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동의율 조건 맞추려
땅 1㎡ 이하로 쪼개 임직원에게 지분 넘겨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일선 정비 사업지에서 토지 소유주가 꼼수로 부풀려진 게 아닌지 진위를 따지는 과정에서 사업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1인당 1㎡ 이하로 지분 쪼개
대법원 2부는 2023년 9월 11일 서울 성북구 장위3동 거주민 A 씨 등이 성북구를 상대로 낸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 설립 인가 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조합 설립 인가 취소를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은 “지분 쪼개기에 해당하는 토지 소유자들은 조합 설립 인가를 위한 동의 정족수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재개발조합 설립을 위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가까운 사람 명의로 부동산을 쪼갠 행위는 탈법이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지분 쪼개기’로 토지 등 소유자가 된 이들이 조합 설립 과정에 참여하면 전체 소유자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위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은 서울 성북구 장위동 305 일대 6만6000여㎡가 대상이다. 2004년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설립됐고 2008년 4월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됐다. 추진위 설립 약 15년 만인 2019년 5월 성북구에서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낙후된 건물과 기반 시설을 전면 철거하고 600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조합 설립 인가를 취소함에 따라 추진위 단계로 돌아가 다시 인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 등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 면적의 2분의 1 이상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장위3구역 내 토지의 약 절반을 소유한 대명종합건설은 ‘4분의 3’ 조건을 맞추기 위해 보유 토지와 건축물 지분을 작게 나눠 임직원과 지인 등 총 209명에게 매매·증여하는 방식으로 지분 쪼개기를 했다.
이를 위해 대명종합건설은 2003년 말부터 장위3구역 일대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이후 2008년 7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해당 부동산의 지분을 임직원과 지인 등 총 209명에게 매매·증여했다.
문제는 209명이 가져간 부동산의 크기가 정상적인 거래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작았다는 점이다. 이들이 나눠 가진 1인당 토지 지분은 전체 사업 면적의 0.0005∼0.002%로 모두 1㎡ 이하에 불과했다. 건축물 지분도 0.003~0.04%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위3구역 추진위는 전체 토지 등 소유자 512명 중 391명의 동의서(동의율 76.37%)를 모아 성북구에서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에 장위3구역에 거주하는 A 씨 등은 “지분 쪼개기를 한 소유자를 제외하면 조합 설립에 필요한 ‘토지 등 소유자 수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1심 재판부는 “지분 쪼개기의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대명종합건설이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토지 등 소유자 수를 인위적으로 늘렸다”며 “그들은 전체 토지 등 소유자의 수와 동의자 수에서 각각 제외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다른 개발 사업에도 파장 클 것”
장위3구역은 이번 판결로 인해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조합 설립 추진위가 다시 설립돼야 하고 새로운 추진위가 조합 설립을 위해 동의서를 걷어야 한다.
다만 대명종합건설 측과 다른 토지 등 소유주 간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러면 사업이 장기간 파행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새로운 추진 세력이 형성돼 주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그동안 묵은 갈등을 얼마나 현명하게 해결하느냐가 초기 사업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미칠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토지 등 소유자(4분의 3 이상)’나 대지 면적(2분의 1 이상)을 채우기 위한 동의서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30일 이내 조합 설립 인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토지 등 소유자 중 조합 설립 인가 요건을 채우기 위한 ‘꼼수’가 있는지 구청이 따져봐야 하는 변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장위3구역은 대명종합건설이 동의율 요건을 채우려고 무상에 가깝게 과소 지분을 임직원에게 나눠준 것이어서 정황이 명확하다”면서도 “소유권 이전 등의 형식만 갖춰지면 구청이 직접 토지 등 소유자 간의 관계가 임직원인지 일일이 찾아내 꼼수라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 한 조합 설립 인가를 거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소송 리스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변호사는 “구청에서 조합 설립 인가가 난다고 해도 ‘쪼개기’한 토지 등 소유자에 대해 일일이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조합 설립 인가 요건을 맞추기 위한 꼼수가 무엇인지 명시하는 법령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균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정비사업뿐만 아니라 시행사가 임직원이나 가족에게 지분을 나눠 주면서 토지 등 소유자를 확보하는 것은 택지개발사업에서도 흔하다”며 “다른 개발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는 판례여서 파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조합 설립 절차부터 다시 밟게 된 장위3구역
정비 사업에서 ‘지분 쪼개기’는 통상 단독 주택이나 다가구 주택 등 하나의 주택 소유권을 가진 주택의 지분을 나눠 인위적으로 분양권을 늘리는 투기 행위를 일컫는다.
그동안 대부분 지분 쪼개기 관련 소송은 지분 쪼개기를 통해 토지 등 소유자가 된 이들에게도 새 아파트를 줘야 하는지를 다투는 게 쟁점이었다. 하지만 장위3구역 추진위의 지분 쪼개기 목적은 투기가 아닌 조합 설립이 목적이란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여기엔 복잡한 사연이 있다.
대명종합건설은 장위동 일대에 땅을 많이 갖고 있었다. 이 업체는 보유한 땅을 개발해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장위3구역 바로 옆 블록에 2008년 준공된 ‘꿈의숲대명루첸(611가구)’ 아파트가 좋은 예다.
하지만 장위동 일대가 재개발구역(뉴타운)에 지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뉴타운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토지 소유주인 대명종합건설이 자체 사업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있었지만 보유한 토지가 정비구역으로 묶이면서 다른 토지 소유주 동의와 각종 인허가의 벽이 높아져 개발 여건이 까다로워졌다.
이에 대명종합건설은 보유한 땅과 건물을 쪼개는 방식으로 조합 설립을 위한 ‘표’를 늘리기로 마음먹고 이 사건의 ‘지분 쪼개기’에 나섰다.
인위적으로 늘린 소유주를 통해 조합 설립을 위한 ‘토지 등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토지 면적의 2분의 1 이상 토지 소유자의 동의’ 조건을 가까스로 맞추기까지 했다. 하지만 재개발을 반대하는 다른 토지 소유주의 반발에 부딪쳤고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전에서 결국 패소했다.
대법원 판결로 장위3구역은 추진위 단계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대명종합건설이 장위3구역 내 토지의 약 절반을 소유한 대지주란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업을 다시 추진하게 되더라도 대명종합건설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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