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올해 8월까지 판매량 벤츠 추월
8년 만에 1위 탈환 목전
하반기에는 풀체인지 5시리즈 출시

[비즈니스 포커스]

“어차피 1위는 벤츠” 공식 깨지나…BMW의 무서운 질주
“어차피 1위는 벤츠다.”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가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만들어 낸 공식이다. 벤츠는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벤츠가 자타 공인 한국 수입차 시장의 최강자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는 이 같은 수입차업계의 판도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벤츠의 뒤를 이어 ‘2인자’에 머물렀던 BMW가 올해 무서운 속도로 판매량을 끌어올리며 벤츠를 뛰어넘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해 8월까지 누적 판매 실적을 보면 BMW가 5만341대로 1위를 기록 중이다. 벤츠는 4만7405대가 팔려 양 사의 격차는 3000대까지 벌어졌다.

수입차업계에서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올해 BMW가 8년 만에 수입차 시장의 ‘왕좌’를 탈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7년째 이어진 ‘벤츠 천하’그동안 한국 수입차 시장 상황을 들여다보면 ‘벤츠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벤츠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수입차는 무조건 벤츠를 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BMW도 벤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최근 5년간의 판매량에서도 나타난다.
“어차피 1위는 벤츠” 공식 깨지나…BMW의 무서운 질주
벤츠가 수입차 시장을 ‘벤츠 천하’로 만든 첫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벤츠가 한국에 법인(벤츠코리아)을 설립(2003년)한 이후 처음으로 BMW를 꺾고 한국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했던 해다. 이전까지는 BMW가 7년 연속 수입차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상황이었다.

판도를 뒤바꾼 것은 벤츠가 2016년 내놓은 중형 세단 ‘E클래스’였다. 해당 모델은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끌며 단숨에 1위 자리를 꿰찼다.

‘역대급’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E클래스가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뛰어난 점도 있었지만 당시 BMW에 불어닥친 악재 역시 뼈아픈 결과를 내게 한 주된 요인이었다.

BMW의 전체 판매량을 견인하는 주력 모델인 5시리즈 디젤 차량이 2018년 잇단 차량 화재로 충격을 겪으면서 판매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한 것.

이 사건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BMW는 이 화재로 많은 충성 고객이 떨어져 나갔다. 특히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BMW는 화재 차’라는 오명이 덧씌워지며 판매량이 급감했다. 2019년에는 라이벌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벤츠와 판매량 격차(약 3만 대)가 벌어지기도 했다. 1위 탈환의 길은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은 2020년부터다. 2020년 말 5시리즈 페이스 리프트 모델 출시를 계기로 차츰 판매량을 회복하기 시작한 BMW는 다시 벤츠와의 격차를 좁혀 나갔다.

2022년에는 판매 격차를 약 2000대로 좁히며 다시 한 번 왕좌 탈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벤츠의 한국 판매량은 8만976대, BMW는 7만8545대를 각각 기록했다.

급기야 올해는 벤츠를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상반기 판매량에서 벤츠를 앞지르며 8년 만에 1위 탈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BMW가 벤츠를 앞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선두 탈환을 위해 꺼내든 다양한 전략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출시한 신차를 발 빠르게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는 점이다.

“보통 BMW 본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신차를 내놓으면 늦어도 6개월 안에 이를 한국 시장에 선보인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반응이 좋은 신차들은 일정을 당겨 더 빨리 내놓기도 하는 등 한국 시장에 유독 신경을 쓰는 상황이다.” BMW 관계자의 말이다.

모델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수입차 경쟁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신차가 한국 시장에서 판매되기까지는 보통 6개월 이상이 걸린다. 1년이 넘어 한국 시장에 선보이는 일도 종종 있다. 아우디의 주력 제품인 ‘A6 모델(C8)’은 2018년 5월 글로벌 시장에서 출시됐지만 2019년 10월이 돼서야 한국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하기도 했다.

BMW는 다르다. 올해 출시한 차량들만 보더라도 ‘XM’, ‘M2’, ‘X5’, ‘X6’ 등의 신차가 글로벌 시장과 한국 시장에서 거의 동시에 발매됐다.
풀 체인지 5시리즈 출시로 1위 굳힌다안정적인 물량 공급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수입차 브랜드의 인기 차종은 차량을 인도받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길게는 대기 시간이 1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BMW는 이 부분을 최소화했다. 빠른 차량 인도를 앞세워 긴 대기 시간으로 인해 이탈할 수 있는 고객들을 잡았다.

이는 본사와 긴밀한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BMW코리아는 본사와의 소통으로 매달 적절한 물량을 공급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국은 BMW에는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시장”이라며 본사와 밀착 협력할 수 있는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 BMW는 파격적인 프로모션까지 앞세워 소비자들을 유인했다. 각각의 딜러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BMW는 수입차 가운데서도 할인 폭이 큰 브랜드다.

특정 모델이 부분 변경이나 완전 변경을 앞두고서는 1000만원이 넘는 할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할인을 거의 하지 않는 벤츠와는 대조되는 행보다.

물론 수입차업계에서 파격적인 프로모션은 ‘양날의 검’이다. 큰 할인으로 고객을 유인할 수 있지만 ‘고급 이미지’가 퇴색할 수 있어 문제다.

벤츠는 상대적으로 낮은 할인율을 유지해 독일 3사(벤츠·BMW·아우디) 가운데 가장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고급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크게 바뀌면서 벤츠의 ‘고급 브랜드 전략’이 예전만큼 먹혀 들지 않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고급 수입차의 기준이 많이 높아졌다. 이제는 포르쉐·벤틀리 정도는 타야 이른바 ‘하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워낙 초고가 수입차를 타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고급차의 대명사였던 벤츠 브랜드의 파워가 예전같지 않아졌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벤츠 역시 최근에는 할인 폭을 크게 늘려 차량을 판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BMW에 미치지는 못한다. BMW는 하반기를 맞아 할인 폭을 더욱 키우며 판매를 끌어올리고 있다. 8월만 보더라도 BMW 520이 896대가 팔리며 BMW 벤츠 E 250(842대)을 제치고 수입차 베스트 셀링카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자동차업계에서는 BMW가 마냥 1위 탈환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BMW는 지난해에도 줄곧 판매량에서 1위를 유지하다가 연말에 ‘막판 뒷심’을 발휘한 벤츠에 밀리며 아쉬운 2위에 머무른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BMW는 자신한다. 하반기 판매량을 견인할 대어급 신차가 출격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BMW는 10월 전 세계 최초로 5시리즈 풀 체인지 모델을 한국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1위 굳히기가 유력해 보이는 이유다.
BMW가 10월에 선보이는 뉴 5시리즈.
BMW가 10월에 선보이는 뉴 5시리즈.
5시리즈의 풀 체인지 모델 출시는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특히 기존 5시리즈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혀 왔던 ‘구식 스타일’의 내부 인테리어가 이번에 확 바뀌는 만큼 많은 소비자들이 신차 선택지에 5시리즈를 올려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벤츠는 내년 초 E 클래스 풀 체인지 모델을 한국에서 출시할 계획이다.

벤츠 E클래스와 함께 BMW 5시리즈는 브랜드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모델이다. 두 차종의 판매 실적이 곧 브랜드 순위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풀 체인지 5시리즈를 통해 BMW의 판매가 4분기에도 견고한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1위는 사실상 BMW에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향후 수입차업계의 판도를 예상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