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확장하는 ‘초고가 관광 상품’…얼마나 높은 고도 가느냐로 주도권 다툼

[글로벌 현장]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 비행사들.(사진=연합뉴스)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 비행사들.(사진=연합뉴스)
미국 북동부 대서양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타닉호를 둘러보려던 관광 잠수정이 최근 내파했다. 영국 프랑스 파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탑승객 5명이 전원 사망했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은 3800m(1만2500피트) 심해를 탐사하는 관광객이란 점과 이들이 1인당 25만 달러나 지불했다는 점에서다.

세계 부호들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이런 초고가 관광 상품은 이제 우주로 확장하고 있다. 첫발을 뗀 것은 상업용 우주 관광 사업을 추진해 온 버진갤럭틱이다. 탑승권 가격이 1인당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데다 사망 위험이 있는 데도 예약자가 800여 명에 달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매달 우주 관광 떠나는 시대 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버진갤럭틱은 영국 출신 괴짜 사업가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다. 2004년 우주 관광을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창업 9년 만인 6월 말 일반인을 태운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버진갤럭틱의 우주 비행선 ‘VSS 유니티’엔 이탈리아 공군 장교 2명과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 소속 엔지니어 1명, 조종사 3명이 탑승했다. 이탈리아인 3명은 돈을 내고 탑승한 유료 승객이었다.

모선인 ‘VMS 이브’가 동체 아래에 유니티를 매달고 고도 13.7km까지 날아오른 뒤 모선에서 분리된 유니티가 자체 엔진으로 지구 준궤도(고도 85km)로 진입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우주의 기준은 고도 80km 이상부터다. 유니티의 최고 속도는 음속의 3배인 마하3(시속 3672km)까지 올라갔다.

승객 3명과 승무원 3명은 우주에서 약 4분 동안 무중력 상태를 체험했다. 비행 시간은 총 72분으로 기록됐다. 이탈리아 승객들은 자국 정부에서 요청 받은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시리샤 밴들라 버진갤럭틱 부사장은 “우주 연구와 우주 체험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상업용 우주 비행은 당초 계획보다 많이 늦춰졌다. 공중 폭발과 수차례의 부품 결함 이슈를 겪는 등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상업용 우주 비행의 결실은 2021년 7월 브랜슨 회장이 직접 시험 비행한 지 2년 만에 맺어졌다. 시험 비행 당시 비행선 복귀 과정에서 항공 관제 구역을 잠시 이탈했던 사실이 드러나 FAA 제재를 받기도 했다.

버진갤럭틱은 10여 년에 걸쳐 세계 재력가들을 대상으로 우주 관광 상품을 판매해 왔다. 현재 예약자만 800여 명에 달한다. 좌석당 가격은 초기에 25만 달러였는데 성공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지금은 45만 달러다. 탑승 희망자들은 일정 보증금을 납부한 뒤 순번대로 예약했다.

2018년 7월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공모가 10달러)됐던 버진갤럭틱(티커 SPCE) 주가는 그동안 급등락해 왔다. 호재와 악재가 반복되면서 2021년 2월과 6월 각각 주당 60달러에 육박했지만 3달러 밑으로 미끌어진 적도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집중 매입하는 밈 주식(유행 종목)으로 여러 번 거론됐다.

6월 초부터 우주 관광 성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며 하루 27% 뛰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성공하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이 회사는 한 번도 이익을 내본 적이 없다. 작년 매출은 231만 달러에 그쳤고 한 해 순손실이 5억 달러를 넘었다. 최대 주주인 아랍에미리트(UAE) 공공투자펀드(지분율 37.8%)와 2대 주주인 버진그룹·브랜슨 회장(11.9%)의 투자금, 증시 공모 자금 등으로 연구·개발 비용을 충당해 왔다.

우주 관광 사업이 본격화하면 재무 구조가 크게 개선될 것이란 게 버진갤럭틱의 기대다.

버진갤럭틱은 8월 둘째 유료 관광 우주선(프로젝트명 ‘갤럭틱 02’)을 띄울 계획이다. 이후 매달 우주로 관광객을 보내기로 했다. 올해 유료 비행 스케줄만 6회 잡혀 있다. 공중 폭발 등 사고 위험이 없지 않지만 버진갤럭틱은 탑승객 전원에게서 이런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있다.

버진갤럭틱은 월 단위가 아니라 매주 우주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신형 비행선 ‘델타’를 개발 중이다. 안정적인 우주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면 연간 400여 편씩 띄울 예정이다.

다만 예기치 못한 위험이나 사업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버진갤럭틱에서 2017년 분사한 위성 발사 전문 업체 버진오빗은 수차례 발사 실패 끝에 올해 5월 문을 닫았다. 뉴욕 증시 상장도 폐지됐다.

브랜슨·베이조스·머스크…주도권 3파전

상업용 우주 여행은 머지않은 시점에 각광받는 비즈니스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버진갤럭틱 외에 블루오리진과 스페이스X도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버진갤럭틱 외엔 모두 비상장사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2000년에 세운 블루오리진은 우주 비행 기술력에서 앞선 업체로 분류된다. 2021년 7월 이후 지금까지 총 6차례 유인 준궤도 비행에 성공했다. 초기 비행 때 베이조스 창업자가 직접 탑승하기도 했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천문학적인 돈을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쏟아부어 왔다. 자금을 마련하려고 매년 아마존 지분을 10억 달러어치 이상씩 매각해 논란이 일었을 정도다.

블루오리진은 미 항공 우주 당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NASA가 50여 년 만에 재추진하는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와 관련, 34억 달러짜리 비행 계약을 따냈다. 지금까지 BE-3U 등 로켓 엔진 3종을 선보였고 넷째 신형 엔진(BE-7)을 개발 중이다.

다만 작년 무인 비행 당시 이상 현상이 발견돼 시험 비행을 중단한 상태다. 블루오리진은 내년 3월 우주 비행을 재개할 계획이다. 지구 밖 고도 100km 수준으로 보내는 게 1차 목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스페이스X도 우주 프로젝트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다. 우주 여행 비용을 낮추고 인류를 화성에 정착시키겠다는 목적으로 2002년 설립했다.

2021년 9월 사흘간의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민간 우주 비행사 등을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특히 차세대 비행선인 ‘스타십’은 역대 최대 규모로 재사용이 가능한 구조다.

다만 지난 4월 스타십의 첫 궤도 비행에 나섰다가 하단의 ‘슈퍼 헤비 로켓’과 분리하는 데 실패했다. 멕시코만 상공에서 약 4분간 불규칙적으로 빙글빙글 돌다 인위적으로 폭파됐다.

머스크 CEO는 “부분적 실패 후 과거 러시아가 사용했던 ‘핫 스테이징’ 분리 점화 방식을 활용하기로 했다”며 “차기 비행의 성공 확률은 60% 정도로 4월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타십 프로젝트에 올해만 3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며 “가급적 빨리 화성에 가는 게 목표”라고 부연했다.

스페이스X는 별도로 유럽우주국(ESA) 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계약을 속속 체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산 로켓을 활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은 지금까지 170회 이상 발사됐고 모두 재사용됐다. 역대 최대 기록이다. 작년에만 성공적으로 61회 발사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탑승객들을 얼마나 더 높은 고도로 보내는지에 우주 여행 비즈니스의 주도권 향배가 달려 있다고 예측한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