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파킨슨병·치매 진단에 뇌파계 사용 문제없다”
의협 강력 반발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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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뇌파계 진단 기기 사용’ 여부를 두고 10년을 끌어온 법정 싸움에서 한의사 측이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한의사가 뇌파계 진단 기기를 사용해도 보건 위생상 위해의 우려가 없고 한의학의 의료 행위와도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2022년 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결정에 이어 한의사의 의료 기기 사용 범위를 한층 확대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양방 의료계는 “의료인 면허 제도를 뿌리째 흔드는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13년 끌어온 뇌파계 소송, 한의사 승소

대법원 1부는 2023년 8월 18일 한의사 A 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한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을 열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에게 특정하게 허용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 기기로, 뇌 관련 질환을 진단하거나 뇌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이 사건의 발단은 약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뇌신경 전문 한의원을 운영하는 A 씨는 2010년 9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뇌파계 진단 기기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사용했다. 같은 해 11월 한 언론 매체는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A 씨가 환자에게 뇌파계를 사용하고 있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듬해 4월 “A 씨가 한의사로서 특정하게 허용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를 하고 의료 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관련 의료법 규정에 따라 3개월의 한의사 면허 자격 정지 및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재결 신청으로 맞섰다. 하지만 중행심위는 자격 정지 기간을 1개월 15일로 단축하는 데 그쳤을 뿐 자격 정지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았다.

A 씨는 중행심위 결정에 불복해 다시 소송을 걸었지만 1심 재판부는 그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뇌파계를 파킨슨병·치매 진단에 사용한 것은 한방 의료 행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의사인 원고가 뇌파계를 진단에 사용한 것은 의료법 제27조 제1항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적용해 A 씨가 뇌파계를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특정하게 허가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22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합법 여부’가 쟁점인 사건을 심리하면서 ‘진단용 의료 기기 사용이 한의사에게 특정하게 허용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는데, 이 사건 2심 재판부는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도 이 기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관련 법령은 한의사의 이 사건 뇌파계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어떠한 규정도 두지 않았다”고 봤다. 또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임상 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그 위해도도 높지 않으며 서양 의학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건 위생상 위해의 우려도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고는 한의학적 진찰법을 통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뇌파계를 병행 또는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고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심의 판단이 2022년 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판단 기준에 따른 정당한 결론이라고 본 것”이라며 “뇌파계를 파킨슨병·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첫 사건”이라고 밝혔다.

“의료 기기 사용 범위 넓어질 듯”

그간 양·한방 의료계는 한의사의 뇌파계 진단 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2022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마련된 새로운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첫 사건인 만큼 이날 선고에 따라 향후 한의사의 현대 의료 기기 사용이 새 국면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초음파에 이어 뇌파계 관련 사건에서도 한의사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양·한방 의료계의 희비도 엇갈렸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선고 직후 성명을 내고 “초음파 판결에 이은 또 하나의 정의롭고 당연한 판결”이라며 “다양한 현대 진단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무면허 의료 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장차 보건 의료에 심각한 위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또 “한의사들이 한의사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의료 행위를 시도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돋보기]
초음파 이어 뇌파계 진단 기기도 한의사 사용 가능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2년 12월 22일 한의사 B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 의견으로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B 씨는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2014년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 관련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위법 여부를 판단할 때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 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해당 의료 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의료 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해당 의료 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 의학에 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도 따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1·2심은 이 같은 기준에 따라 B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초음파 진단 기기의 판독을 위해선 서양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심리하면서 ‘한의사의 의료 기기 사용 가능 여부’를 따지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고 이 기준을 적용한 결과 ‘한의사는 초음파 진단 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본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새 기준은 △관련 법령에서 금지되는지 여부 △보건 위생상 위해 우려 △한의학적 원리의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여부 등이다. 대법원은 “이런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새 기준에 따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엑스레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달리 초음파 진단 기기는 한의사의 사용을 금지한 법령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초음파 투입에 따른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고 임산부나 태아를 상대로도 초음파 진단 기기가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크지 않다고 봤다. 또 초음파 진단 기기가 한의학적 의료 행위 원리의 응용과 무관한 것이 명백한지에 대해 원심에서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 가능 여부를 따지는 이번 사건에서도 초음파 사건에서 새로 마련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이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의 결론을 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