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찾아온 초호황인데 인력 기근에 시름
조선 3사, 국적도 불문 ‘인재 쟁탈전’ 돌입
LNG선 화물창 기술 국산화도 시급

[스페셜 리포트]
HD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직원들이 컨테이너선 격벽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HD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직원들이 컨테이너선 격벽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슈퍼사이클을 맞은 한국 조선업계가 수주 풍년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수주 잔액을 2026년까지 3년 치나 쌓아 뒀지만 정작 배를 만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인적 경쟁력도 불투명하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조선 빅3는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산하 HD현대중공업은 6월 1일 대만 선사 양밍해운과 1만55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액화천연가스(LNG)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을 수주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번 계약으로 5개월 만에 114억2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해 연간 목표 157억4000만 달러(약 20조8000억원)의 73%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도 최근 북미 지역 선사로부터 LNG 운반선 2척을 총 6592억원에 수주하며 올해 수주 목표(95억 달러)의 34%를 달성했다. 총 32억 달러 규모다. 한화오션은 총 5척, 10억6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해 연간 목표치(69억8000만 달러)의 15%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한국 조선업이 슈퍼사이클에 올라탔다’는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있는 배경이다.

3년 치 일감 쌓였는데…일할 사람 없어 ‘썰렁’

일감은 모처럼 폭주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27년까지 한국 조선업 전체에 4만3000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

조선업계에선 인력 쟁탈전에 불이 붙었다.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출범 후 처음으로 대규모 채용에 나섰다. 채용 규모에 제한도 두지 않았다. 연구·개발(R&D)과 설계 등 기술 분야를 포함한 전 분야에서 연말까지 상시 채용을 진행할 방침이다. 조선업 종사자 수는 업계가 호황이던 2014년 20만3441명이었지만 2022년 말 기준 9만2394명으로 54% 줄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시절 경쟁사 대비 낮은 연봉으로 인력 이탈이 심각했다. 2017년 말까지만 해도 1만 명이 넘었지만 2022년에는 8600명 규모로 감소했다. 이미 각각 400명, 170여 명을 충원한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추가 채용에 나서고 있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선 국적도 가리지 않는다. 조선업계는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단기 외국 인력 고용을 늘리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는 조선업계의 인력난 타개를 위해 외국 인력 도입 제도 개선에 나섰고 그 결과 올해 1분기까지 5000명이 넘는 외국 인력을 추가로 확보했다. 외국 인력의 빠른 정착을 위해 HD현대중공업은 업계 최초로 통역 인원 22명이 일하는 외국인 지원센터를 열었다.

한화오션은 최근 거제사업장(옥포조선소)의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를 리모델링했다. 삼성중공업은 협력사와 합심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정착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선 인력 부족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과거 조선업 불황기에 대대적인 구조 조정으로 인력들이 이탈한 영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인력 확보는 어려워 보인다”며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삼호중공업 직원들이 LNG 화물창 내 보온재 의장을 설치·용접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현대삼호중공업 직원들이 LNG 화물창 내 보온재 의장을 설치·용접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LNG선 핵심 ‘화물창’ 로열티, 한 척당 100억원

올해 1분기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의 90%를 한국의 조선 3사가 수주하며 사실상 LNG선을 독식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LNG선의 핵심 기술인 화물창 기술 국산화도 과제다. 수주 행진을 이어 갈수록 LNG 보관 기술인 화물창 원천 기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프랑스 GTT에 내야 하는 로열티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LNG 운반선은 천연가스를 섭씨 영하 162도로 냉각, 액화해 600분의 1로 크기를 줄인 LNG를 해상으로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화물창을 섭씨 영하 162도의 극저온 상태로 유지시키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천연가스 성분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메탄(CH₄)의 끓는점이 섭씨 영하 162도이기 때문이다.

화물창은 모양에 따라 크게 ‘멤브레인형(membrane type)’과 ‘모스형(moss type)’으로 나뉜다. 모스형은 스웨덴의 모스마리타임이 만든 공 모양(구형) 탱크를 선체에 탑재하는 선형으로 선체와 화물창이 분리돼 있고 공간 효율성이 떨어진다. 멤브레인형은 선체와 사각 형태의 화물창이 합쳐진 일체형으로 모스형보다 용적 효율이 높아 경제성이 뛰어나다. 프랑스 GTT가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운항하는 LNG 운반선의 70% 이상이 멤브레인 방식으로 건조된다. LNG 화물창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GTT에 한국 조선사들은 척당 선가의 약 5%(약 100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LNG 운반선 수주 증가에 따라 매년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어 부가 가치가 유출되는 문제가 있다.

한국 조선사들은 GTT와 기술 라이선스 기본 계약(TALA)을 하고 20년 이상 거래를 유지해 오고 있다. 2022년 수주한 LNG 운반선은 121척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조2000억원 이상을 GTT에 로열티로 지급한 셈이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2년 인도한 200K LNG 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2년 인도한 200K LNG 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국산화로 수익성 높여야

한국 조선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독자 화물창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다만 기술적 완성도 입증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한국가스공사와 조선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가 2004년 정부 국책 과제에 참여해 10여 년 만에 1세대 한국형 화물창 기술(KC-1)을 공동 개발했지만 품질 논란으로 5년째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에 걸쳐 기술 개발에 정부 출연금 83억7000만원을 포함한 연구·개발비 197억원과 제작비 230억원 등 총 427억원이 투입됐지만 KC-1을 적용한 LNG선에서 LNG의 냉기가 화물창 외벽에 전달되는 ‘콜드 스폿’ 현상이 발견됐고 거듭된 수리에도 결함이 계속돼 결국 운항이 중단됐다.

선박을 건조·수리한 삼성중공업과 운항사인 SK해운이 발주사이자 LNG 화물창 설계 업체인 한국가스공사에 2019년 200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며 3사간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LNG선은 운항 기간이 30년 이상으로 단기간 기술 검증과 신뢰도 확보가 어렵다. 이 때문에 해외 선사는 오랜 기간 기술이 검증된 GTT의 기술을 선호한다. 한국 조선사들이 독자 화물창을 개발해도 트랙 레코드를 축적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정부와 조선업계는 한국 선사 발주 LNG선에 국산 화물창을 우선 적용해 기술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할 계획이다.

최근 한국형 화물창 기술 KC-2를 최초로 적용한 7500㎥급 LNG 벙커링선 ‘블루웨일호’가 본격 운항에 들어갔다. HD현대중공업이 울산조선소에서 건조한 블루웨일호에는 2020년부터 총 553억원이 투입됐다.

산업계 관계자는 “블루웨일호를 통해 KC-2 기술이 검증되면 대형 LNG 운반선에 적용하는 상용화 과정을 거쳐 한국도 독자적 화물창 기술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수소 화물창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선급협회(ABS)와 드레스덴 공대 등 유럽 소재 14개 기관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총 1000만 유로(약 140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4년간 투자해 16만 입방미터(㎥)급 대형 액화수소 화물창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액화수소 화물창 개념 설계와 기본 설계는 HD한국조선해양이 주도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