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떤 주식을 얼마나 샀고 팔았는지는 매일 집계된다. 투자자별 매매 동향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주식의 ‘수급’이라고도 말한다. 한때는 펀드 열풍에 편승한 기관이 한국 증시의 상승과 하락을 주도할 때가 있었고 지금은 외국인과 개인의 행태에 따라 주식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수급은 마켓 애널리스트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만약 이 문제를 필자와 같은 이코노미스트에게 묻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펀드 플로란‘펀드 플로(fund flows)’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고 대개의 투자자는 보고서의 형태로 이를 접했을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금의 흐름 내지는 동향’이다. 최근 펀드 플로 보고서의 내용은 주식·채권형 펀드로 얼마의 자금이 유입됐고 특정 기간 동안 기관·외국인·개인이 얼마의 주식을 순매수했는지 그 동향을 알려주는 것에 집중돼 있다.
기관 주도의 장세일 때는 한국 주식형 펀드에 얼마가 유입되고 외국인들이 한국 관련 펀드에 얼마를 투자하는지가 중요했다. 반면 지금은 개인 투자자와 상장지수펀드(ETF)의 영향이 커진 상태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접근은 경제 전체에서 자금을 운용하고 조달하는 자금 순환(flow of funds)의 부분 집합이다. 주식 시장과 채권 시장에서 투자자별 매매 동향이 실시간으로 관측된다면 거시 경제의 자금 순환은 분기 단위로 데이터가 모여 상당 기간 시차를 두고 통계가 공개되는 특징이 있다.
자금 순환은 경제 주체들이 생산·소비·투자 등 경제 활동을 수행할 때 어떻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잉여 자금을 운용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분기별 자금 조달·운용의 흐름은 금융거래표로, 분기 말 자산·부채의 잔액은 금융자산부채잔액표에서 집계된다. 이를 통틀어 자금순환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계는 소득이 창출되면 소비를 한 후 남은 자금을 저축한다. 여기에서의 저축은 소득에서 소비를 차감한 개념이고 저축된 잉여분은 부동산을 구매하거나 금융 자산에 투자(혹은 불입)된다. 이처럼 대부분 금융 자산의 운용은 가계에서 비롯된다. 반면 기업이나 정부는 자금 조달의 주체다.
미국은 대체로 한국과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한국은 해외 부문(외국인)이 자금을 순(net) 조달해 가는 주체라면 미국의 해외 부문은 가계와 함께 자금을 여타 부문에 공급해 주는 자금 잉여의 주체다. 미국으로선 외국인이 채권과 주식을 순매입해 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인 가계와 해외(외국인) 부문이 지난 20년간 어떻게 금융 자산을 취득해 왔고 그들의 금융 자산 포트폴리오 내에서 각 자산의 비율은 어떻게 변했을까.미국의 금융 자산 비율먼저 미국 가계 부문은 2003년 1분기부터 2023년 1분기까지(이하 구간 동일, ‘지난 20년간’) 총 31조 달러의 금융 자산을 순 취득했다. 많이 취득한 자산의 순서는 예금 11조 달러, 연금 10조 달러, 뮤추얼 펀드와 머니마켓펀드(MMF) 4조6000억 달러, 채권 2조8000억 달러, 순수 주식은 7000억 달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변화는 예금의 급증(재정 정책 대응, 재난 지원금 지급)과 직접 주식 투자의 약진이다.
미국 해외 부문, 즉 미국으로선 외국인이 지난 20년간 22조1000억 달러의 금융 자산을 순취득했다. 규모별로는 국채(6조9000억 달러), 해외 직접 투자(지분 매입 등 5조2000억 달러), 회사채(3조6000억 달러)의 순서다. 주식은 1조2000억 달러어치를 순취득하는 것에 그쳤지만 평가익이 누증되면서 외국인의 미국 자산 내 보유 비율은 지난 20년간 무려 11.2%포인트나 상승했다. 해외 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금융 자산의 비율은 2023년 1분기 말 기준 직접 투자 26.8%에 이어 주식 26.6%, 국채 17.2%, 회사채 8.8% 순이다. 특히 주식의 비율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파르게 약진했다.
자산군 중 미국 채권은 재정 적자와 기업 부문 자금 조달 수요 등으로 발행이 꾸준히 늘어 왔고 이에 상응해 경제 주체들의 누적 순취득 규모도 계속 증가했다. 지난 20년간 국채는 22조6000억 달러어치, 회사채는 9조7000억 달러어치가 순매입됐다. 이 두 자산군 모두 외국인이 각각 6조7000억 달러어치와 3조5000억 달러어치를 순취득해 매수 상위에 포진돼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양적 완화 1~4로 국채를 4조8000억 달러어치 순취득했다. 보험사의 영향이 회사채 시장에서는 적지 않지만(2조5000억 달러), 국채 시장에서는 미미하다. 오히려 양 시장에서는 뮤추얼 펀드 등 투자 펀드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주식은 지난 20년간 순취득을 가장 적극적으로 한 투자자는 투자 펀드 부문(3조1000억 달러)이다. 여기에는 뮤추얼 펀드뿐만 아니라 최근 각광받고 있는 ETF도 포함된다. 해외 부문(외국인)은 1조2000억 달러를 순매입했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미국 주식 보유 잔액의 투자자별 비율 변화를 보면 해외 부문이 7.6%포인트 상승했고 그다음으로 투자 펀드(4.9%포인트 상승), 가계(4.3%포인트 상승) 순이다. 올해 1분기 말 투자자별 미국 상장 주식의 보유 잔액 비율을 보면 가계가 40.7%로 가장 크지만 지난 20년 사이 외국인의 약진으로 현재 17%는 외국인이 보유하게 됐다.
기업 비율은 지난 20년간 3.6%포인트 줄었다. 기업 부채 부문에서의 주식 순발행이 지난 20년간 6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점과 연계해 생각해 보면 자사주 매입·소각 등에 따른 주식 수 감소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특이한 점은 미국 주식 시장에서도 개인 투자자와 ETF의 영향이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개인·ETF 주도로 대형주 중심의 수급 쏠림이 나타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라는 점이 본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한국의 금융 자산 비율반면 전통적인 자금 잉여의 주체인 한국 가계는 지난 20년간 3524조원 규모의 금융 자산을 순취득해 왔다. 이 중 현금·예금 순취득 규모는 1753조원으로 가장 크고 보험·연금(1282조원), 주식(374조원), 채권(88조원) 순이다. 가계 금융 자산 포트폴리오 내의 비율은 장기간 연금 불입의 영향으로 보험·연금의 비율이 20년간 가장 크게 늘었고(6.1%포인트), 그다음이 주식·투자 펀드(3.9%포인트)다.
누적 순취득 규모와 포트폴리오 내 자산별 보유 비율 차이는 당연히 자산 가치의 상승 때문이다. 한국 가계가 지난 20년간 374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입한 반면 주식 평가액은 898조원 늘었다. 금융 자산 전체적으로도 시장 가격의 상승이 순취득분(20년간 3524조원)을 웃도는 자산 가치 증가(3932조원)로 귀결됐고 대부분이 주식 가치 상승에서 비롯됐다.
미국만큼 괴리가 크지 않은 것은 한국 가계의 금융 자산 내에서 현금·예금 비율이 높고(47%), 주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22%) 것도 한몫하고 있다. 주식에 한정해 보면 미국 증시 성과가 한국 주식 대비 양호했다는 점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의 국외 부문이 자금 잉여의 주체였다면 한국에서는 지난 20년간 자금 조달을 주로 해 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한국의 해외 직접 투자(outbound)와 증권 투자 확대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금융 자산 순취득분만 본다면 710조원 중 채권(408조원), 한국 직접 투자(225조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주식·펀드 순취득분은 24조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외국인의 한국 주식 보유 잔액은 564조원 증가했고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금융 자산 내 주식 비율도 11%포인트로 크게 높아졌다. 한마디로 주식을 잘 사고 잘 팔았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각 투자자별 주식 누적 순취득의 형태를 보면 은행·보험·연기금 등은 자산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꾸준히 순취득이 누적돼 오는 형태를 지닌다. 매매 흐름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은 투자 펀드·가계·국외(외국인) 정도다. 이는 금융 부문이나 연금이 주식의 적극적인 매매 주체라기보다는 꾸준한 보유자(holder) 역할에 집중하고 있고 주가의 등락은 가계나 외국인 흐름에 좌우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코스닥시장은 개인, 유가증권시장은 외국인 주도 시장이라는 점이 자금 순환 계정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난 20년간 미국과 한국의 자금 순환 특징을 살펴봤다. 이 데이터는 적시성이 떨어지므로 큰 흐름에 집중해 활용하고 개별 자산군인 주식과 채권에 대해서는 여기에 특화된 매매 동향을 파악해 매일의 수급 양상을 판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이코노미스트
*보고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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