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보험금 5억원 지급하라는 원심 파기 환송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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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상해보험 약관상 실제 손해액을 따질 때 ‘소송이 제기된 경우’에 해당하려면 보험금 청구 소송이 아닌 손해 배상 소송 등 별도 소송이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보험자가 보험 사고에 관해 다른 소송이 계속되거나 그에 관한 확정 판결 등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보험사와 보험금 지급 책임의 유무와 범위를 판단하는 법원에 혼동을 주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동안 쟁점이 유사한 하급심들에서는 ‘소송에서의 확정 판결 금액’에 대해 “피보험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 등이 제기돼 손해 배상의 범위에 관한 확정 판결을 받은 금액”으로 정의해 왔는데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원심 “보험금 5억원 지급해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6월 15일 A 씨가 현대해상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보험사가 A 씨에게 보험금 5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해당 특별 약관상 ‘실제 손해액’의 기준이 되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는 보험 사고에 해당하는 자동차 사고 피해에 관해 손해 배상 청구 등 별개의 소송이 제기된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판시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상해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 그 자체가 제기된 경우도 실제 손해액 기준에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판단한 원심 판결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원고 A 씨의 배우자 B 씨는 2017년 7월 4일 현대해상과 자동차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A 씨를 피보험자로 한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이 포함됐다. 피보험자의 사망 및 상해의 경우 보상 한도 5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A 씨는 2018년 1월 27일 충북 제천시의 한 도로에서 자신이 운전하던 피보험 차량이 반대편 차로로 미끄러지면서 맞은편에서 정상 주행하던 덤프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A 씨는 외상성 뇌출혈, 두피 열상, 뇌경색 등의 진단을 받고 수술·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이 사고로 인해 약 19억원의 손해를 보게 됐다며 보험사에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에 따른 보험금으로 보상 한도액인 5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사건 사고 당시 적용되던 피고의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의 특별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피보험 자동차를 소유·사용·관리하는 동안 그 운행으로 인한 사고로 죽거나 상해를 입은 경우 피고는 그로 인한 손해를 보하되 지급할 보험금은 ‘실제 손해액’에서 비용을 더하고 공제액을 뺀 금액”이라고 규정했다.

해당 특약은 실제 손해액은 ‘보험 약관에 첨부된 보험금 지급 기준에 따라 산출한 금액’ 또는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 대한민국 법원의 확정 판결 등에 따른 금액으로서 과실 상계 및 보상 한도를 적용하기 전의 금액’으로 정의했다.

재판 과정에서 A 씨는 “일실 수입, 간병비, 위자료 등을 포함해 약 19억원의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현대해상이 보험금 최대 한도인 5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대해상은 “A 씨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가 아닌 보험금 지급 기준에 따라 산출한 금액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쟁점은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에 관한 이 사건 특별 약관상 ‘법원의 확정 판결 등에 따른 금액으로서 과실 상계 및 보상 한도를 적용하기 전의 금액’을 ‘실제 손해액’으로 볼 수 있게 되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가 어떤 의미인지였다.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를 손해 배상 청구 등 별개의 소송이 제기된 경우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이 사건 특별 약관에 따라 자동차 상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 그 자체가 제기된 경우도 포함하는지를 심리했다.

1·2심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특별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청구하는 이 사건 역시 해당 특별 약관 중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A 씨의 손해액은 위자료를 제외하더라도 보상 한도액 5억원을 초과하므로 보험사는 보험금으로 5억원을 A 씨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별개 소송 염두에 둔 특약 조건”


하지만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특별 약관상 ‘소송이 제기된 경우’란 보험 사고에 해당하는 자동차 사고 피해에 대해 손해 배상 청구 등 별개의 소가 제기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피보험자가 보험 사고에 대해 다른 소송이 계속되거나 그에 관한 확정 판결 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동차 상해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우 보험금 지급 채무를 부담하는 보험자는 물론 그 채무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판단해야 하는 법원도 어떤 기준에 따라 보험금을 계산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이 사건 특별 약관에서 사용되는 ‘과실 상계’는 통상 가해자나 배상 책임자의 손해 배상 채무를 전제로 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고 ‘보상 한도’는 이미 보험 계약에 내재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표현은 보험 사고에 해당하는 자동차 사고 피해와 관련된 손해 배상 소송 등 별개 소송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보험 약관의 객관적·획일적 해석 원칙과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자동차상해보험)의 법적 성질을 바탕으로 약관 해석에 관한 종래 하급심의 주류적 판단이 타당함을 인정한 사례”라고 밝혔다.


[돋보기]
보험금 산정 기준은 ‘실제 손해액’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은 피보험자가 피보험 자동차를 소유·사용·관리하는 동안 생긴 피보험 자동차의 사고로 인해 상해를 입었을 때 보험자가 보험 약관에 정한 사망 보험금이나 부상 보험금 또는 후유 장해 보험금 등을 지급할 책임을 지는 보험을 말한다.

자동차종합보험 중 자기신체사고보험을 대체하는 보험으로, 그 보장 범위를 확대한 게 특징이다. 보통 특약 형태로 체결된다.

한국의 보험사는 자동차 상해 담보 특약에 따라 지급할 보험금을 계산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실제 손해액’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보험사마다 실제 손해액을 정의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어 보험 가입 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국의 보험사들은 크게 △보험금 지급 기준 이외에 형태 제한 없이 소송에서의 확정 판결 금액도 실제 손해액 산정 기준으로 삼고 있는 유형 △보험금 지급 기준 이외에 대인 배상 소송에서의 확정 판결 금액도 실제 손해액 산정 기준으로 삼고 있는 유형 △보험금 지급 기준만 인정하고 소송에서의 확정 판결 금액은 실제 손해액 산정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는 유형 등 세 가지로 실제 손해액을 정의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첫째 유형에 해당한다. 하지만 해당 보험사의 실제 손해액 현행 기준은 “‘보험금 지급 기준’에 의해 산출한 금액으로서 과실 상계 및 보상 한도를 적용하기 전의 금액”으로 셋째 유형으로 간소화됐다. 또 다른 보험사인 K사 역시 과거 ‘소송이 제기된 경우 확정 판결 금액’도 실제 손해액 기준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보험금 지급 기준에 따른 산출 금액만 인정하고 있다.

S 보험사는 보험 계약의 보통 약관상 ‘보험금 지급 기준’에 의해 산출한 금액 또는 ‘대인 배상의 소송’이 제기된 경우 확정 판결 금액을 실제 손해액으로 모두 인정하고 있다. 과실 상계 및 보상 한도를 적용하지 않은 기준이다.

H 보험사도 ‘대인 배상, 무보험 자동차에 의한 상해 지급 기준’에 따라 산출한 금액 또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 확정 판결 금액으로서 과실 상계 및 보상 한도를 적용하기 전의 금액을 인정하고 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