대 주주로 약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상장 시 지분 가치는 최소 6000억원대로, 10배 이상의 평가 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윤 CIO는 “2015년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 투자할 당시 전구체 시장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엔 생산 설비도 공장도 없었다”며 “성능이 우수하고 니켈 함량을 높은 하이니켈 전구체를 만들어 중국산과 경쟁해 보겠다는 경영진의 비전이 BRV의 투자 기조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에코프로머리티얼즈가 상장하더라도 구주 매출로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상장 후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윤 CIO는 “상장은 성장 과정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해외 시장을 뚫을 때까지 장기 투자자로 남아 회사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이 기회 윤 CIO는 블록체인과 가상현실(VR) 등 웹 3.0 기술이 확산하는 영역에서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 최근 BRV가 투자한 네오사피엔스는 감정과 느낌이 표현된 음성을 학습해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로 가상의 목소리와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다. 윤 CIO는 “AI를 활용해 음원을 발굴하고 미디어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만들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며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소유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IP의 확장성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11억 달러 규모의 펀드로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추가로 조성한 두 개의 펀드를 활용해 한국과 아시아의 투자 비율을 꾸준히 높이겠다”고 말했다.
윤 CIO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00년 BRV의 전신인 노키아벤처파트너스에 입사했다. 1998년 핀란드 노키아가 설립한 노키아벤처파트너스는 2005년 사명을 BRV로 바꿨다. 윤 CIO는 전자 결제 서비스 회사 페이팔에 초기 투자해 성과를 인정받았고 5년 후 공동 파트너 자리에 올랐다. 현재 BRV의 아시아 투자 플랫폼인 BRV캐피털매니지먼트를 총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BRV는 2013년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웨이즈’를 구글에 매각해 2000억원을 벌어들이면서 주목받았다. 2010년부터 BRV로터스펀드로 한국 기업 투자에 나섰다. 투자한 한국 기업은 넥스트챕터·슈퍼메이커스·핏펫·네오사피엔스 등이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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