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징역 2년 확정에도 솜방망이 처벌 논란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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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에 영업 비밀을 유출한 전 코닝정밀소재(구 삼성코닝정밀소재) 직원들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이 증거를 보완해 3년여간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형사 처분을 받아 냈다. 다만 피해 규모에 비해 가벼운 형량이 나오면서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3년 공방 끝에 무죄 판결 뒤집혀


대법원 1부(재판장 박정화 대법관)는 2023년 6월 1일 영업 비밀 누설 등의 혐의를 받는 전 코닝정밀소재 직원인 A 씨와 B 씨에 대해 원심대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A 씨에게는 징역 2년, B 씨에게는 벌금 200만원 및 집행 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3~2016년 코닝정밀소재의 액정표시장치(LCD)용 유리기판 제조에 관한 영업 비밀을 중국 둥시그룹에 넘겨준 혐의를 받았다. 코닝정밀소재에서 일하다가 2013년 둥시그룹으로 이직한 A 씨는 그해부터 2016년까지 코닝정밀소재의 유리기판 제조 공법을 보여주는 설계도면 9개 등 14개 영업 비밀을 둥시그룹에 알려줬다.

2013~2014년에는 영업 비밀이 담긴 문서를 통역인을 통해 전달하는 수법으로 영업 비밀 78개를 빼돌렸다. B 씨는 코닝정밀소재에서 근무하던 2014년 회사의 유리 절단 공정에 필요한 수치를 A 씨에게 알려준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 사건에선 특히 코닝정밀소재가 장기간 투자해 개발한 ‘퓨전 공법’과 관련된 성형 기계 도면, 여러 수치 등이 유출된 데 따른 피해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퓨전 공법은 녹인 유리 용액을 수직으로 낙하시켜 냉각하는 기술이다.

코닝정밀소재는 이 공법으로 제조한 LCD용 유리기판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대형 디스플레이 업체에 판매해 왔다. 이 회사는 2022년 매출 1조4675억원, 영업이익 585억원을 냈다.

수사를 맡았던 대전지방검찰청은 2016년 11월 영업 비밀 국외 누설(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1심을 담당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이 2020년 2월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일부 사실은 영업 비밀에 해당하지 않으며 일부는 누설했다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증거 보완에 들어갔다. 추가 수사를 통해 영업 비밀 누설 일시와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했고 영업 비밀이 둥시그룹의 기존 라이선스 계약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새로 밝혀내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이 같은 내용을 앞세워 2심과 대법원에서 잇달아 유죄 판결을 받아 냈다.

여전한 ‘솜방망이 처벌’…앞으론 강화되나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과 같은 기술 유출 범죄에 관한 처벌이 앞으로 강화될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6월 12일 양형위원회를 열고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초대형 기술 유출을 부추긴다는 판단에서다.

대검찰청의 ‘기술 유출 범죄 양형 기준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8년간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재판(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496명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73명에 불과했다. 실형이라도 형량이 평균 징역 12개월에 그쳤다. 집행 유예의 평균 형량은 징역 25개월이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로 이직을 준비하던 중 최첨단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과 관련한 기밀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직원 또한 지난 3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양형 기준이 현행법에서 규정한 형량보다 낮다 보니 처벌이 가볍고 기술 유출 범죄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양형 기준에서 해외로 기술을 빼돌린 범죄는 기본 징역 1년~3년 6개월, 가중 처벌을 하더라도 최장 징역 6년에 불과하다.

국가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3년 이상 징역을 받는 산업기술보호법에 못 미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적발된 산업 기술 해외 유출 범죄는 93건, 피해 금액은 약 2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재승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피해 금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양형 기준 감경‧가중 구간 자체를 너무 짧게 잡은 측면이 있다”며 “기업 연구·개발비를 포함한 피해 금액 산정 방안을 따로 마련하고 양형 기준도 더 무거운 형벌을 집행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돋보기]
삼성 반도체 공장 중국에 통째로 복제하려던 사건도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노하우가 담긴 자료를 몰래 빼내 중국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던 일당이 한꺼번에 재판에 넘겨지면서 기술 유출 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주도한 이번 범행으로만 최대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수원지방검찰청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진성)는 2023년 6월 12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임원 등을 지낸 A 씨를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A 씨와 함께 삼성전자 협력회사인 B 사를 통해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빼낸 공범 6명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A 씨는 삼성전자에서 18년, 하이닉스반도체에서 10년 동안 임원으로 재직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다. 그는 2015년 중국 청두시로부터 자본 약 4600억원을 끌어와 중국에 회사를 세우고 대만의 한 전자제품 업체로부터 8조원대 투자를 약정받아 싱가포르에 반도체 업체 C 사를 따로 설립했다. 이후 고액 연봉을 내세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출신 반도체 인력 200여 명을 C 사로 영입했다.

회사 자본과 인력 확보를 마무리한 A 씨는 2018년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지역에 복제 공장을 짓는 작업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설계도면 △클린룸 조성 조건(BED·베이식 엔지니어링 데이터) 등을 몰래 획득해 생산 기지 건설에 무단으로 활용했다. 해당 설계 자료는 삼성전자가 30년 넘게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영업 비밀이다.

검찰은 이 자료의 가치가 최소 3000억원, 최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설계도면 작성 비용만 최소 1428억원, 최적의 공정 배치도 도출 비용은 최소 1360억원, BED 기술 개발 비용은 최소 124억원으로 추산했다.

특히 공정 배치도와 BED는 3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낸드플래시 제조 기술로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한다. 수사팀은 이번 사건을 ‘국내 반도체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단편적인 기술 유출이 아니라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제해 중국에서 반도체 제조·양산을 시도했다”며 “삼성전자와 비슷한 품질의 제품이 대량 생산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술 유출 사건을 두고 중국 지방정부와 대만 자본이 손잡고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 노하우를 단숨에 탈취하려는 시도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중국과 대만 등이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요 경쟁 상대라는 점, 삼성전자 청두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지역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 한 대담함 등이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