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인이 들려주는 산업 이야기]
바다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 [상상인이 들려주는 산업 이야기]
글로벌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향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대표적 에너지원인 풍력은 수혜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부문이다.

올해 글로벌 풍력의 누적 설치량은 1000GW 수준으로 예측되고 신규 설치량은 110GW다. 직전 5개년도 평균 설치량이 80GW라는 것을 고려하면 빠른 설치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청(EIA)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 설치량은 3000GW가 돼야 한다. 보다 보수적으로 공지된 공약 시나리오(APS : Announced Pledges Scenario)에서도 2030년 2300GW의 누적 설치가 필요하다. APS 시나리오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현재 80GW의 2배 수준인 연평균 150GW 이상이 설치돼야 한다. 즉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설치돼야 한다.

풍력 산업의 부족한 설치량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는 것은 해상 풍력이다. 현재까지 해상 풍력은 유럽과 중국이 약 80%를 차지하고 일부 지역에서만 시장이 활성화돼 왔다. 이러한 영향으로 2023년 해상 풍력 설치량은 18GW 수준으로 예측되고 전체 풍력 설치량에서 15%의 비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과 동북·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해상 풍력 시장이 개화를 앞두고 가파른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해상 풍력 설치량은 2030년 45GW까지 증가하고 전체 설치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 이상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의 해상 풍력은 경제성 측면에서 육상 풍력 대비 열위다. 그럼에도 해상 풍력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입지의 자율성과 풍부한 자원량 때문이다. 육상 풍력의 터빈은 3~4MW 수준인 반면 해상 풍력은 10MW 이상의 터빈들로 설치된다. 10MW 이상의 터빈의 블레이드 길이는 100m 이상으로 육상에 설치되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 실질적으로 설치가 불가능하다. 한국과 같이 육상 풍력에 적절한 부지가 부족한 국가들도 있다. 반면 해상 풍력은 비교적 입지 제약에서 자유롭다. 이 때문에 해상 풍력은 10MW 이상의 터빈으로 구성된 기가와트(GW) 규모의 대형 발전 단지 형성이 원활하다. 탄소 중립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설치량의 증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입지의 제약이 적고 대규모 단지를 형성할 수 있는 해상 풍력의 강점이 빛을 발한다.

또한 해상은 육상보다 비교적 풍력 자원이 풍부하다. 해상 풍력의 이용률(가동률)은 육상 풍력 대비 약 10~1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발전량으로 보면 동일 설치량 대비 약 1.5배 높은 발전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해상 풍력의 설치 비용이 줄어든다면 해상 풍력이 가장 비용 효율적인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는 해상 풍력이 기회 요인이다. 기존 육상 풍력은 전체 투자액에서 터빈의 비율이 절대적이었다. 풍력 터빈 산업은 과점 시장으로, 한국 기업이 경쟁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상 풍력의 등장으로 해상 풍력용 하부 구조물, 해상변전소(OSS), 해저 케이블 등 터빈외 기자재의 전체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이러한 기자재들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선두에 있는 조선·플랜트 산업과 연결돼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시장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해상 풍력 산업이 레퍼런스의 중요성이 큰 것을 고려한다면 선제적으로 시장에 진출해 레퍼런스를 쌓은 한국 기업들의 성장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해상 풍력 시장은 개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0.5GW 규모의 ‘안마해상풍력’이 환경 영향 평가를 완료했다. 2024년 1분기 내 파이낸싱이 무사히 마무리된다면 2024년 중 한국에서 최초로 착공에 들어가는 상업 단지 해상 풍력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마해상풍력의 진행에 따라 이후 진행되는 프로젝트 역시 사업 진척이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최근 한국 해상 풍력 시장의 가능성을 엿본 주요 대기업 그룹이 해상 풍력에 진출할 것을 선언한 것 역시 시장의 개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복잡한 인허가 절차는 프로젝트 개발사들에 골칫거리다. 이에 따라 정부 주도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해상풍력특별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해당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고 정기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정기 국회 본회의 이전 소위원회에서 먼저 통과돼야 한다. 본회의 이후 국정 감사 등이 예정돼 있어 이번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올해는 법안의 통과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해상 풍력은 앞으로 성장이 약속된 산업이다. 다만 정책과 거시 경제 변화에 따라서 시장의 성숙화 시기가 달라질 뿐이다. 한국은 풍부한 입지 조건과 기반 기술이 갖춰진 만큼 빠른 정책 설정을 통해 풍력 산업이 글로벌 해상 풍력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김광식 상상인증권 신재생·기계 부문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