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부가 지난해 6월 아시아 최초로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하고 판매와 재배를 합법화하면서 생겨난 모습이다. 태국 정부가 서둘러 빗장을 풀면서 관련 규제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대마를 엄격히 규제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태국에서 온 관광객 등을 무작위 검사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 관광객은 ‘속인주의’에 따라 본인이 모르고 대마 관련 제품을 섭취하거나 소지하는 경우에도 형사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 대마 부분 합법화 소식을 알리며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나라도 있다. 경제 규모와 인구면에서 유럽 최대 국가인 독일이다. 독일 정부는 대마 합법화를 위한 마취제 관련법 개정안을 8월 16일 의결했다. 현재는 의료용이 아닌 대마만 허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독일의 행보를 우려한다. 독일이 대마를 합법화하면 유럽 전반에 대마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18세 이상 개인은 최대 25g의 대마를 소지할 수 있고 △3그루까지는 직접 재배해도 된다. △대마 구매는 비영리 단체인 대마초사교클럽(CSC)을 통해야 하고 CSC는 회원들에게만 대마를 제공해야 한다. 대마 접근권을 허용하되 구입 경로를 통제하고 사용량에 제한을 둔다는 것이다. “통제 불가능” 태국과 독일이 대마 빗장 푼 이유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도 대마가 합법화된 나라는 많지 않다. 아시아에서는 태국이 유일하고 유럽에서는 몇몇 국가만 오락용 대마를 비범죄화하고 있다. 합법과 달리 비범죄는 개인을 처벌하지 않지만 교육이나 재활을 강제할 수는 있다. EU 27개 회원국 중 2021년 지중해 섬나라 몰타가 처음으로 대마초를 합법화했고 체코와 벨기에도 개인이 대마초를 일정 용량 갖고 있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만 18세 이상 성인이 전문 커피숍에서 대마초를 소량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개인 소지 역시 비범죄화했다. 오스트리아도 대마가 합법은 아니지만 허용했다.
그렇다면 왜 태국과 독일은 대마를 합법화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이미 대마 암시장이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대마 산업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마 억제에 실패했기 때문에 합법화하는 것.” 독일 정부가 밝힌 이유다. 독일 정부는 이미 커진 대마 암시장을 양성화하고 소비자의 안전한 대마 사용을 독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불법 거래와 사용이 워낙 많기 때문에 차라리 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려 저품질 대마 유통을 막고 투약자들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독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450만 명이 최소 1회 이상 대마를 소비했다. 실명으로 거래하고 사용량에 제한을 두면 대마 소비가 감소할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태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움츠러들었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마 합법화 카드를 꺼냈다. 정부가 대마를 합법화하자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태국에선 대마 합법화 이후 1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대마 재배를 신청했다. 당국이 내준 대마 관련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면허는 약 110만 개에 이른다. 태국 인구(약 6600만 명) 중 최대 3% 정도가 대마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대마 전문 상점뿐만 아니라 카페·식당·편의점·대형마트 등 일상 곳곳에 대마가 파고들었다. 태국상공회의소대(UTCC)의 연구팀에 따르면 태국의 대마 시장 규모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약 15%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280억 바트(약 1조400억원)에서 3년 후인 2025년엔 430억 바트(약 1조6000억원)로 150억 바트(약 5600억원)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태국은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관광 산업이 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약 20%를 차지할 만큼 높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봉쇄되면서 태국을 찾는 외국인이 2019년 3980만 명에서 2021년 43만 명으로 감소했다. GDP 중 관광 산업의 비율도 5% 미만으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실직자도 늘고 경제 타격도 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 대마였다. 태국 정부는 이전까지 대마를 비롯한 마약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태국 정부는 대마 재배를 장려해 소득을 높이고 대마 관련 제품 판매로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관련 관광 상품도 허용했다. 방콕의 한 5성급 호텔에선 대마를 이용한 마사지와 스파를 받을 수 있고 한 여행사는 대마 농장이나 대마 전문 음식점 등을 방문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합법화되기 바로 전달인 2022년 5월까지만 해도 대마를 소지하면 징역 5년에서 최대 15년형에 처했다. 얼마나 급격하게 시장이 개방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합법 대마 시장, 60조원 합법 대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합법 대마 시장 규모는 지난해 59조원, 7년 뒤에는 60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23개 주(연방 차원에서는 불법)와 캐나다 등 앞서 기호용 대마를 합법화한 국가들에서는 대마 캔디, 대마 베개, 대마 오일, 대마 전자담배 등 다양한 상품도 나왔다.
최근 뉴욕 맨해튼 거리에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무장한 럭셔리 대마 용품 상점도 문을 열었다. 뉴욕에 거주하는 안 모 씨는 “사람들이 줄지어 선 가게가 있기에 새로운 맛집인 줄 알고 같이 줄을 섰는데 럭셔리 대마숍이었다”며 “미국에서 대마는 이미 핫한 산업처럼 여겨지고 있고 펜타닐이나 엑스타시 등 불법인 마약도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대마 합법화에 나선 국가들 사이에선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대마를 합법화 했지만 음성 거래를 근절하고 청소년 거래를 차단하는 등의 효과는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가 “대마 양성화는 음성 거래를 차단하는 효과가 없다”고 발표했고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대마 양성화가 오히려 청소년 등이 대마에 쉽게 노출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UNODC가 발표한 ‘세계 마약 보고서 2023’에 따르면 대마 합법화로 청년층 투약자의 정신 질환 발생률이 높아지고 자살률도 함께 상승할 수 있다. 보고서는 “2002년에서 2018년 사이 미국 내에서는 청년층(18~34세)의 자살률이 높아졌는데 대마를 합법화한 주에서 자살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콜로라도 주에서는 2006년부터 2018년 사이 대마 투약과 연관성이 있는 자살의 비율이 3배 늘었다. 대마 합법화해도 음성 거래는 안 사라져청소년들이 쉽게 대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 내에서 2017~2020년 고등학생 대마 흡연자의 수가 2배 수준까지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마가 합법화됐음에도 음성 거래 역시 활발했다. 2021년 캐나다에서 비의료 목적으로 대마를 투약한 사람 중 거의 절반 가까이가 미등록·불법 업자를 통해 대마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UNODC는 “2021년 4분기에는 대마 구입 관련 가계 지출의 40%가 미등록 업체를 통한 것이었다”고 했다.
대마 관련 산업이 성장함과 동시에 각국 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보건 비용’도 증가 추세였다. UNODC 조사에서 대마를 ‘정신적인 문제를 가장 많이 유발하는 마약’이라고 답한 국가는 40%로 가장 많았다. 중독 증세 등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이 가장 많은 마약이라는 질문에도 아편(38%) 다음으로 대마(33%)를 지목한 국가가 많았다.
리나 웬 조지 워싱턴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대마초 미치는 영향, 특히 장기적인 결과에 대해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일반 마리화나를 매일 사용하면 관상동맥 질환 위험이 최대 3분의 1까지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대마초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부작용이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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