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살리는 규제, 죽이는 규제 [EDITOR's LETTER]
몇 해 전부터 토큰이란 말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왠 토큰? 40~50대는 버스 토큰을 떠올렸을 겁니다. 토큰은 회수권과 함께 버스 요금업계를 이끈 쌍두마차였습니다.

1980~1990년대 버스 요금을 현금 대신 가운데 구멍이 뚫린 작은 토큰을 내고 탔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토큰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권리 증서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다만 디지털화됐고 다양한 주체가 여러 가지를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점이었습니다.

다양한 자산에 대한 권리 증서(주식)를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토근 증권 발행(STO)은 투자 상품을 다양화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가상자산과 달리 토큰의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산이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긴 합니다.

흔히 예를 들 듯이 뉴진스의 노래 한곡, 호화 유람선, 미술품, 주차장을 자산으로 토큰을 발행할 수 있습니다. 또 동네 커피숍과 사업 계획서를 기초 자산으로 쓸 수 있습니다. 발행하려는 사람, 금융회사들, 투자자가 모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여기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세계적 트렌드로 만들었던 세계적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한마디를 거들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시장은 ‘자산의 토큰화’가 이끌어 갈 것이다.” 실행에 나선 기업도 있지요. 독일 지멘스가 채권을 토큰 형태로 발행, 토큰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알렸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월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위는 신중한 스탠스입니다. 루나, 위믹스 등 가상자산 투자로 인해 피해자가 쏟아져 나온 영향입니다. 그래서 토큰 증권으로 명명해 증권 발행 때와 비슷한 규제를 받게 했습니다. 규모도 30억원으로 제한하려다 과하다는 지적에 따라 100억원으로 높였습니다. 또 기존에 거래되고 있는 부동산·주식·채권 등은 STO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게 지침입니다.

의욕적으로 STO를 준비하던 금융회사 임원들은 약간 당황한 표정입니다. 자산의 종류와 규모가 사업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임원은 “연못에 고래가 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또 토큰 발행과 유통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침도 개발한 상품을 고객들에게 서비스할 수 없어 아쉽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고 하나하나 영역을 넓혀야 투자자를 보호하면서 시장도 키울 수 있다는 거지요. 또 소액으로 디지털 자산에 투자하는 젊은 고객을 확보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 금융회사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합니다.

결국 규제 문제가 된 느낌입니다. 규제가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 영화가 잘 보여줍니다. 1996년 영화 검열이 위헌 판결을 받기 전까지 한국 영화는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키스가 검열에 걸려 얼굴을 비비는 어색한 장면도 있었고 여성이 바나나를 먹는 것도 영화에서는 삭제됐습니다. 이 규제가 풀리자 한국 영화는 빠른 시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금융 시장에서는 규제 완화가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았다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처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처럼 규제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그물코의 크기와 유사합니다. 그물코가 너무 크면 물고기가 다 빠져나가고 그물코가 너무 작으면 치어까지 모두 잡아들여 미래를 갉아먹습니다. 금융 당국이 STO 시장에서 적절한 그물코의 크기를 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