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유럽 승인 앞둬…운수권·슬롯 반납 등 점유율 낮추는 방안 사용할 듯

[비즈니스 포커스]
김포공항에 세워진 아시아나 항공기 뒤로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포공항에 세워진 아시아나 항공기 뒤로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무엇을 포기하든 아시아나와의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다.”

지난 6월 5일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를 계기로 가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2020년부터 만 3년째.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합병을 위해 대한항공이 투입한 자금만 1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세계 각국의 규제에 대한 승인을 위해 로펌 및 자문사 비용으로만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작업에 착수한 시기는 항공업계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인한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해야만 했던 때였다. 아직 팬데믹으로 인한 손해를 채 극복하기도 전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시작한 대한항공에 ‘후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규모의 경제 vs 승자의 저주

그간 대한항공은 주요 14개국 중 11개국(한국 포함)의 승인을 받으며 합병을 준비해 왔다. 순조롭게 이어져 왔던 합병 상황에 난기류가 포착된 것은 지난 5월이다. 유럽연합(EU) 경쟁 당국(CMA)이 합병에 관한 이의 제기서를 보내온 것이다. 여기에 미국과 일본의 승인도 아직 남은 상황이다.

규제 당국이 문제삼는 것은 대한항공의 ‘독점’이다. 합병 이후 출범할 통합 항공사가 독점적 지위로 시장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 EU 경쟁 당국은 지난 5월 17일 이의 제기서를 내고 “두 회사의 합병은 유럽 경제권과 한국 간 여객 화물 운송 시장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럽 외의 또 하나의 주요 국가인 미국에서도 합병 승인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5월 현지 매체는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합병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본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미국 법무부에 법적 관할권은 없지만 만약 미국 항공 산업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결합을 막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대한항공은 “미국 승인 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정된 사안이 없다”며 적극 부인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앞서 중국·호주·영국에서는 시장점유율을 낮추는 조건으로 합병 승인을 이끌어 낸 바 있다. 하지만 남은 국가들이 항공 네트워크에서 사실상 주요국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가장 어려운 고비를 만났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 회장은 외신을 통해 “우리는 여기에 100%를 걸었다”며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 회장이 언급한 ‘포기하는 것’이 운수권이나 슬롯(특정 공항의 이착륙 시간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영국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런던 히스로공항 7개의 슬롯을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에 넘기는 식으로 경쟁 우려를 해소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동일한 방식을 사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운수권이나 슬롯을 반납해 합병 승인을 받을 경우 자칫하면 ‘항공 주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운수권을 반납하면 한국과 미국·유럽을 오가는 직항이 줄어든다. 알짜 슬롯을 반납한다면 국내 여행객들은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 등 항공사들이 비선호하는 시간에 현지에 도착하게 된다.

반면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대한항공으로서는 하루빨리 합병을 이뤄야 한다. 대한항공은 ‘규모의 경제’로, 부채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아시아나항공으로서도 합병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주도하고 있는 KDB산업은행 역시 합병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강석훈 KDB산업은행장은 6월 20일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한진칼 지분 매각 방안을 포함해 플랜B(대안)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항공 시장, 커다란 지각변동 앞둬

각국 경쟁 당국이 요구하는 것 중 하나는 합병 후에도 대한항공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 항공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한항공의 ‘독점’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이 반납할 슬롯을 가져올 수 있는 한국 항공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거론되는 이름은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 등이다.

유명섭 에어프레미아 대표는 6월 14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대한항공이 미주 5개, 유럽 4개 노선에서 신규 경쟁자를 찾고 있는 상황인 것은 맞다”며 “이 노선에 새로운 진입자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에어프레미아는 지난해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해 5월 뉴욕에 취항했고 6월 23일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취항하면서 유럽 노선도 확장했다.

티웨이항공은 한국의 저비용 항공사(LCC) 최초로 장거리 노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A330-300 3대를 도입해 호주 시드니 등 장거리 노선을 운항 중이다. 티웨이항공은 올해 대형기를 최대 5대까지 추가 도입해 장거리 노선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 티웨이항공 역시 에어프레미아와 마찬가지로 대한항공이 반납해야 하는 슬롯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경쟁자’들이 대한항공의 합병 승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5월 대한항공에 보낸 이의 제기서에 따르면 집행위는 “합병 시 해당 노선에서 가장 큰 여객, 화물 항공사가 되면서 소비자들의 중요한 대체 항공기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다른 경쟁사들은 규제 등 장벽에 막혀 서비스 확대가 어려우며 합병사에 대한 충분한 경쟁 압박을 가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즉, 한국 항공사 중에서는 ‘합병 대한항공’을 견제할 만한 항공사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한국 항공 시장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오게 된다. ‘메가 캐리어’의 탄생과 함께 양 사가 보유한 LCC들의 운명도 좌우된다. 현재 대한항공은 진에어,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역시 모회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하나의 LCC로 통합된다.

남은 국가인 미국·유럽·일본 중 한 곳이라도 승인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합병 항공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EU 경쟁 당국은 8월 3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8월 초 ‘합병 대한항공’의 운명은 어떤 방향이든 결론이 나게 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