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초 3일간 일정으로 열리는 벅셔해서웨이 주주 총회에 가 보면 그의 장수 비결을 알 수 있다. 주총이 열리는 곳은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라는 도시다. 50만 명이 안 되는 도시에 줄잡아 4만여 명이 몰린다. 이들은 5시간 계속되는 버핏 회장과 찰리 멍거(99) 부회장의 ‘투맨쇼’에서 발을 구르며 열광한다. 100여 개 투자회사의 물건을 구입하고 함께 마라톤을 하면서 버핏 회장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확인한다.
버핏 회장을 한국적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그는 53년간 이사회 의장과 CEO를 겸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금산 분리도 어기고 있다. 자신의 주식이 일반 주식의 1만 배 의결권을 갖는 차등 의결권도 시행하고 있다. 투자도 문어발식이다. 캔디회사부터 보험사, 철도회사, 비행기 회사까지 손을 안 대는 회사가 없다. 한국같으면 중소기업 업종 침해로 단단히 혼쭐이 났을 법도 하다. 더욱이 배당은 지금까지 한 푼도 한 적이 없고 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버핏 회장은 주주들에게 절대적 존재다. 이유는 많다. 검소함이 우선 꼽힌다. 그는 1958년 3만1500달러를 주고 산 집에서 지금도 산다. 연봉은 40년째 달랑 10만 달러다. 기부와 승계도 모범적이다. 재산이 1200억 달러나 되는 데도 3명의 자녀에게는 300만 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기부하겠다고 한다. 후계자로는 아들이 아닌 그렉 아벨 벅셔해서웨이 부회장을 지목했다.
주주들의 광적인 지지의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엄청난 수익이다. 2022 년말 벅셔해서웨이의 주가는 1964년 말에 비해 378만4764% 상승(같은 기간 S&P500 주가는 2만4708% 상승)했다. 1964년 말 1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산 뒤 작년 말 팔았다면 3억780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는 얘기다. 주주들로선 ‘버핏이여, 영원하라!’를 외칠 수밖에 없다.
비단 버핏 회장만이 아니다. 미국 기업에는 CEO의 장수경향이 두드러진다. S&P500 기업 CEO 중 101명이 10년 이상 CEO로 재임하고 있다고 한다. 10년 전의 36명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18년)이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장수 CEO가 꽤나 있다.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중 장수 전문 경영인(CEO)으로는 한승구 계룡건설산업 회장(16년),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14년) 등이 꼽힌다. 차석용 휴젤 회장은 LG생활건강에서 18년 동안 CEO로 일하기도 했다.
물론 CEO의 장수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미국 상장기업의 시가 총액은 CEO 취임 후 10년간 늘다가 15년 뒤부터 감소한다(보스턴대 프랑수아 브로셰팀)’는 연구도 있다. 오래하는 것도 좋지만 물러날 때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11월이면 금융계 장수 CEO인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9년 임기를 마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KB금융그룹을 리딩 금융그룹으로 올려놓은 윤 회장이다. 4연임도 욕심낼 수 있었지만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승계 작업도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버핏 회장이 존재할 수 없는 한국적 상황에서 윤 회장의 진퇴 과정은 박수 받을 만하다고 하면 너무 편중된 시각일까.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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