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 2월 네이버 1784를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데이터인공지능청 관계자가 로봇 팔 앰비덱스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제공
2023년 2월 네이버 1784를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데이터인공지능청 관계자가 로봇 팔 앰비덱스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제공
중동이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플랜트·그린에너지·스마트시티·콘텐츠·서비스 등 전 산업 분야에서 수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에 서울의 44배 크기인 2만6500㎢(약 80억 평) 규모의 초대형 스마트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총사업비만 5000억 달러(약 664조원)에 달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네옴시티 외에도 메가 프로젝트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은 2022년 네옴시티 ‘더 라인’ 사업 중 1조3000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현대건설은 올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인 아람코가 발주한 50억 달러 규모의 아미랄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도 따냈다. 아람코의 파드힐리 가스전과 자푸라 가스전 2단계 프로젝트 추가 수주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HD현대, 건설 장비 수주 잭팟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따른 조선·건설기계 기업들의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HD현대는 정기선 사장이 9월 8일 야시르 오스만 알 루마이얀 아람코 회장 겸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총재와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사우디발 수주 낭보를 잇따라 전하고 있다.

루마이얀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이자 금고지기로 불린다. 그가 이끄는 PIF 운용 규모는 6000억 달러에 이른다. HD현대는 정 사장 주도 아래 조선과 건설기계 분야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6년 주베일항 공사를 수주하면서 시작된 현대가(家)와의 인연이 손자까지 이어지고 있다.

HD현대는 사우디아람코개발회사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해운사인 바흐리와 손잡고 축구장 700개 넓이인 496만㎡ 부지에 합작 조선소(IMI)를 건설 중이다. IMI 조선소는 중동 지역 최대 조선소로,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HD현대는 독자 개발한 ‘힘센엔진’을 생산하는 선박 엔진 공장을 지난 6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주베일 인근 라스 알 헤어 지역의 킹살만 조선 산업단지에서 착공했다. 아람코는 2019년 HD현대오일뱅크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하며 2대 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9월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건설 업체인 알 나자즈와 네즈마&파트너즈와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53톤 대형 굴착기 30대와 대형 휠로더 50대 등 총 80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HD현대인프라코어가 현재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한 건설 장비는 총 846대로 전년 동기 대비 51.6% 높은 수치다.

HD현대건설기계는 네옴시티 더 라인 건설 현장에 40톤급 굴착기 12대, 대용량 버킷(5.6㎥) 휠로더 5대 등 50대를 수주해 지난 8월 중순 공급을 완료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올해 2분기 중동에서 전년 동기 대비 97%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건설 현장에 공급된 HD현대건설기계 40톤급 굴착기(HX400A). 사진=HD현대건설기계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건설 현장에 공급된 HD현대건설기계 40톤급 굴착기(HX400A). 사진=HD현대건설기계 제공
탈석유 거센 파도…그린 에너지 수주 기대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미래 지향적, 지속 가능한 친환경 인프라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태양광·풍력·그린 수소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관련 수주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송·변전 건설 전문 기업 알 지하즈와 678억원 규모의 전력 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네옴시티 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알 지하즈가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지역에 새롭게 구축하는 마운틴 변전소용 제품으로, HD현대일렉트릭은 변전소 구성에 필요한 초고압 변압기·고압 차단기·리액터 등 전력 기기 일체를 2025년 2월까지 패키지 형태로 공급할 예정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탈석유 시대에 발맞춰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과 ‘국가 재생에너지 프로그램’을 통해 2030년까지 국가 총 전력 생산량을 120GW로 확대하고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58.7GW를 태양광 33개, 풍력 11개, 태양열 4개 등 총 48개 신재생에너지 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에너지 전략 2050’을 통해 청정 에너지 개발, 탄소 저감 목표를 세웠다. 2050년까지 청정 에너지 비율 50% 이상, 탄소 배출량의 70% 저감을 추진 중이다.

카타르는 ‘국가 비전 2030’에 따라 기후 변화 대응을 추진하고 있고 국영 에너지 기업과 수전력청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2027년까지 1억2600만 톤으로 늘리고 2030년까지 전력 수요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신재생에너지 개발 움직임에 따라 한국의 태양광·수소·해상풍력 등 그린 에너지 분야 기업들의 수주도 기대된다.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2년 11월 17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SPA 제공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2년 11월 17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SPA 제공
IT·방산도 오일 머니 잡아라…총수들 총출동

네옴시티 프로젝트 발주가 본격화하면서 재계 총수들도 전방위 세일즈에 나서는 모습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0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추진 중인 가운데 삼성·SK·현대차 등 10대 그룹 총수들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설·인프라에 이어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추가 수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건설·인프라뿐만 아니라 한국형 스마트 시티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네이버 수주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요 그룹 총수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때 채선주 네이버 ESG·대외정책대표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2022년 11월 원희룡 장관이 주관하는 ‘원팀코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수주지원단에 네이버가 참여하면서 교류를 이어 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자치행정주택부 장관 일행 등이 네이버 제2사옥인 1784를 방문한 뒤 네이버와 디지털 전환 관련 업무 협약을 맺었다. 네이버 1784는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이자 테크 컨버전스 공간으로 기술 수출의 전진 기지가 되고 있다.

UAE를 구성하는 토호국 중 하나인 샤르자에미리트의 셰이크 사우드 술탄 빈 무함마드 알 카시미 왕자 등 샤르자 왕실 고위 대표단도 지난 6월 네이버 1784를 방문해 다양한 첨단 기술을 공간과 융합한 테크 컨버전스 사례들을 직접 체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네이버 1784 방문 당시 디지털트윈·로봇·인공지능(AI)·클라우드 기술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도 중동 특수를 노리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22년 11월 방한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에너지, 방위 산업, 인프라·건설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방한한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과 국방·방산협력 강화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국제 정세가 급변함에 따라 한국 방산업계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중국·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 중 하나인 동시에 미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지만 최근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시아·유럽 국가로 무기 공급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신형 잠수함 도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