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방으로 쓰이던 근대 한옥의 변신, 목포 춘화당게스트하우스

1929년 지어진 본채
1929년 지어진 본채
구불구불한 골목 틈으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간판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춘화당 한약방. 또박또박하게 새겨진 파란 글자와 붉은 벽돌담과 조화가 못내 정겹다. 어설프게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도 이런 은색 대문이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 위로 목포 100년의 역사가 펼쳐진다.춘화당에서 찾은 근대 한옥만의 매력일제강점기인 1929년(등기 연도 1935년) 건립된 춘화당은 목포역과 유달산 사이, 원도심을 지키고 있는 근대 한옥이다. 1950년대 제중병원, 이후 조내과를 거쳐 1980년대 한약방으로 쓰였고 당대의 지식인들이 활동하던 공간이었다. 현재 본채와 별채는 숙박 시설로, 바깥의 건물은 카페로 쓰이고 있다.
‘춘화당 한약방’ 간판이 붙어있는 춘화당게스트하우스 입구
‘춘화당 한약방’ 간판이 붙어있는 춘화당게스트하우스 입구
과거 소유자는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후 목포에서 부란취병원 원장을 지낸 의사 최섭 씨다. 광복 후 미군정기 목포시장을 지내고 정명여학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목포의 세력가였다. 조경에도 유달리 조예를 뽐냈던 그의 세심한 손길을 정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령 100년을 훌쩍 넘는 오래된 나무와 귀한 라일락·철쭉·동백 등 사계절을 대표하는 꽃이 한옥과 어우러져 그 자태를 완성한다. 건물 내부에 있는 상량문(己巳)은 이 건물이 목포 약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복도형 툇마루, 처마 밑 유리 장식창 등 근대 한옥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목포시문화유산 제24호로 지정됐다.고요한 공간에 배어든 주인장의 배려‘춘화당 한약방’ 간판을 마주한 카페 ‘문화공간 봄’에서부터 머무름은 시작된다. 체크인·체크아웃이 이뤄지는 카페에는 남도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웰컴 드링크인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목포의 따스함을 간직한 작품들을 지그시 눈에 담기 좋은 순간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문화를 향유하던 공간답게 각종 문화 콘서트·클래식 공연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스테이 옆 카페에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스테이 옆 카페에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정원을 지나면 고즈넉한 본채를 마주하게 된다. 사랑방·안방·건넌방 등 총 3개의 객실, 2개의 화장실, 1개의 샤워실과 공용 거실로 이뤄져 있다. 객실을 비롯해 내부 곳곳에서 소암 현중화 선생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띈다. 공간이 간직한 세월의 무게를 한층 묵직하게 만드는 존재다.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근대 한옥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했지만 정성 들여 쓸고 닦고 관리한 덕에 고택 특유의 불편함은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주인장은 이렇게 당부한다. “포근하고 운치 있지만 건축물이 내는 크고 작은 소리가 동반되는 곳이에요.” 솔직한 고백(?) 때문일까. 춘화당을 이용하는 숙박객의 대부분은 다소의 소음은 낭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넓은 이들이라는 전언이다. 오래된 공간의 매력을 아는 이에겐 ‘삐걱’, ‘끼익’ 거리는 소리조차 어쩌면 불협화음이 아니라 감미로운 노랫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건물 본연의 매력을 살렸다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건물 본연의 매력을 살렸다
정원 왼쪽에 자리한 별채는 1975년 새로 추가된 공간이다. 투 룸 구조의 독립된 공간으로, 좀 더 편안한 쉼을 원하거나 동행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별채 역시 유달산을 그대로 옮겨온 듯 싱그러운 정원을 품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목포 원도심 중앙에 자리해 각종 관광지·맛집와 접근성이 좋다. 목포근대역사관·구목포일본영사관 등 역사적 자산을 비롯해 유달산공원·노적봉예술공원·목포근대역사문화예술공원 등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빵지순례’도 놓치지 말자. 전국 5대 빵집이자 목포의 명물인 크롬방제과가 인근에 있다.

박소윤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