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비즈니스인 숙박·식음료 사업 너머 눈 돌려
호텔 브랜드 이용한 다양한 상품 출시 박차

[비즈니스 포커스]
롯데호텔의 포장 김치는 차별화된 재료와 맛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공략 중이다.  사진=롯데호텔 제공
롯데호텔의 포장 김치는 차별화된 재료와 맛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공략 중이다. 사진=롯데호텔 제공
롯데호텔은 올해 초 마케팅본부 내 자사 브랜드(PB) 상품 개발을 위한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등 PB 관련 사업군 강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최근 첫째 결과물을 내놓았다. 주인공은 ‘김치’다. 롯데호텔은 8월부터 롯데호텔의 명칭을 붙인 포장 김치를 출시했다.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 중인 김치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호텔업계가 ‘부업’에 힘을 쏟고 있다. 핵심 비즈니스인 숙박·식음료 사업을 넘어 호텔 브랜드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성과도 기대 이상이다. 호텔 브랜드를 단 제품들은 날로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호텔업계의 부업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롯데호텔이 이번에 출시한 포장 김치도 출시 초반인데 벌써부터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8월 12일 롯데홈쇼핑 ‘최유라쇼’에서 처음 시중 판매에 나선 롯데호텔의 김치는 9kg에 7만원대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과 15분 만에 완판됐다.
김치 시장 다크호스 떠오른 ‘호텔’포장 김치가 출시 초반부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자 내부 분위기도 고무적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며 “앞으로 김치 외에 다양한 PB 상품군을 출시해 소비자들을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 시장에 뛰어든 건 롯데호텔만이 아니다. 이미 조선호텔과 워커힐호텔 등이 자사 브랜드를 단 김치를 선보이며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롯데호텔 역시 이들이 김치 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예의 주시하다가 그 가능성을 보고 포장 김치를 출시하게 됐다.

가령 조선호텔은 매년 김치 판매량이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를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워커힐호텔도 2018년 이 시장에 진출했는데 현재 누적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호텔 김치의 인기 비결은 차별화된 재료와 맛을 꼽을 수 있다. 롯데호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포장 김치의 배추는 강원 영월군, 전남 해남군 등 최적의 산지에서 직접 공수한다.

김치 맛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춧가루는 롯데호텔이 직접 품질 관리를 하는 밭에서 수확한 경북 영양산 고추로 만든다. 젓갈도 일반 새우젓보다 6배나 비싼 육젓 등을 사용한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 김치는 일반 업체들이 쓰기 어려운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고 만드는 과정 또한 정성을 들인 만큼 맛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날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가정 간편식(HMR) 역시 호텔업계가 부업으로 가장 주목하는 분야다.

조선호텔을 필두로 하나둘 시장에 진출하더니 최근에는 대부분의 유명 호텔들이 전부 자사 브랜드를 딴 HMR를 시중에서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김치와 마찬가지로 가격은 비싼 편이다. 하지만 호텔 셰프가 직접 개발한 제품이라는 점을 무기 삼아 차별화된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예컨대 워커힐호텔은 스테이크·파스타 등 6만~10만원대의 고가 밀키트 세트를 각종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 중이다. 호텔의 맛을 찾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호텔들의 장외 외식 사업도 업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호텔 식당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에 착안해 호텔 안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레스토랑을 호텔 밖으로 오픈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비치호텔앤과 조선호텔 등이 주요 상권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을 출점하며 식음료(F&B)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해비치가 2021년 서울 종로 센트로폴리스 빌딩에 프리미엄 문을 연 일식당 ‘스시 메르’, 조선호텔이 운영하는 모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모트32(MOTT32)’ 등이 호텔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표적인 식당들이다.
편안한 ‘경험’을 판매한다먹거리를 위주로 한 호텔들의 신사업이 예상외로 선전하면서 호텔들이 더욱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부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식’ 외에도 호텔 이름을 붙인 이색 상품들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배경이다.

대표적인 상품이 호텔에서만 경험할 수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경험’을 상품화한 제품들로 ‘향’과 ‘침구류’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향’은 더플라자호텔이 선두 주자 격이다. 플라자호텔에서만 맡을 수 있는 고유의 향기를 디퓨저 상품으로 개발해 판매 중인데 해당 제품들은 일시 품절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많은 소비자들이 찾고 있다.

조선호텔·워커힐호텔 등은 호텔에서 사용 중인 베개·이불 등과 같은 침구류를 직접 판매하며 짭짤한 수익을 내기도 한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호텔 침구류를 직접 구매하고 싶다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며 결국 상품들을 판매하게 됐다”며 “‘조선호텔 구스다운 이불’과 같은 제품들을 위주로 꾸준히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주를 즐기는 젊은층이 급격하게 늘자 부업으로 주류를 택한 호텔도 있다. 파라다이스호텔은 최근 김포 지역에서 생산된 고시히카리 품종 쌀로 만든 막걸리에 얼그레이 홍차를 우려내 만든 전통주 ‘미심’을 선보였다.

막걸리보다 쌀 함량을 높이고 스리랑카 최우수 차 밭에서 따낸 찻잎을 함께 우려낸 이색 전통주다. 호텔 이름을 달고 내놓은 제품인 만큼 고급 이미지를 위해 술은 담은 병까지 신경 쓴 점도 눈길을 끈다.
파라다이스가 론칭한 얼그레이 향의 프리미엄 막걸리 ‘미심’.
파라다이스가 론칭한 얼그레이 향의 프리미엄 막걸리 ‘미심’.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예술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를 제작했다. 현재 파라다이스호텔은 라운지·식당·주류 매장에서 미심을 판매하고 있는데 향후 온라인으로도 판매처를 넓혀 갈 계획이다.

호텔업계가 이처럼 부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3년 넘게 이어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본업인 숙박과 레스토랑 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새로운 활로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다양한 부업들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생존을 위해 진행했던 부업들이 예상외로 선전하며 호텔들의 새로운 매출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호텔업계의 장외 부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