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에코프로, SVB 사태, 무더기 하한가, 강세장….

올해 상반기 증시 단면을 보여주는 키워드들이다. 연초만 해도 증권가에서 ‘상저’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주식 시장은 달아올랐다. 국내외에서 대형 사건들이 연일 터지며 증시 하락을 부추겼지만 시장의 ‘피벗(통화 정책 전환)’ 기대감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해 상반기 증권가를 휩쓴 사건들을 정리했다. ① 2641.16
 에코프로부터 SVB사태까지...2023 상반기 주식 시장 5대 사건
지난해 말 주요 증권사들은 2023년 연간 전망 보고서를 내며 ‘상저하고’를 외쳤다. 2023년 1~2분기에 주가 저점이 형성된 뒤 하반기부터 상승하는 상저하고 형태를 띨 것이란 분석이었다. 전망은 빗나갔다. 상반기 다수의 경제 지표들이 ‘상저’를 가리켰지만 주식만은 예외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0일(당시 종가 2155.49) 저점을 찍은 코스피지수는 지난 6월 9일 종가 기준 2641.16을 기록하며 저점 대비 22% 상승해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고 기술적 강세장에 진입했다. 통상 주식 시장에서는 주가지수가 저점 이후 20% 이상 상승하면 강세장으로, 고점 대비 20% 하락하면 약세장으로 간주한다.

연초 약세장의 근거는 명확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현실화,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정책 방향 전환 가능성 미미(지속적인 금리 인상), 수출 부진과 기업 실적 불확실성 등이었다. 증권가의 상저하고 분석에 일반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와 곱버스(코스피200 인버스2X) 상장지수펀드(ETF)에 자금을 넣었다.
반면 외국인들의 판단은 달랐다. 2022년 12월 한 달간(12월 2~29일) 약 1조876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던 외국인은 1월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월 31일 단 하루를 제외하고 모두 순매수했다.

달러 약세와 중국 경기 부양 기대감이 투자 배경이었다. 강력한 제로 코로나19 정책으로 일관하던 중국이 지난해 12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면서 중국 경기 부양 기대감이 살아난 영향이다. 여기에 시장에서는 Fed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1400원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연초 달러당 12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한국 증시로 외국인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요인이자 시장이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였다.

잘나가던 코스피는 3월 실리콘밸리뱅크(SVB)로 대표된 미국 은행의 위기에 주춤했지만 위기 여파로 Fed의 긴축 방침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선제적 예측이 다시금 증시를 끌어올렸다. 금융가에는 금리 인상 조기 종료론이 불붙었다. Fed는 6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연내 기준금리가 50bp(1bp=0.01%포인트)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암시했지만 시장은 ‘피벗’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에 따른 Fed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 경기 둔화 우려 완화 등에 따른 밸류에이션 팽창이 코스피 상승을 주도했다”고 말했다.② 배터리의 반란
 에코프로부터 SVB사태까지...2023 상반기 주식 시장 5대 사건
 에코프로부터 SVB사태까지...2023 상반기 주식 시장 5대 사건
2023년 상반기 주식 시장의 스타는 단연 ‘에코프로’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에코프로의 올해 상승률은 6월 21일 종가 기준으로 586.5%다. 에코프로비엠의 주가도 연초 이후 이날까지 180% 정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에코프로 3형제’ 중 하나인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주가는 42.4% 상승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기간 27.0%, 52.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익률이다.

에코프로 3형제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 업체다. 이들의 시가 총액은 웬만한 대기업을 뛰어넘는다. 6월 21일 기준 에코프로의 시총은 20조2903억원, 에코프로비엠의 시총은 25조5751억원,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시총은 9810억원으로 총 46조8464억원이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포스코홀딩스(32조3485억원), 현대차(43조1524억원) 시총보다 크고 삼성SDI(47조7913억원)에 대적하는 규모다.

‘에코프로 3형제’의 상승은 2차전지 수요 증가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수혜 등의 호재에 힘입었다. 특히 유튜브를 중심으로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매수 열풍이 불었다. 국내외 증권사가 잇따라 과열을 경고했지만 ‘밧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 등 에코프로 강세론자들의 주장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공매도에 대한 반감도 매수세와 주가 상승을 거들었다.

타이거자산운용은 고객 레터를 통해 낮은 성과에 대해 사과하면서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의 상승을 두고 “시장의 쏠림과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K-2차전지는 제2 반도체’라는 믿음을 가진 개인들이 에코프로 3형제를 사들였다. 연초부터 6월 21일까지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개인 순매수 종목 톱3(2~3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반면 외국인들은 이 기간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을 팔아치웠다. 외국인 매도 종목 4위와 5위다. 에코프로 3형제의 인기는 2017년 바이오주 열풍을 능가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에코프로 형제와 함께 2차전지주 초강세 흐름으로 상장지수펀드(ETF)들도 올해 상승률 상위권에 나란히 올라 있다. 타이거(TIGER) 2차전지테마 상승률이 86.14%로 가장 높고 타이거 KRX2차전지 K-뉴딜레버리지, 코덱스 2차전지산업, KB스타 2차전지액티브 등이 뒤를 이었다.③무더기 하한가4월 24일 한국 증시에서는 장 개장 직후 중견 상장사 8개 종목이 일제히 하한가(-30%)로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폭락은 며칠간 계속됐다. 특히 서울가스·대성홀딩스·선광 등 3개 종목은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 연속 하한가를 찍었다. 4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것은 8년 전 가격 제한 폭이 30%로 늘어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1주일간 증발한 8개 종목의 시가 총액은 8조원에 달했다.

8개 종목 모두 프랑스계 증권사인 소시에떼제네랄(SC)증권에서 대량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또한 증권사에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 거래 융자 비율도 다른 종목에 비해 높았다. 이후 시장에서는 8개 종목의 폭락에 라덕연 대표가 운영하는 미등록 투자 자문 업체 H사를 중심으로 한 주가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8개 종목은 2~3년에 걸쳐 꾸준히 주가가 상승하면서 많게는 10배 이상 뛴 것으로 확인됐다. H사 투자자는 1000여 명, 투자 금액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자 중에는 가수 임창정·박혜경 씨 등 연예인을 비롯해 이중명 아난티그룹 전 회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장 모 위원 등 정·재계 인사가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차액 결제 거래(CFD) 반대 매매’가 주가 폭락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됐다. 금융 당국은 CFD 규제에 나섰고 CFD 거래를 지원하던 증권사 모두 신규거래를 중지했다.

CFD 거래 중지로 일단락된 듯했던 하한가 사태는 6월 14일 또 재연됐다. 이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4개 종목과 코스닥 종목 1개 등 총 5개 종목이 비슷한 시각에 하한가로 진입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들 종목의 주가가 최소 수개월간 꾸준히 상승해 왔다는 점에서 ‘제2의 라덕연 사태’를 의심하고 있다.④ 일학개미올해 상반기에는 세계 증시도 핫했다. 연초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금융 위기론이 불거지며 전세계 증시가 위축됐고 2분기에는 ‘잃어버린 30년’ 속에 갇혔던 일본 증시가 거품 경기 시절의 기록을 터치할 만큼 활황 중이다.

일본 증시의 닛케이 평균 주가는 1990년 7월 이후 33년 만에 3만3000을 넘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1980년대 호황기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과 통화 약세의 혜택, 미·중 갈등에서 온 지정학적 반사 이익이 일본 증시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보증이 더해져 전 세계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30년 만의 수퍼 엔저는 이런 상황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6월 21일 엔화 가치는 1달러에 142.06엔을 기록했다. 일본 엔화는 작년 이후 줄곧 130~149엔이라는 엔저를 유지하고 있다. 원화보다 하락해 6월 19일 한때 100엔당 897원을 기록, 8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증시 활황에 외국인의 주식 거래금도 100조 엔(약 900조원)을 넘었다. 일본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매 규모가 100조 엔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에서도 ‘일학개미’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월 들어 21일까지 한국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투자한 순매수 규모는 4017만129달러다. 전달 순매수액인 3441만7212달러를 벌써 넘어섰다. ⑤ 피벗숱한 사건·사고에도 상반기 주식 시장을 지탱해 온 힘은 ‘긴축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다. 당초 투자 전문가들은 2023년 글로벌 경기는 인플레이션과 긴축 그리고 침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올해 1분기 SVB 파산 이후 금융가에는 금리 인상 조기 종료론이 고개를 들었다. Fed가 금리를 더 인상하면 신용 위기가 터지므로 인상을 더 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Fed 측은 정책 목표의 우선순위가 물가 안정인 만큼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은 이를 믿지 않았다. 미국 자산 운용사 뉴버거 버먼의 홀리 뉴먼 크로프트 선임 자산 고문은 5월 25일 “시장이 Fed의 피벗 가능성을 너무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메시지와 시장 기대 사이에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Fed는 6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기준금리를 5~5.25%로 동결했다. 하지만 FOMC 위원 18명 중 9명이 2023년 말 적정 금리로 5.5~5.75%를 제시했다. 0.25%포인트 인상을 가정하면 연내 두 번의 인상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올해 말 최종금리를 최대 6.25%까지 보는 위원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최소 두 번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6월 점도표를 믿지 않고 있다. FOMC 결과가 나온 직후 블룸버그가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다고 생각하니’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28%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숱한 사건·사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빚투’가 줄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빌려 주식 투자를 한 돈, 즉 신용 거래 잔액은 6월 20일 기준 19조1906억원을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이 9조2650억원, 코스닥시장이 9조9256억원이다. 전체를 기준으로 신용 거래 잔액은 5월 19일 18조4272억원에서 약 한 달 만에 7634억원(4.1%) 늘어난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하반기 강세장을 이어갈 것이란 낙관론이 우세한 가운데 코스피가 단기 과열 양상을 보이며 조정을 겪을 것이란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