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 더 바빠…하반기 경영 구상에 뜨거운 여름나기

[비즈니스 포커스]
2021년 11월 경남 양산 통도사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모습. 사진=통도사 제공
2021년 11월 경남 양산 통도사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모습. 사진=통도사 제공
주요 그룹 총수들은 여름휴가를 어디에서 어떻게 보낼까. 멋진 휴양지나 별장에서 망중한을 즐길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름휴가 시즌은 밀린 현안을 집중적으로 처리하거나 국내외 사업장을 몰아서 방문하고 하반기 경영 구상에 전념하는 때라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에 속한다.

재계에 따르면 총수 대부분이 별도의 휴가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에서 틈틈이 휴식을 취하는 ‘방콕 휴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 “열정적으로 일하고 쉴 땐 쉬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일본·미국·프랑스·베트남 등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동행하고 테슬라·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들과 회동하며 숨 가쁜 일정으로 상반기를 보냈다. 지난해처럼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은 2022년 8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가진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어머니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5박 6일 휴가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하루는 ‘방콕’했고 어머니의 추천으로 드라마 시청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에는 삼성증권 직원들과 만나 “열정적으로 일하고 쉴 때는 가족 지인과 편안하게 쉬자”며 재충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 2월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등 임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선 기억에 남는 출장지로 파나마 운하와 후버댐을 꼽으며 강인한 도전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7월 24일부터 8월 4일까지 이어지는 법원 휴정기를 이용해 해외 사업장을 둘러보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태원 SK·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월 12일 ‘제주포럼’에서 부산엑스포 로고가 그려진 목발을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최태원 SK·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월 12일 ‘제주포럼’에서 부산엑스포 로고가 그려진 목발을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최태원 회장, 부산 엑스포 유치 전력

최태원 SK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2030 부산세계박람회(이하 부산 엑스포)’ 유치 지원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는 11월 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앞둔 만큼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에 전념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테니스 도중 다리를 다쳤지만 ‘목발 투혼’을 보이며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목발을 짚고 등장해 “기업인들과 부산 엑스포는 숙명적인 인연”이라며 엑스포 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미국·중국 갈등 등 지정학적 문제로 글로벌 시장이 쪼개지면서 과거처럼 물건만 잘 만들어 파는 시대는 지났다”며 “정치와 안보적 문제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금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고 엑스포는 세계 시장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1~24일에는 SK그룹 최고경영진과 글로벌 리더,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함께하는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 플랫폼 ‘이천포럼’에 참석해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 환경 속에서 경영 해법을 모색하고 파이낸셜 스토리를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7월 7일 인텔 아일랜드 캠퍼스에서 앤 마리 홈스 인텔 반도체 제조 총괄부사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7월 7일 인텔 아일랜드 캠퍼스에서 앤 마리 홈스 인텔 반도체 제조 총괄부사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정의선 회장, 생산 공장 휴가 시즌에 경영 구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매년 별도의 여름휴가 없이 통상 생산 공장 휴가 시즌인 8월 초에 자택에 머무르며 경영 구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현대차 울산공장은 8월 1~5일까지 주말을 포함해 9일간 집단 여름휴가를 실시했다.

현대차그룹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하며 미래 모빌리티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7월 미국 반도체 회사 인텔의 아일랜드 캠퍼스를 방문해 생산 공정을 둘러봤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파악하고 차량용 반도체 개발·기술 역량 내재화 추진 전략을 구상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신년회에서 “현재 200∼300개 반도체 칩이 들어가는 차가 레벨4 자율 주행 단계에서는 2000개의 반도체 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SDV 체제 전환을 위한 차량용 반도체·기술 내재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구광모 LG 회장이 4월 17일 LG화학 청주공장을 방문해 양극재 생산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제공
구광모 LG 회장이 4월 17일 LG화학 청주공장을 방문해 양극재 생산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제공
구광모 회장,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구광모 LG 회장은 여름휴가 기간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한 후 하반기 사업 구상에 전념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비워 내는 휴식을 가져야 미래를 위한 채움에 몰입할 수 있다”며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LG그룹은 구 회장 취임 이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재충전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연말에는 장기 휴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구 회장은 임직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신년사도 미리 내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6월 13일 30개국 주한 대사들과 부산항 북항을 방문해 부산 엑스포 유치 역량을 알리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6월 13일 30개국 주한 대사들과 부산항 북항을 방문해 부산 엑스포 유치 역량을 알리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제공
신동빈 회장, 가족과 재충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여름휴가 계획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신 회장은 통상 하반기 경영 상황을 전망하고 위기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VCM(Value Creation Meeting, 구 사장단 회의)’을 마무리한 뒤 휴가를 떠났다.

지난해에도 VCM이 끝난 뒤 일본에 건너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VCM에서 신 회장은 ‘언러닝 이노베이션’을 경영 키워드로 제시하고 유연한 생각으로 현재 환경에 부합하는 차별적인 성공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 회장은 가족과 휴식 시간을 갖고 재충전한 후 하반기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
휴가철 CEO 추천책으로 내공 쌓아볼까


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독서로 달래는 최고경영자(CEO)들도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평소 독서 등을 통한 ‘생각의 힘’을 키우자고 강조해 왔다. 최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면서 “생각하는 힘과 관성을 깨는 능력이 혁신을 만들 수 있다”고 당부했다.

SK그룹 최고경영자(CEO) 26명도 최 회장의 경영 철학에 동참해 여름휴가철 읽을 만한 책을 추천했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쓴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추천했다. 미국의 250년 성장사를 다룬 이 책을 통해 미국·중국 갈등이 왜 첨예화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장동현 SK(주) 부회장은 한순구 연세대 교수의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를 권했다. 역사적 사건을 통해 리더들이 선택과 결단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고민했는지를 조명한 책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블록체인 전문 저널리스트 4명이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을 분석한 ‘샘 올트먼의 생각들’을 추천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타이탄의 도구들’을 권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는 팀 페리스가 세계적 석학과 창업가 등의 인생 습관을 취재한 결과물이다. 경영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고민도 담겼다.

추형욱 SK E&S 사장은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김창섭 가천대 교수가 쓴 ‘그린 레이싱’을,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기후 위기 대응을 애니메이션식으로 쉽게 다룬 ‘우리에게 보통의 용기가 있다면’을 추천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할 수 있는 무기가 생각의 힘이라는 최고경영진의 철학이 임직원들에게도 전달돼 그룹 내에서 생각하고 공부하며 이를 업무에 적용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영자를 위한 지식·정보서비스 ‘세리CEO(SERICEO)’도 최근 ‘CEO가 휴가 때 읽어야 할 책’을 발표했다. 주요 기업 CEO·전문가 276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초거대 위협(누리엘 루비니)’,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피터 자이한)’, ‘이나모리 가즈오의 마지막 수업(이나모리 가즈오)’, ‘칩워(크리스 밀러)’, ‘AI 이후의 세계(헨리 A. 키신저 등)’,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마이클 샌델)’ 등 14권이 선정됐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