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아시아나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수출화물을 비행기에 선적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아시아나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수출화물을 비행기에 선적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독과점 문제를 우려한 미국·유럽연합(EU) 등 해외 경쟁 당국의 기업 결합 심사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해서다. M&A 작업이 3년째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제삼자 매각설’이 불거지며 한화그룹 등판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KDB산업은행이 제삼자 매각 등 플랜B를 가동할 수 있다는 풍문이 돌면서 한화그룹이 잠재 원매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제삼자 매각설을, 한화그룹은 “인수 참여를 검토한 적조차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지부진’ 아시아나 합병에 한화 등판설

한화그룹의 한진칼 지분 인수 시도 움직임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설 풍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한화그룹이 하림그룹 계열의 팬오션 측과 접촉해 팬오션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매입 의사를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팬오션은 한진칼 지분 5.85%를 보유하고 있다. 2021년 이스타항공 인수에 뛰어들며 항공 물류 사업 확장 시너지를 모색했던 하림그룹이 인수전에서 발을 뺀 뒤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면서 보유하게 된 것이다.

한화그룹은 아시아나항공과 인연도 있다. 201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최종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인수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의 계열사인 한화솔루션(당시 한화케미칼)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 부상했었다.

당시 한화그룹이 적자를 내고 있던 면세점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롯데카드 인수전에 불참하자 시장에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사업 재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도 한화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모두 “인수 계획이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사옥.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한화그룹 사옥. 사진=연합뉴스
“플라이강원과 시너지 상당할 것”…한화 “No”

한화는 또 다른 항공사 M&A에서도 유력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경영 악화로 기업 회생 절차(법정 관리)를 밟고 있는 저비용 항공사(LCC) 플라이강원이 매물이다.

인수 주체는 한화갤러리아로, 김승연 회장의 3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전무)이 인수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이강원 인수 대금이 200억~3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되고 있어 향후 운영 정상화를 위해 50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예상되지만 한화그룹의 재무 여력상 부담이 되는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한화 측은 “플라이강원 인수의향서(LOI)는 받아봤지만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시장에서 제기되는 인수설을 부인했다.

한화그룹이 특히 항공사 M&A에서 등판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사업 포트폴리오상 항공사와의 시너지 때문이다. 업계에선 한화그룹의 방산·유통부문을 통해 항공사 인수로 얻을 수 있는 전후방 산업 간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기 엔진·부품을 제작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과 협업해 고객군을 확대할 수 있고 보유한 항공기를 기반으로 해외 업체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항공 정비(MRO)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다. 한화갤러리아의 유통·호텔·리조트 사업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플라이강원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 부상한 배경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3형제 승계 맞물려…또 다른 M&A 가능성

한화그룹의 3형제 승계 작업과 맞물리면서 주요 M&A에서 한화그룹 등판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사업 구조 재편을 통해 3형제의 승계 구도 윤곽이 더 뚜렷해졌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항공우주·태양광 등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맡고 2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부문을, 3남인 김 본부장이 백화점·호텔·리조트 부문을 맡고 있다.

한화갤러리아가 2021년 4월 한화솔루션에 흡수·합병된 지 2년 만에 다시 인적 분할돼 독자 경영을 시작하면서 3남인 김 본부장의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플라이강원 인수설이 나온 이유도 승계 과정에서 사업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3형제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업계에선 3형제 승계 과정에서 또 다른 대형 M&A가 나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7년 계열사를 통해 신생 LCC 에어로케이에 160억원을 투자해 지분 22%를 확보한 적도 있다. 항공기 부품 사업을 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의 시너지를 고려한 투자 결정이었다. 하지만 에어로케이가 2017년까지 항공 운송 사업 면허를 받지 못하자 한화그룹은 지분을 매각했다. 대기업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LCC 경영에 참여한다는 비판적 시선도 투자금 회수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이 M&A 시장에서 풍문의 주인공이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화그룹의 성장사는 곧 ‘M&A 성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약 사업으로 시작한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1981년 취임한 이후 기존의 성공 방식을 허무는 굵직한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판을 열어 왔다.

2002년 한화생명(구 대한생명), 2008년 한화손해보험(구 제일화재해상보험)과 한화저축은행(구 새누리상호저축은행), 2012년 한화큐셀(독일 큐셀), 2014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임팩트(삼성의 방산·화학 4개 계열사) 등 과감한 M&A로 방산·화학·금융 3대 축을 바탕으로 한화그룹을 재계 7위로 성장시켰다.
플라이강원의 A330-200 기종 중대형 광동체 항공기가 양양국제공항 주기장에 계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플라이강원의 A330-200 기종 중대형 광동체 항공기가 양양국제공항 주기장에 계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사래 쳐도…M&A 풍문 단골

한화그룹이 항공업 진출에 관심이 많은 것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항공업 진출은 김 회장의 오랜 숙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그룹이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기존 우주·지상 방산에서 해상 부문까지 확대한 상황에서 항공업 진출까지 성공하면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방산 업체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민영화와 관련해서도 한화그룹 인수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KAI와 한화그룹 모두 매각설과 인수설을 일축하고 있지만 KAI 매각설이 돌 때마다 한화그룹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화그룹에 KAI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이라는 오랜 꿈을 완성해 줄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불린다.

한화그룹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삼성·두산의 방산부문 인수에 이어 2022년 한화오션 인수에도 성공하며 육·해·공 종합 방산 기업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한화그룹이 KAI를 인수하게 되면 방산업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경쟁 관계를 해소하면서 글로벌 방산 1위 록히드마틴 못지않은 글로벌 방산 업체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