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인수로 퀀텀점프 역사 만들어
내수 중심 정유·통신에서 BBC·그린사업 선도 '글로벌 SK'로 탈바꿈
이사회 중심 경영·사회적 가치 측정 등 이슈 주도한 '최태원식 경영'
38세에 총수 올라 이젠 '재계 맏형'…"사회에 공헌 방안 고심"

[비즈니스 포커스]
최종현 선대 회장이 타계한 후 1998년 9월 1일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사진=SK그룹 제공
최종현 선대 회장이 타계한 후 1998년 9월 1일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 SK 회장이 올해 취임 25년을 맞았다. 1998년 8월 부친인 최종현 선대 회장이 타계하면서 최 회장이 38세에 그룹 회장을 맡게 됐다.

당시 최 회장은 “혁신적 변화(deep change)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라는 취임 일성과 함께 그룹 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꾸며 내수 기업 SK를 ‘글로벌 SK’로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최 회장이 취임한 1998년 32조8000억원이었던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지난 5월 기준 327조3000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재계 순위도 5위에서 2위로 3계단 뛰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37조4000억원에서 2022년 224조2000억원으로 6배, 영업이익도 2조원에서 18조8000억원으로 9배 이상 각각 증가했다. 폭발적 성장세다.

SK그룹의 시가 총액도 3조8000억원에서 137조3000억원으로 36배 이상 불어났다. 수출액은 8조3000억원에서 83조4000억원으로 10배 정도 늘어나며 한국 총수출의 10%를 떠맡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최태원식 체질 혁신…자산 10배 껑충

최 회장이 끊임없는 ‘딥 체인지(근본적인 혁신)’를 통해 선대 회장이 기틀을 닦은 에너지·정보기술(ICT)에 이어 배터리·바이오·반도체(BBC) 등 그린·첨단 분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것이 주효했다.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사회적 가치(SV)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반의 경영 체계도 구축했다.

지배 구조 변화도 한 발 앞섰다. 최 회장은 2002년 ‘따로 또 같이’ 경영을 선언하고 최고경영자(CEO) 인사권, 투자 등 의사 결정을 포함한 총수의 권한을 각 계열사 이사회에 대거 넘기는 지배 구조 실험에 시동을 걸었다. 2004년 이사회 중심 투명 경영 선언,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을 통해 미래 지향적이고 모범적인 지배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는 당시 에너지·화학·정보통신에 한정돼 있던 SK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BBC 중심의 그린·첨단 분야로 확장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 회장은 그룹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글로벌 사업 확대 의지로 하이닉스를 3조원에 인수했다.

하이닉스를 기술력과 글로벌 진출이라는 양날개를 갖춘 성장 동력으로 본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최 회장의 선제적인 투자에 힘입어 SK텔레콤(통신)·SK이노베이션(석유화학)과 함께 SK그룹의 3대 주력사로 거듭났다.

하이닉스 인수는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와 함께 SK그룹의 역사를 바꾼 3대 빅딜 중 하나로 꼽힌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로 사업 영역을 정유와 통신에서 반도체로 확장했고 이를 통해 내수 기업의 한계를 벗어나는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하이닉스 인수 이후 SK머티리얼즈·SK실트론을 잇따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하이닉스 인수는 기업과 산업 지형을 바꾼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으로 평가받는다. SK그룹을 퀀텀 점프하게 한 2018년 도시바 메모리 지분 인수, 2020년 10조원대 인텔 낸드 사업부문 인수 등의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최태원 SK 회장이 2015년 8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사업장을 돌아보고 있다. 2012년 3월 최 회장의 결단으로 하이닉스는 SK에 편입됐다.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 SK 회장이 2015년 8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사업장을 돌아보고 있다. 2012년 3월 최 회장의 결단으로 하이닉스는 SK에 편입됐다. 사진=SK그룹 제공
BBC 앞세워 미래 주도

최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ESG 경영과 지속 가능 성장 기반 구축에 속도를 내며 전기차 배터리·바이오·수소·신재생에너지·소형모듈원자로(SMR)·도시유전(폐플라스틱 열분해)·폐기물 및 수처리 사업 등 탈탄소 그린·첨단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하는 SK온은 미국 조지아 1·2공장 준공에 이어 2022년 7월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공식 출범하고 테네시 주와 켄터키 주에 3개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 헝가리 코마롬시 1·2공장, 헝가리 이반차시 3공장, 중국 창저우·후이저우·옌청 공장을 포함해 2022년 말 연간 생산 능력 88GWh를 갖췄고 2030년까지 70kWh급 승용차 7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500GWh 규모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바이오 사업은 최 회장과 선대 회장의 집념과 도전과 투자로 일군 성과다. 최종현 선대 회장은 정밀 화학 분야가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1987년 선경인더스트리 산하에 생명과학연구실을 설립한 뒤 합성신약·천연물신약·제제·바이오 등 4개 분야로 나눠 연구에 돌입했다.

당시 한국은 제약·바이오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1993년에는 글로벌 신약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울산 공장의 한 연구실에서 6명의 연구원으로 ‘P-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의 SK바이오팜의 모태가 됐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산업인 만큼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도전에 따른 실패도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절대 신약 연구를 포기하지 마라”는 선대 회장의 유지를 이어 받아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바이오 사업은 SK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로 성장할 수 있었다.

BBC 중심의 신성장 동력 발굴이 자산 규모를 키우고 이렇게 늘어난 자산이 또 다른 성장 동력 발굴의 발판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서 SK그룹의 재계 순위도 수직 점프했다.

SK그룹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ESG 경영을 앞세운 주요 계열사의 사업 모델 재편, 기업공개(IPO)와 기업 분할로 기업 가치를 대폭 끌어올리면서 2022년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최태원 SK·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월 12일 ‘제주포럼’에서 부산엑스포 로고가 그려진 목발을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최태원 SK·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월 12일 ‘제주포럼’에서 부산엑스포 로고가 그려진 목발을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재계 맏형 넘어 ‘사회 리더’로

최 회장 이름 앞에는 ‘사회적 가치(SV)·ESG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ESG 경영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그는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와 ESG를 비즈니스에 내재화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지속 가능 성장을 선도하고 있다.

2016년 그룹의 경영 철학이자 실천 방법론인 SK 경영 체계(SKMS : SK Management System)에 사회적 가치 창출 조항을 명문화했고 2018년부터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 보텀 라인(DBL)’ 경영을 추진하며 매년 사회적 가치 창출액을 측정해 발표하고 있다.

2022년 SK그룹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총 22조5000억원으로 측정 첫해인 2018년 16조1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연평균 5%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탄소 중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두하자 최 회장은 앞장서 탄소 중립 비전을 제시했다. 2021년 6월 확대 경영 회의에서 그룹 차원의 넷 제로를 선언하고 그해 10월 CEO 세미나에서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의 1%에 해당하는 2억 톤의 탄소를 줄이는데 SK그룹이 기여하겠다”고 공언했다.

2021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22년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은 최 회장은 재계·사회 리더 역할도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 6월 발목 부상을 당한 최 회장은 “60대에 접어들고 보니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면서 목발을 짚고서도 해외를 누비며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에 동분서주 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