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시스템 구축 위해 의료법 체계 혁신 논의 착수
의료법 체계 연구회 발족
보건복지부 15일 초고령사회에 맞는 새로운 의료법 체계 마련을 위해 ‘의료법 체계 연구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1962년 제정된 의료법은 그동안 시대 변화 및 고령사회의 의료·돌봄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되고 있는 비대면진료는 현행법상 금지이며, 방문진료 등의 허용 범위나 준수 기준에 관한 규정은 없는 상태다. 즉, 의료기관 밖에서의 의료행위가 활성화 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의료·요양·돌봄의 통합적 제공 체계에도 부합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무면허 의료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면서도 의료행위의 개념이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정하지 않아 판례와 해석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인·장애인에 대한 가래 흡인(석션)이나 욕창 관리, 자가 도뇨(기구를 통한 소변 배출)와 같이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행위들까지 의료행위로 간주돼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은 늘 있어 왔다.
구체적 사례로 살펴보면, 최근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은 A씨는 가래가 자주 차는데 본인이 뱉어내지 못해서 종종 산소포화도가 낮아진다. 의사는 가래가 찰 때 흡인을 하도록 했다. A씨의 보호자인 딸은 퇴원 후 집에서 가래 흡인하는 방법을 교육받고 퇴원했지만 직장 출퇴근으로 비는 시간이 많아 요양보호사에 흡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흡인을 하는 것은 불법 의료행위라 어렵다고 요양보호사는 거절했다.
척수장애인 D씨는 스스로 소변을 볼 수가 없어 도뇨관을 넣어 규칙적으로 배뇨하는 자가도뇨를 하고 있다. 최근 거동이 더 불편해진 D씨는 장기요양 2등급을 받았으며, 보호자는 요양원에서 돌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하루에도 여러 번 해야 하는 자가도뇨로 인해 요양원에서는 입소를 거부했다. 2014년 복지부 유권해석으로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자가도뇨를 도와줄 수 있게 됐지만, 요양보호사의 자가도뇨는 여전히 불법 의료행위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D씨는 결국 요양병원으로 입원했다.
이 밖에도 보건의료인 업무의 다양화·전문화를 현행법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라 각 직역별 업무가 다양해진 반면 의료법 상 의료인 직역별 업무범위 규정은 추상적인 채 그대로 유지돼 현장에서의 갈등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고령화가 빠르게 지속되는 만큼 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의료법 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5월 간호법안 재의요구 당시에도 앞으로의 정책 방향으로 새로운 의료·요양·돌봄체계 구축과 의료법 등 체계 정비를 밝힌 바 있다.
이 연구회는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를 연구회 위원장으로 의료, 간호·요양, 법조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첫 회의에서는 초고령사회에 맞지 않는 의료법 체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외사례 등을 기반으로 각 주요 규정별 개선 방향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향후 ▲의료기관 밖에서의 의료서비스 제공 근거 체계화 방안, ▲의료행위와 각 직역별 업무범위 규정 체계 개선 방안, ▲의료법과 다른 법률과의 관계 재설정 방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1차 회의에 참석한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고령화에 따라 국민들이 실제 요구하는 서비스는 다양한 직역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조하는 원팀이 되어야 완성할 수 있다”라며, “초고령사회에 맞는 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특정 직역의 역할 확대만을 반영하는 단편적인 법 제정이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을 다루는 의료법 체계 정비가 우선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우리 의료법 체계 개편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연구회는 격주로 운영하며, 각 회의마다 참여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연구회 차원에서 관계단체 의견 수렴을 병행하고, 필요시 공청회 등도 개최하기로 하였다. 연구회는 최종적으로 정부에 의료법 체계 개편 방향을 권고문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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