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 출시 이후 대세서 밀린 유선 이어폰, 다시 수면 위로
어제(3일)죠. 블랙핑크 제니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 일정을 마치고 입국했습니다. 파란색 디즈니 모자, 미국 유명 가수 카니예 웨스트의 전 부인이자 인플루언서인 킴 카다시안이 2019년 설립한 속옷 브랜드 스킴스의 셔츠, 더로우 가방, 꾸레쥬 청바지…. 이날 제니가 착용한 모든 제품들이 화제가 됐습니다.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있습니다. 제니의 귀에 꽂혀있던 유선 이어폰인데요. '줄이어폰'이라고요 하죠. 블루투스형 무선 이어폰이 IT액세서리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잊혀진 바로 그 제품입니다. 그런데, 이 유선 이어폰이 Y2K(Year 2000, 2000년대) 유행의 영향으로 패션 아이템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유선 이어폰이 비주류가 된 것은 2010년대 중반입니다. 애플이 2016년 9월 새로운 형태의 이어폰 '에어팟 1세대'을 발표한 시점입니다. 당시 애플은 줄이 없는 콩나물 형태의 제품을 양쪽 귀에 하나씩 거는 신제품을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에어팟을 두고 "우리의 미래"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놀라운 건 가격이었죠. 스마트폰을 사면 공짜로 주는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던 시기에 159달러(미국 기준, 약 21만원) 이어폰을 사용하라고 했으니까요. 이 때문에 애플이 '악수'를 뒀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콩나물을 닮은 디자인도 웃긴데, 터무니 없는 가격을 책정했다는 거죠. 실제로 출시 직후에 외신에서는 호평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질책이 많이 나왔었고요.
시장 반응이 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3개월이었습니다. 2016년 12월 정식 출시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뀐 겁니다. 온라인 홈페이지에서는 출시 직후 매진이 됐고, 주문이 완료됐다고 해도 배송을 받기까지 약 두달이 걸렸습니다.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생산 속도에 팀쿡 CEO까지 나서서 "에어팟을 최대한 빨리 만들고 있다"라며 해명하기까지 했었죠.
일각에서는 애플이 통상 아이폰 신제품 발표와 출시 사이에 일주일의 간격을 두는데, 예정대로 출시됐다면 시장 반응은 일주일 만에도 달라졌을 거라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2016년 이후 IT액서서리의 주류는 무선 이어폰이 됐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무선 이어폰 시장 규모는 2016년 170만대에서 2018년 3360만대까지 폭증했습니다. 2019년 삼성전자에서도 무선 이어폰 '버즈'를 선보였고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선 이어폰은 비주류가 된 겁니다. 아울러,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기본 구성품에서 유선 이어폰을 제외한 것도 영향을 미쳤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다니면 '촌스럽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선 이어폰이 다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레트로(복고)' 열풍이 불면서 2000~2010년대 사용한 제품들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데, 유선 이어폰도 그중 하나입니다.
블랙핑크 제니까지 썼으니까 말 다 한 거죠. 같은 그룹의 멤버인 로제도 올해 5월 패션지 '보그 프랑스'와의 인터뷰에서 유선 이어폰을 사용한다고 밝혔죠. 힙한 젠지(Z세대)들의 선택을 받은 유선 이어폰, 다시 IT액세서리의 대세가 될 수 있을까요.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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