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저온에서 초전도체가 떠 있는 모습./미 로체스터대
극저온에서 초전도체가 떠 있는 모습./미 로체스터대
“초전도체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했다”-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
“이게 사실이면 모든 반도체 회사가 망한다”-차마스 팔리하피티야 벤처 투자자
“초전도체는 아니지만 대체 가능한 물질일 가능성이 있다”-미국 메릴랜드대 CMTC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미국 콜로라도대

한국이 쏘아 올린 ‘LK-99’이 전 세계로 향했다. ‘꿈의 물질’이었던 상온 초전도체의 실마리를 한국 연구진이 찾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전 세계 과학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7월 말 퀀텀에너지 측이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레시피’를 공개한 이후 전 세계 대학 연구소와 과학자들이 이 기술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과학계는 아직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컴퓨팅 시뮬레이션을 통한 결과가 ‘낙관적’이라는 연구도 존재하지만 이 물질이 확실하게 ‘초전도체’라는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이 발표한 레시피대로 ‘LK-99’ 재현에 성공한 연구 기관은 아직 없다. 사실이면 노벨상 프리패스
중국 연구진이 'LK-99' 재현에 성공했다고 올린 영상./중국 화중과기대
중국 연구진이 'LK-99' 재현에 성공했다고 올린 영상./중국 화중과기대
초전도체는 쉽게 말해 전기 저항이 사라지고 물건을 공중에 띄울 수 있는 물질이다. 고려대와 퀀텀에너지 등 한국 연구진이 이번에 공개한 ‘LK-99’은 이런 초전도 현상을 ‘상온’과 ‘상압’에서 구현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었다.

사실이라면 ‘노벨 물리학상’은 물론 전 세계 에너지 패권이 재편될 수 있다. 지금까지 초전도 현상은 섭씨 영하 200도 정도의 극저온이나 초고압에서만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한국 연구진이 이번에 공개한 LK-99은 ‘극저온’, ‘초고압’이라는 전제 없이 상온과 상압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시피도 비교적 간단했다.

세상에 없던 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구리’, ‘납’, ‘인회석’처럼 흔한 물질이었다. 최신 장비도 필요없었다. 구리·납·인회석을 합성한 후 일정 온도에서 일정 시간 구우면 됐다. 이들은 LK-99 초전도체 레시피를 논문에 공개했다. 전 세계 과학계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연구진은 7월 22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최초의 상온·상압 초전도체(The First Room-Temperature Ambient-Pressure Superconductor)’라는 제목의 논문을 올렸다. 논문에 따르면 이들이 만들어 낸 초전도 물질은 섭씨 영상 30도, 1기압 상태에서 전기 저항이 0에 가깝다. 약하지만 자석을 밀어내는 반자성(反磁性) 현상도 띠고 있다.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 아카이브에 판을 뒤집는 논문 하나가 발표됐다. 7월 31일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소속 시네드 그리핀 연구원은 논문을 통해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핀 연구원은 고성능 컴퓨터로 LK-99 구조에서 전자의 이동 경로 등을 시뮬레이션했고“상온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다만 그리핀 연구원은 “(LK-99을) 대량 생산할 때 적절한 구조를 합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11명을 배출하며 ‘노벨상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에서 이런 논문이 발표되자 분위기는 제법 진지해졌다.

현재 미국의 아르곤국립연구소, 중국 난징대, 프랑스 콜레주드프랑스 등 여러 연구 기관에서 LK-99의 재현 실험을 진행 중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LK-99 구현에 성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연구팀은 8월 1일 중국 내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LK-99을 합성해 냈다며 영상을 공개했다. LK-99과 같은 성질을 갖는 물질을 만들어 냈고 초전도체의 특징인 ‘마이스너(반자성) 효과’까지 검증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연구팀은 초전도체의 핵심 특징인 전기 저항 제로(0)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반쪽짜리 실험인 것이다. “우리 학부 애들이 냈으면 F학점이다” 비판적 시각도
초전도체 성공 시 한국의 위상을 나타낸 밈./온라인 커뮤니티 @zziziree
초전도체 성공 시 한국의 위상을 나타낸 밈./온라인 커뮤니티 @zziziree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 연구진의 사전 논문 발표 후 마이클 노먼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원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연구자들은 초전도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일부 데이터를 제시하는 방식은 매우 엉성하다”고 했다.

산카르 사르마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질이론센터(CMTC) 센터장은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이 논문의 이론과 배경적 논의는 너무 순진해서 우리 대학교 학부 프로젝트라면 F를 주었을 정도’라는 내용의 트윗을 게시했다.

자코포 버토로티 영국 엑시터대 물리학 교수는 중국 연구진이 완벽히 재현해 냈다는 영상을 두고 트위터로 ‘반자성만 보였을 뿐 초전도성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연구진이 논문과 함께 공개한 LK-99이 공중에 떠 있는 영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0이 되면서 물질 내부에 있던 자기장을 외부로 밀어내는 특성을 갖는다. 그 힘으로 공중 부양하는데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영상 속 LK-99은 물체가 기울여진 채 한쪽 면은 자석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 면만 공중에 떠 있는 상태다.

초전도성을 띠는 새로운 물질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이 8월 2일 아카이브에 등록된 논문은 “시뮬레이션상 이 화합물의 전자 구조가 상온에서도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어 초전도 성질을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중국 서북대 연구진 역시 8월 2일 시뮬레이션 진행 결과를 아카이브에 올렸다. 해당 논문은 LK-99이 초전도체일 수 있다는 몇 가지 징후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방법을 찾아낸다면 초전도성 메커니즘을 지원할 수 있는 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과학자들도 검증에 나섰다. 우선 부정적이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현재 발표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을 기반으로 판단할 때 논문과 영상 물질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검증위원회는 LK-99 시료를 제공받아 검증에 나설 예정이다. 샘플이 있으면 검증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초전도체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되면서 전 세계 증시도 출렁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각국 증시의 초전도체 관련 주식이 덩달아 들썩였다. 미 전력 솔루션 업체 아메리칸슈퍼컨덕터의 주가는 나스닥에서 전날보다 60.02% 폭등한 16.1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같은 날 중국 증시에서도 초전도체 테마주로 분류되는 광케이블 업체 파얼성·중차오콩구·바이리전기 등 종목들이 모두 상한가(10%)를 기록하는 등 연이어 강세를 보였다.

외신에서도 LK-99에 대한 여러 검증 사례를 보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LK-99은 한 세대에 한 번 나올 법한 과학적 돌파구일 수도 있지만 큰 실망거리에 그칠지도 모른다”면서도 “최근의 소란스러움은 세상을 바꿀 새 과학적 발견을 우리가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 보여준다”고 짚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