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게 하는 ‘브랜드 페르소나’ 전략의 중요성
소비자의 본질적 욕망 담아야

[브랜드 인사이트]
네이버Z에서 운영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출시된 아바타용 구찌 가상 명품. 사진=구찌 홈페이지 갈무리
네이버Z에서 운영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출시된 아바타용 구찌 가상 명품. 사진=구찌 홈페이지 갈무리
기술·사회·경제가 끊임없이 변화함에 따라 타인·주변 환경과의 관계와 이를 맺는 방식이 ‘액체’처럼 정형화되지 않는 동시대.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현대인이 직면할 수 있는 어려움 중 하나를 개인이 일관되게 정의되지 않는 ‘정체성의 불안정’으로 본다. ‘정체성의 불안정’은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 속 브랜드 페르소나에 바탕을 둔 소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착용했던 ‘가면’에서 유래했다. 분석 심리학 개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외면적으로 표현하길 원하는 자신의 모습, 즉 사회적 자아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했다. 이런 심리학적 개념을 차용한 ‘브랜드 페르소나’는 인격체와 유사한 성격·특징에 기반해 대외적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고객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타깃이 동질감과 선망을 느낄 수 있는 인간상을 활동에 일관되게 투영하고 소비자와 연대를 쌓는 과정에서 브랜드는 강력한 페르소나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런 페르소나는 소유주에게도 전이됨에 따라 오늘날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은 ‘최선의 나’를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용이한 전략이 됐다.

브랜드로 충족하려는 욕구 투영해야


브랜드 페르소나의 핵심은 타깃에 대한 이해다. 브랜드가 집중해야 하는 세그먼트의 연령·성별·소득 수준에 따라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를 구체화하고 이를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반영한다.

하지만 인구 통계학적 특성 중심의 표면적 고객 유형에 집중한 페르소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매층의 변화와 확장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베이비부머 세대 백인 특유의 마초 이미지를 브랜드 자산으로 유지해 온 할리 데이비슨이 최근 MZ세대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브랜드 페르소나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나타나는 소비자의 특성을 넘어 그들 내면의 근본적인 욕망을 통찰하고 반영해야 한다. 1997년 론칭한 ‘싱크 디퍼런트(think different)’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애플의 페르소나는 연령·인종·성별에 관계없이 ‘혁신에 대한 열정’이라는 인간적 욕구에 기반해 고유의 소비자 정체성을 확립해 온 좋은 사례다.
1997년 론칭한 이래, 혁신을 추구하는 소비자 정체성을 각인한 애플의 Think different 슬로건. 사진=위키피디아 갈무리
1997년 론칭한 이래, 혁신을 추구하는 소비자 정체성을 각인한 애플의 Think different 슬로건. 사진=위키피디아 갈무리
인터브랜드는 주체성(power), 우호적 관계(attraction), 편안한 삶(comfort), 즐거움과 자유(play)의 시각에서 소비자의 욕망을 관찰하는 ‘휴먼 트루스(human truth)’적 사고를 강조한다.

애플의 페르소나는 혁신을 통해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주체성 욕구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땀 흘리는 삶(sweat life)’이라는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룰루레몬은 건강과 삶의 질을 우선시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녀 고객을 각각 ‘듀크’와 ‘오션’이라는 고유의 페르소나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제품을 넘어 일상 속 소비자가 ‘갓생’을 실천하는 데 동기를 부여하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앞선 사례들의 공통점은 브랜드가 채울 수 있는 소비자의 근원적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실현한 대리인으로서 페르소나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휴먼 트루스에 기반한 페르소나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통해 다가가고자 하는 최선의 자신을 반영한다.

‘구찌 갱’이 시사하는 본질의 중요성

브랜드 페르소나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업종은 무엇일까. 브랜드 이미지가 부가 가치 창출에 직결되는 럭셔리 업계다.

인터브랜드는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베스트 글로벌 브랜드)에서 상위를 차지한 럭셔리 브랜드들의 ‘브랜드 역할력(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준거로서 브랜드의 중요성)’이 평균 70%에 달한다고 평가하며 페르소나와 같은 무형 자산의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페르소나의 중요성은 학술적으로도 논의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에서 상류층의 유복한 환경은 시간과 돈의 지속적 투자로 개발하는 ‘문화적 자산’, 즉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취향’을 형성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보고 취향이 현대 사회의 계급 간 차이를 나타내는 핵심 매개체라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오트쿠튀르로 대표되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는 단순히 고가가 아니라 ‘정제된 미적 감각’으로 수식되는 상류층의 고상한 취향을 대표한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은 곧 ‘독보적이고 세련된 미학인(人)’으로서의 페르소나를 소유하는 것과 같고 이는 명품에 대한 본질적 욕망이 된다.

이런 상징적 역할에 따라 명품 패션 브랜드는 종종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과 함께 고루한 철학과 디자인을 지적받아 왔다. 특유의 관능적 미학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톰 포드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구찌도 마찬가지였다.
땀 흘리고 성장하는 건강한 삶의 주자들을 대표하는 룰루레몬. 사진=룰루레몬 홈페이지 갈무리
땀 흘리고 성장하는 건강한 삶의 주자들을 대표하는 룰루레몬. 사진=룰루레몬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2015년 무명의 디자이너였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파격적 인사 이후 일명 ‘구찌피케이션’으로 회자되는 변화가 시작됐다.

MZ세대를 브랜드의 핵심 타깃으로 재정의한 미켈레는 기존과는 상반되는 맥시멀리즘과 젠더리스 디자인을 시도하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과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메타버스 등 테크를 적극 활용하며 기성세대에 국한됐던 브랜드 페르소나를 ‘힙’하게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구찌의 새로운 페르소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2017년 래퍼 릴 펌프가 뮤직 비디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찌를 착용하고 부른 ‘구찌 갱(Gucci gang)’은 빌보드 3위에 올랐고 구글 패션 분야 검색 순위에서 브랜드 관련 키워드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브랜드 페르소나의 회춘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 중 예를 들어 메타버스 속 저렴한 가상 명품 출시로 Z세대 소비자에게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은 기존 럭셔리 브랜드로서 구찌의 배타적이고 세련된 아우라를 보호하기 위한 거리 두기 전략과는 상반됐다.

그 결과 대중화의 이슈에 직면한 구찌는 한국에서 과시적 패션을 추구하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트레이닝복에 곁들이는 소위 ‘일진 패션’의 대표 브랜드로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방아에 오르며 기존 고객들이 회피하는 역전 현상을 겪었다.

점차적 부진과 미켈레의 사임 배경에 많은 이유가 거론되고 있지만 선망받는 취향이라는 소비자의 본질적 욕망에 충실했던 브랜드 페르소나가 약해진 것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타깃과 공명할 수 있는 브랜드 페르소나를 제안하고 지속성 있게 관리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브랜드가 충족해 줄 수 있고 소비자가 브랜드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변함없이 본질적인 욕구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사람’으로 떠올려져야 할까. 답은 우리와 함께하는 소비자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있다.
이해찬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선임 컨설턴트. 사진=인터브랜드 제공
이해찬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선임 컨설턴트. 사진=인터브랜드 제공
이해찬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선임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