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 회담이 끝났다. ‘무기 거래 협상’이라는 직접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초청했던 푸틴 대통령보다 초청받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둘렀던 것은 날로 악화되는 경제로 최고조의 이른 북한 인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목적도 강했다는 것이 서방 측의 시각이다.

북한 경제는 농업·광업 등 1차 산업에 좌우되는 천수답(天水畓)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고착화되는 추세다. 한때 기상 조건이 좋아 이례적으로 풍작을 기록했던 해도 있었지만 극심한 가뭄 피해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마이너스 성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경제의 앞날은 지금보다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시장 경제 도입 등의 획기적인 개혁 조치가 없으면 북한 경제가 살아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공포 정치로 치닫고 있는 김정은 체제도 조만간 붕괴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더 주목되는 상황이다.북한의 전략, 죄수의 딜레마북한이 경제 사정에 따라 남한과의 관계를 모색할 때 전통적인 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가장 잘 활용한다. 다른 참가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최대 이익이 되는 경우의 수를 선택하면 최악의 게임 결과(pay off)를 낳는 것이 이 법칙의 골자다.

이미 북한에 대한 외국인 투자와 각종 국제 사회 지원 등이 중단돼 경제 고립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진 지 오래됐다. 남북한 간의 관계 진전이 있을 때마다 간헐적으로 형성됐던 북한 채권 거래도 이제는 완전히 실종됐고 가격도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할 수준까지 떨어졌다.

북한 돈인 원화 가치도 폭락하고 있다. 북한 원의 환율은 달러당 100원이지만 암시장(black market)에서는 1만원 내외에서 거래된다. 100원에 환전한 1달러를 암시장에 내다 팔면 최소한 9900원을 벌 수 있다는 의미다. 공식 시장 접근이 가능한 북한의 권력층들이 엄청난 환차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요즘 북한의 외환 시장이다.

공식적인 환율과의 괴리를 더 벌어지게 해 김정은 측근들이 환차익을 더 얻기 위해서는 암시장에 유입되는 외화(미국 달러화)를 차단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을 포함한 대외 무역과 외국인 관광, 심지어 개성공단을 차단하는 것을 국제 금융 시장에서 이런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외화 공급을 차단해 나가면 체제 유지를 위한 외화 조달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 외화 가득액은 1년에 50억 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부분 김정은 위원장의 비자금 성격을 띠고 있는 북한의 검은돈은 조세 피난처에 숨겨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서방에 대해 ‘디폴트(국가 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북한이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해 필요한 외화를 조달했다. 그 후 거래되는 북한 채권은 1970년대 중반 이전에 발행했거나 상환 불능 처리된 북한 채무를 바탕으로 BNP파리바 등이 발행한 세컨더리 채권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북한의 외화 조달은 구소련 등 동맹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이른바 냉전 시대에 구소련은 공산주의 체제 결속을 위해 북한에 외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북한도 시베리아 지역 등에 벌목공 파견 등이 왕성하게 이뤄졌다.

냉전 시대가 종식된 이후 1990년대 북한의 외화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궁여지책 속에 고안해 낸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 기구에 가입하는 길이다. 하지만 각종 국제 금융 기구 가입에 최대 의결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외화 조달이 더 어려워졌다. 위조 100달러 미화인 슈퍼 노트 발행, 마약 밀거래 등은 국제 사회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많아졌다.
통일 후 동북 벨트의 산업 거점들 
    자료: 미래에셋증권
통일 후 동북 벨트의 산업 거점들 자료: 미래에셋증권
동서독 통합 전례 적용해 보니결국 이런 사태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고 어느 순간에 남한을 포함해 서방에 유연한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통일론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중 화해 협력 정책(engagement policy)을 전제로 이뤄지는 점진적 통합의 효용성은 북한의 정책과 제도적 기반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남한의 경제적 관점에서는 생산물 시장(product markets)에 미칠 영향은 미미한 반면 요소 시장(factor markets)에 미칠 영향은 잠정적으로 크기 때문에 통일이 야기할 정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투자에 전 재산을 걸겠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상품 투자의 귀재라고 하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한 말이다. 로저스 회장의 북한 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 투자를 권유한다면 북한 경제가 좋고 앞으로 계속 좋아질 것인가부터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요인은 아니다.

북한 돈을 투자 대상으로 하는 것은 화폐 교환 비율 때문이다. 독일의 예처럼 약세국인 동독이 강세국인 서독에 흡수 통일될 경우 화폐 교환 비율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동독의 화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동서독 통합 때 동독 화폐는 현실 가치보다 높은 ‘1(서독)=1.8(동독)’로 교환하도록 합의했다.

동서독 통합의 전례를 그대로 남북한에 적용해 보자. 현재 남한 화폐는 달러당 1300원 내외에서, 북한 화폐는 암시장에서 1만원에 거래된다. 통일 후 화폐 교환 비율이 ‘1(남한) 대 7(북한)’보다 낮게 설정하면 현시점에 북한 돈을 가진 사람은 이익을 보게 된다. 동서독처럼 ‘1=1.8’로 설정된다면 400% 이상의 이익을 볼 수 있다.

북한 채권 투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거래되는 북한 채권은 1970년대 후반 서방에 대해 디폴트 선언 이전에 발행했던 것과 디폴트 선언 이후 북한 채권 유동화 목적으로 서방 은행이 재발행한 것으로 구분된다. 투자 목적은 북한이 변제 능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유보다 남북한 통일 때 찾아올 수 있는 이익 때문이다.

현재 북한 채권의 가격은 10센트를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 위기 직후 김정일 체제에서는 4센트까지 추락했다. 김정은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채권에 투자할 때 수익을 따져보면 액면가 1달러짜리 북한 채권을 현재가 10센트로 사 앞으로 통일이 돼 통일 한국이 북한의 채무를 떠안아 액면가대로 변제한다면 900%의 수익이 난다. 북한 채권의 잔액을 감안하면 액면가대로 변제하더라도 통일 한국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변제한 전례가 없다.

북한 채권 투자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채권 투자자와 통일 한국이 공동 분담해 ‘헤어 컷(손실 분담)’ 비율을 50%로 설정한다면 수익률은 200%로 줄어든다. 북한 채권은 특수채만 취급하는 영국 금융 중개 회사인 이그조틱스에서 구입할 수 있다. 북한은 세계 3대 신용평가사에서 국가 신용 등급을 평가받지 못한다.

로저스 회장 등이 북한 돈과 채권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북한이 언제 통일될지 모른다. 통일되더라도 남북 화폐 간 교환 비율이나 북한 채권에 대한 헤어 컷 비율 등이 어떻게 결정될지도 불확실하다. 북한 돈과 채권 투자는 재테크에서 피해야 할 최대 적(敵)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