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디커플링은 미국에도 상당한 피해
디리스킹으로 정책기조 전환한 바이든
EU 역시 중국 의존도를 줄이되 비즈니스는 지속
첨단기술 유출 방지 등에 대해선 국제적 관리 강화

[경제 돋보기]

지난 5월 세계 주요국(G7) 정상회의(일본 히로시마)에서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탈동조)보다 디리스킹(de-risking : 탈위험)을 추구하기로 합의했다. 디리스킹은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위원장이 처음 제시했다. 미국이 추진하던 디커플링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EU가 대안으로 제시한 대중국 정책이었다.

2개월 뒤인 3월 라이엔 위원장은 유럽연구소에서 디리스킹의 개념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했다. 핵심은 미국이 추구하는 첨단 기술의 대중국 이전을 방지하는 대신 중국과 비즈니스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무역을 무기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심 광물과 범용 제품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되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는 중국과 협력을 추구할 것이란 점도 밝혔다.

얼마 안 가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디리스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개 강연을 통해 디리스킹을 대중국 정책으로 제시했다. 심지어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중국위원회 위원장도 디리스킹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 기조는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됐다. 사실상 미국과 EU 간 정책 조율 기구인 G7 정상회의는 디리스킹을 합의하는 유용한 계기가 됐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불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말기 미국은 디커플링을 추진했다. 2020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캘리포니아 주 닉슨 대통령 기념관 연설에서 중국을 ‘괴물(frankenstein)’이라고 묘사하고 중국공산당(CCP)이 이끄는 중국과는 더 이상 경제 교류를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디커플링 정책 배경을 설명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공산당의 속성을 잘 몰라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신자유주의를 과신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용한 결과 오늘날 중국이 경제 안보 위험을 줄 정도로 발전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인식은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를 제안했던 배경이 된다.

2021년 정권을 잡은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행정부의 중국 정책 기조를 계승하면서 디커플링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리를 뒀다. 중국 수출품에 대해 25%의 고관세를 부과하는 디커플링 정책으로 미국도 상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세계 상품의 20%를 공급하는 중국과 거래를 끊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중국과 완전한 디커플링을 하되 범용 상품에 대해서는 중국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 경제적으로 바람직하다는 판단하에 ‘전략적’ 디커플링으로 대중국 정책을 완화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압력을 통해 중국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추진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경쟁력을 키워 중국보다 앞서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투자·연대·경쟁’으로 명명됐고 반도체과학법 등 여러 경제 안보 법을 제정해 미국 내 첨단 산업 기반을 조성하고 동맹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간파한 EU는 디리스킹을 공론화했고 지난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디리스킹을 대중국 정책으로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디리스킹의 구체적 내용이 논의되겠지만 핵심은 민감한 기술과 전략 물자(이중 용도 제품)의 관리, 경제 안보 위해를 줄 수 있는 투자 심사 강화 등이 될 것이다. 중국과 무역 거래를 지속하되 중국과 관련된 전반적인 위험을 파악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EU가 합의한 디리스킹은 현재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여건에서 최선의 정책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과 거래를 지속하기로 한 것은 나날이 악화되던 통상 환경을 다소 개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 유출 방지, 전략 물자 관리 강화, 공급망 실사 등에 대한 국제적 관리가 강화될 것이다. 디리스킹 통상 환경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 모색을 서둘러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G7의 ‘디리스킹’ 정책과 한국의 과제[정인교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