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과거 명성 회복하기 위해 사활…먹거리 확보 위해 기업금융 비율 높여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시내에 시중 은행의 ATM들이 놓여있다.(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시내에 시중 은행의 ATM들이 놓여있다.(사진=한국경제신문)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시중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강화하고 있다. 대출 잔액 규모로는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 중인 우리은행은 기업 대출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KB국민·신한·하나은행 역시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과거부터 기업금융은 은행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졌다. 최근 들어 달라진 점은 기업들이 중소기업 금융의 성장성을 높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업금융이 은행, 더 나아가 전체 금융지주의 실적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은 하반기에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금융의 명가는 어디인가

1분기 기준 기업금융 강자는 ‘KB국민은행’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1분기 기준 기업 대출금은 158조원으로 집계됐다.

신한은행은 147조원으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에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 신한은행은 그간 다져 온 경험과 브랜드 이미지로 앞으로도 기업 대출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기업 고객을 위한 ‘신한 비즈뱅크’를 통해 디지털 기업금융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142조원을 기록했다. 하나은행은 직전 분기(2022년 12월) 137조원과 비교해 기업 대출 증가치가 가장 높은 곳으로 나타나면서 ‘신흥 강자’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하나은행의 기업 대출은 하나금융지주의 지원 아래 이뤄졌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속적으로 기업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반기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31.8% 증가했다. 연초부터 하나은행은 지역 영업 조직을 정비하고 기업금융 전담역(RM)을 늘리면서 공격적으로 영업을 확대해 왔다.

한편 우리은행의 1분기 기업 대출금은 130조원으로 4대 은행 중 가장 적다. 성장세도 타 은행에 비해 더디다. 확정 실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금융권에 따르면 2분기 우리은행의 기업 대출금 증가는 4대 은행 중 가장 적은 1%대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KB국민·신한·하나은행은 최대 6%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였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4개 은행 중 가장 공격적으로 기업금융을 확장하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그간 우리금융이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기업금융의 명가로 인정받아 왔다며 이러한 평가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 더욱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기업금융 시장의 강자로 거듭나자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우리은행장 인사에서도 기업금융 강화를 위한 전략이 반영됐다. 지난 6월 신임 우리은행장에 오른 조병규 행장은 중소기업 특화 채널을 신설해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새롭게 성장하는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는 등 기업금융 영업력을 극대화하자는 당부를 취임사에 넣었다. 또 그 첫걸음으로 취임 다음날 수도권 인근 주요 기업 고객과 소상공인들을 방문해 현장의 의견을 청취했다.

조직 차원에서도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키우기’에 돌입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2차전지·에너지 등 신성장 기업 발굴과 마케팅 추진 전담 조직인 ‘신성장 1·2기업영업본부’를 신설했다. 또 7월 초에는 본점에 신성장지원팀을 신설해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망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 우리은행은 경기도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내에 입주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차별화된 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기업 특화 채널 ‘반월·시화BIZ프라임센터’를 신설했다. 반월·시화 국가 산업단지는 남동 국가산업단지와 함께 한국 최대의 중소기업 산업단지이자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문 중소기업 중심의 2만여 개 기업이 입주해있다. 이곳에 신설된 우리은행의 중소기업 특화 채널은 기업금융 전문 인력의 집중 배치로 투·융자를 자금 지원, 기업 컨설팅 등은 물론 프라이빗 뱅커(PB) 전문 인력의 자산 관리 특화 서비스까지 원스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향후 반월·시화BIZ프라임센터에 이어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중소기업 특화 채널을 지속적으로 늘려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너도나도 기업금융’ 더 치열해질 은행의 왕좌의 게임

이자 장사 비판에 기업금융으로 선회

‘기업금융의 강자’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야 하는 우리은행이 자존심을 지키는 분야가 있다. 바로 대기업 대출이다. 1분기 우리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40조원으로 4대 은행 중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KB국민은행(31조원), 신한은행(25조원), 하나은행(22조원)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과거 한일은행 시절부터 삼성·포스코 등과 거래를 이어 왔고 현재는 11개 기업의 주거래 은행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전체 기업 대출 규모가 타 은행들에 비해 밀리는 만큼 우리은행으로서는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얼마만큼 늘리느냐가 기업금융 시장 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소기업 대출이 위험성도 크지만 그만큼 대출 이자를 대기업 대출에 비해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의 성장 역시 중소기업의 비율을 높인 것에서 기인했다.

1992년 이후 31년 만에 탄생하는 새로운 시중 은행도 기업금융을 전국구 은행 전환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DGB대구은행은 금융 당국의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의 일환으로 시중은행 전환 인가를 받았다.

대구은행이 시중 은행으로의 전환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세운 것이 ‘중소기업 상생’이다. 기존 시중은행에서 소외 받던 중신용 등급 고객과 개인 사업자 등에 집중하면서 보다 넓은 범위의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업금융 분야에서 얼마만큼 영향력을 확대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구은행은 퇴직한 베테랑 은행원들을 재고용하는 기업금융 영업 전문가(PRM) 제도를 통해 수도권 기업금융의 비율을 높야 왔다. 2019년 RPM 도입 이후 3년간 대구은행의 수도권 지역 기업 대출 증가율은 33.6%다. 이렇게 차차 영역을 넓혀 왔지만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시중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더 세밀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기업금융을 강화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우리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은행의 기업금융 부문 수익은 2조3000억 달러로 소매금융 2조7000억 달러와 대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또 맥킨지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매출액의 연평균 성장률은 기업금융 6.4%로 소매금융 6.2%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은행들이 기업금융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개인금융 분야에서 ‘이자 장사’ 비판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금융 당국은 올 초부터 은행들이 과도한 이자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지적하며 ‘상생 금융’을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금융을 공격적으로 유치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그 돌파구로 기업금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기업금융의 확대를 이루러면 영업력 확대는 물론 디지털화가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 세계 금융 시장에서도 기업금융이 소매금융과 함께 은행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디지털화는 개인금융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디지털 채널에서 기업금융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 중인데 인공지능(AI) 기반의 고객 분석 시스템을 활용한 은행은 업계 평균 대비 높은 실적을 달성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한국 은행은 비대면 기능을 강화하고 경영 지원 서비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은행 대비 데이터를 활용한 우량 고객 판별 역량과 신기술 전반의 전문 서비스 제공은 해외 은행 사례를 참고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간 기업금융은 업무의 전문성과 오랜 기간 쌓아 온 기업과의 관계 등을 바탕으로 은행이 전담해 왔지만 최근 빅테크의 침투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