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웨이브와의 합병설 부인…지난해 적자는 더 불어나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방문객들이 영화의 전당에 마련된 웨이브 홍보 부스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방문객들이 영화의 전당에 마련된 웨이브 홍보 부스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지상파 3사와 손잡고 야심차게 출범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가 위기에 빠졌다. 출범 당시만 해도 토종 OTT 중 점유율 1위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그 영향력이 더 약해졌다. 지난해 CJ ENM의 ‘티빙’이 KT ‘시즌’과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웠고 올해 들어서면서 스포츠 콘텐츠를 앞세운 쿠팡플레이의 진격이 매섭다.

웨이브는 출범 당시만 해도 SK텔레콤의 본업인 통신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어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지상파 3사가 설립에 참여하면서 지상파 콘텐츠를 모두 제공한다는 점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웨이브의 시장점유율은 점점 줄고 있다. 연일 흘러나왔던 티빙과의 합병설은 CJ ENM 측이 강력히 부인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없던 일’이 됐다. 웨이브로서도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스포츠’ 무기로 치고 나온 쿠팡플레이

CJ ENM은 8월 10일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CJ ENM은 “플랫폼 합병보다는 티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은 물론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실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 OTT 시장에서 ‘합병’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토종 OTT들이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히 웨이브보다 덩치가 큰 티빙이 웨이브를 흡수·합병하는 방안이 많이 거론됐는데 이는 곧 웨이브의 경쟁력 약화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웨이브로서는 그간 지켜 왔던 토종 OTT 2위 자리가 위태하다는 점이 위기의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8월 2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산 OTT 2위 자리를 지켜 왔던 웨이브의 이용자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6월 463만 명이었던 웨이브의 월간 실 사용자 수는 2022년 6월 423만 명, 지난 6월 394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 쿠팡플레이다. 2021년 6월 152만 명이었던 월간 실사용자 수가 2022년 6월 373만 명으로 늘어났고 지난 6월 500만 명에 근접한 486만 명까지 불어났다.

쿠팡의 선전은 역시 콘텐츠의 힘이다. 쿠팡은 스포츠 콘텐츠를 독점 중개하면서 스포츠팬들의 유입을 독려하며 기존 OTT들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그간 쿠팡플레이는 K리그, 포뮬러1, 스페인 프로축구, NFL(미국 내셔널풋볼 리그) 등을 독점 중계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쿠팡플레이 시리즈가 구독자 유입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쿠팡플레이 시리즈는 쿠팡플레이에서 유럽 유명 축구단을 한국에 초청해 K리그1 소속팀과의 맞대결 또는 유럽 구단간의 맞대결을 주선하는 시리즈다. 이강인 선수가 소속된 파리 생제르망이 내한했고 지난 7월 30일 맨체스터 시티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친선 경기를 주관하기도 했다. 쿠팡플레이는 맨체스터 시티 선수단의 내한에 맞춰 이 구단 소속의 세계적인 축구 선수 홀란드가 출연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콘텐츠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웨이브의 위기설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올해 웨이브는 ‘피의게임2’, ‘남의연애2’, ‘박하경 여행기’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였고 남은 하반기에는 ‘거래’, ‘용감한 시민’, ‘데드맨’을 선보일 예정이다. 예능·드라마·영화를 주로 제작하는데 타 OTT에 비해 오리지널 콘텐츠의 숫자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웨이브의 가장 큰 차별점인 지상파 콘텐츠가 최근 부진한 시청률과 함께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분류된다. 웨이브의 최대 주주는 지분 40.5%를 보유한 SK스퀘어인데 지상파 3사(KBS·SBS·MBC)도 각각 지분 19.8%를 보유하고 있다. 지상파가 주요 주주로 참여한 만큼 최근 지상파 콘텐츠를 가장 빠르게 또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 웨이브다. 하지만 갈수록 지상파 콘텐츠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 이미 OTT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이 각종 심의와 규제에 묶인 지상파 콘텐츠에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합병도 어려운데…콘텐츠 수급도 쉽지 않아

물론 한국 콘텐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게 OTT다. 만약 한국 콘텐츠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외국 콘텐츠로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웨이브는 그간 HBO와의 독점 제휴를 통해 이러한 강점을 살려 왔다. 미국 채널 HBO는 전 세계적인 히트 드라마를 다수 제작한 방송국이다. 해외에서는 ‘맥스(구 HBO 맥스)’라는 자체 OTT를 운영 중이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직접 진출하는 대신 웨이브와의 제휴를 통해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자로 웨이브에서 볼 수 있었던 HBO 오리지널 콘텐츠 서비스가 종료됐다. 이에 따라 ‘왕좌의 게임’, ‘석세션’, ‘유포리아’ 등 HBO 콘텐츠가 다수 내려갔다. 웨이브는 2021년부터 1년 단위로 워너브라더스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보통 6월이 재계약에 돌입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7월이면 재계약 후 콘텐츠들이 다시 업로드됐다. 하지만 올해는 8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웨이브 관계자는 “타이틀별로 계약 기간이 달라 지난해 계약을 체결했던 것 중 만료된 것은 내려간 상태”라며 “HBO 작품을 수급하는 것을 논의 중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HBO 독점’이라는 타이틀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했다. 웨이브 관계자는 “그간 HBO맥스나 HBO 작품 독점으로 수급해 왔는데 새롭게 갱신한 타이틀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와중에 웨이브의 기업공개(IPO) 기한도 다가오고 있다. 웨이브는 2019년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투자 조건으로 5년 이내 IPO를 약속했다. 이 기한은 2024년 11월까지다. 만약 상장이 불발된다면 웨이브는 전환사채(CB) 20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그 사이 적자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웨이브의 적자는 1216억원으로 1년 전보다 적자 폭이 117% 커졌다.

물론 웨이브뿐만 아니라 다른 OTT들도 상황은 좋지 않다. 티빙도 지난해 1191억원의 적자를 냈고 왓챠는 4년째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마찬가지 상황을 겪고 있는 글로벌 OTT들은 구독료 인상과 계정 공유 금지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5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구독자들의 계정 공유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또 디즈니 역시 스트리밍 플랫폼 요금을 인상했고 계정 암호 공유도 금지하는 방안까지 내년에 내놓을 예정이다.

앞서 웨이브와의 합병설이 불거졌던 티빙 역시 다양한 방법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웨이브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웨이브의 대주주인 SK스퀘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