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남대문시장 건너편의 커다란 건물, 귀여운 일러스트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스틸북스 회현이다. 스틸북스는 이곳을 ‘관점이 있는 중형 서점’이라고 소개한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에 나 있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모던한 디자인의 문이 생각보다 조화롭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에 나 있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모던한 디자인의 문이 생각보다 조화롭다.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스툴과 의자, 테이블 등이 마련되어 있다.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스툴과 의자, 테이블 등이 마련되어 있다.
오래됐지만 새로운, 오래돼서 새로운스틸북스는 오래전 이발소와 패턴실이 있던 곳을 리모델링한 서점이다. 건물 입구에 ‘이발’, ‘패턴실–재단 개인 지도 3층’이라고 적힌 정겨운 간판을 남겨 둬 이곳의 본래 용도를 기억하게 했다. 이 간판처럼 건물 곳곳에는 세월을 가늠케 하는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과 바닥 곳곳의 패인 자국, 계단의 오래된 나무 손잡이 등이다. 건물의 구조에는 크게 손대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보완해 빈티지한 매력이 살아 있다.

그와 상반되는 새로움도 공존한다. 벽 끄트머리에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모던한 디자인의 문이 나 있고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한 책꽂이와 조명·스피커 등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이 어우러져 있다. 시멘트를 그대로 노출시킨 벽면이나 밖으로 드러나 있는 전선이 어찌 보면 방치된 건물처럼 삭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요즘 감성이 적절히 섞여 있어 오히려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스틸북스가 자리 잡은 곳은 로컬스티치 회현의 C동이다. A부터 F동까지 총 6개의 건물로 구성된 로컬스티치 회현은 카페·음식점·숙박 업소 등 다양한 스몰 브랜드들이 모여 있다. 총 6층으로 이뤄진 C동의 1층부터 3층까지가 스틸북스의 전용 공간이다.

1층 웰컴센터에서는 영화 잡지 ‘프리즘 오브’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브리크’ 등 다양한 잡지와 스몰 브랜드의 마스킹테이프·키링·스티커 등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만나볼 수 있다. 한쪽 벽면에 한 권씩 한 개의 선반에 진열된 책들은 마치 인테리어를 위한 오브제같기도 하다. 1층에서는 로컬스티치 멤버십 서비스를 비롯해 이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들을 수 있고 공간을 소개해 놓은 브로슈어도 챙길 수 있다.

계단을 올라 도착한 2층과 3층에서부터는 일명 ‘관점이 있는 중형 서점’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한 책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한 책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의 책들.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의 책들.
쓸모 있는 북 큐레이션소설·에세이·자기 계발서 등 책의 유형에 따라 구분해 놓는 대형 서점과 달리 이곳은 주제를 중심으로 책이 진열돼 있다. 2층은 일·삶·흥·쉼 그리고 브랜드를 주제로 했고 3층은 도시·건물·자연 관련 책들을 큐레이션했다. 각 주제에 맞는 도서들이 한눈에 보기 좋게 놓여 있다. 눈높이 위치의 선반에는 책이 정면에 놓여 있어 보기가 좋다. 특히 흥미로운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책이 많아 모든 책을 한 번씩 들춰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벽과 바닥의 무채색과 대비되는 형형색색 화려한 표지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권씩 읽어보다 다리가 아프면 곳곳에 마련된 스툴에 앉아 천천히 감상할 수도 있다. 조명이 마련된 자리에서 사색을 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비치돼 있는 중고 책 중 절판돼 볼 수 없었던 책을 만날 수도 있다. 판매하지는 않지만 방문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중고 책을 가져다 놓아 더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 중 하나다.
둥근 모서리의 창문이 마치 기차 창문을 연상케 한다.
둥근 모서리의 창문이 마치 기차 창문을 연상케 한다.
취향 담긴 책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무작정 책을 사고 싶을 때가 있다. 책을 읽고 싶다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책을 ‘사고’ 싶어 서점에 가는 날이다. 주로 접근성이 좋은 대형 서점에 간다. 바로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구매해 품에 안고 나올 때도 있지만 중앙 매대·베스트셀러·신간 코너를 샅샅이 둘러봐도 썩 내키는 책이 없어 그냥 발길을 돌릴 때도 많다. 너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헤매기 일쑤다. 그래서 보통 성공한 사업가가 크게 감명 받은 책이라고 소개했다거나 유명 유튜버가 내놓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하지만 본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책을 읽는다면 그에 맞는 소양과 지식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틸북스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이곳의 어떤 책을 골라도 평균 이상은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이곳은 2층과 3층의 창문이 인상적인데, 마치 비행기의 작은 창 같기도 하고 기차 창문 같기도 하다. 둥근 모서리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행자의 기분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취향 담긴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읽을 책을 골라 보는 것은 어떨까.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