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끓는 지구, 사피엔스와 공존의 가치[EDITOR's LETTER]
간혹 시간 날 때 동영상으로 진화생물학자들의 동영상 강의를 듣곤 합니다. 듣고 있으면 잠시 악다구니 쓰듯 사는 현실에서 벗어나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깊은 시간 앞에서 나는, 인간은 어떻게 지금에 다다랐는지를 생각합니다.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은 자신의 죽음이 종의 멸종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같은 얘기를 들으면 삶 앞에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사는 동물 중 가장 막둥이입니다. 탄생한 지는 대략 20만 년쯤이고 5만~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공존의 기술은 배우지 못한 듯합니다. 이후 사피엔스를 제외한 다른 호모 종들은 모조리 멸절시킨 후 1만여 년 전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앉습니다.

1만 년.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기간입니다. 길어 보이지만 공룡이 지배한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룡은 멸종하기 전까지 1억4000만 년간 지구를 지배했습니다. 사피엔스가 지배한 기간은 점 하나도 찍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시간에는 미스 매치가 있었습니다. 공룡은 하루아침에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수십만 년 걸렸습니다. 새로운 지배자가 될 포유류는 진화할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이후 사자가 생태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데도 수백만 년이 걸렸습니다. 자연이 준 이 시간 동안 영양 같은 동물들은 쉽게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도록 더 빨리 달리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공진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사피엔스는 달랐습니다. 순식간에 지배자가 됐고 이로 인해 다른 동물들이 진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이 지배한 1만 년 사이 포유류의 85%가량이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사피엔스가 지배를 시작할 무렵, 인간은 지구상 척추동물의 0.1%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인간과 그들이 기르는 가축을 합치면 척추동물의 98%에 달합니다. 무서운 지배자입니다.

시간의 문제는 온도 변화에도 나타납니다. 지구 역사에서 가장 급격한 온도 상승은 5500만 년 전 일어났습니다. 최대 온난기로 불리는 이때, 지구의 평균 기온은 5~6도 올랐습니다.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만 년. 평균 4000년에 1도가 오른 셈이지요. 사피엔스의 시간은 다릅니다. 인간이 지구 온도를 1도 올리는데 단 200년밖에 안 걸렸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은 “이렇게 지구 온도를 올리려면 1초에 원자폭탄을 4개씩 터뜨리는 열에너지를 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정도 충격을 지구가 받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속도입니다. 그 결과가 전 지구적 폭염, 엄청난 규모의 산불, 이상 기후 등입니다. “오늘이 살아가는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거지요.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주 전 지구적 폭염과 기후의 경제학을 다뤘습니다. 기후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기후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경영의 주요 트렌드가 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서 ‘E’가 맨 앞에 온 것도 이런 인식을 반영합니다. 환경과 기후는 뗄 수 없는 밀접한 단어입니다.

기후 변화의 가장 쉬운 예는 한국의 과일 재배지입니다. 과거 사과는 대구가 유명했지만 지금은 포천까지 재배지가 올라왔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아열대 과일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해외에서는 폭염에 북유럽을 찾는 관광객이 늘며 관광 지도도 바뀌고 있습니다. 쌀 수출국은 하루아침에 우방에 대한 수출을 중단해 외교 분쟁으로 비화합니다.

사피엔스는 현명하다는 뜻으로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인간 종에 붙인 명칭입니다. 그 현명함에 공존과 지속 가능성 등이 갖는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힘든 가치까지 포함돼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멸종의 증거는 미래에 발생할 수많은 부재(不在)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