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이태원 상권./서범세 기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이태원 상권./서범세 기자
“4년간 꾸준히 잘되던 카페가 갑자기 적자가 날 줄 몰랐죠.”

마포구에서 5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A 씨는 지난 6월부터 3개월째 적자를 내고 있다. 올 초까지는 재료비·임대료·인건비를 제외해도 A 씨에게 떨어지는 순수익이 1000만원 안팎이었다.

A 씨의 카페는 평일 인근 직장인들의 수요가 탄탄했고 주말에는 데이트 명소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우유 값과 인건비가 급격하게 올랐고 가계 사정이 어려워진 손님들은 지갑을 닫았다.

A 씨는 “재료 값도 문제지만 손님이 급격하게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라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저렴한 프랜차이즈를 찾는 고객은 꾸준하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개인 카페는 타격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만의 일이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말 전국 커피 음료점 사업자 수는 9만3000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존속 연수는 3년 2개월이었다. 기타 음식점의 평균 존속 연수 역시 6년 6개월에 그친다. 법이 정한 임대차 계약 기간인 10년이 되기도 한참 전에 도산하는 것이다.

한경비즈니스가 만난 자영업자들은 입을 모아 “코로나19 사태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코로나 때보다 어려워"…치솟는 물가에 지갑 닫는 소비자[벼랑 끝에 선 자영업]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소득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소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4분기 소득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자영업자의 지난 1분기 소득 수준은 92.2에 머물렀다.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끝났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부담이 높아지면서 자영업자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지난해보다 30% 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재호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중소기업중앙회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폐업으로 인한 공제금 지급 건수는 7만806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늘었다.“자영업자 영업이익보다 인건비가 더 높다”
“코로나 때보다 어려워"…치솟는 물가에 지갑 닫는 소비자[벼랑 끝에 선 자영업]
물가와 임금 상승이 직격탄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기준 월평균 인건비는 291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4%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상공인의 월평균 영업이익은 281만7000원으로 영업이익보다 인건비가 더 높았다.

2018년부터 홍대에서 양꼬치집을 운영하다가 지난 3월 폐업한 구성재(40) 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이 풀린 후 단축 영업을 끝내고 심야 영업을 하려고 했지만 인건비가 높아 영업시간을 연장할수록 오히려 손해인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의 파고는 자영업자를 가장 먼저 덮친다. 대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 씨는 9월 말 우유 다섯 박스를 미리 쟁였다. 10월 1일부터 우유 가격이 일제히 올랐기 때문이다. B 씨는 “납품처로부터 우유 가격이 150원 오른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맛 때문에 우유를 바꾸지도 못하고 동네 장사라 가격을 올리기도 힘들어 고민이 커졌다”고 말했다.

흰 우유 가격 인상은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낙농가와 우유업계로 구성된 낙농진흥회는 10월 1일부터 원유 가격을 리터당 88원, 8.8% 올렸다. 그러자 우유업계에서는 줄줄이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11월부터 흰 우유 제품인 ‘나100%우유(1L)’ 출고가를 대형마트 기준 3%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농산물 가격과 유가도 크게 올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1.16(2015년 100기준)으로 전월 대비 0.9% 올랐다. 국제 유가 오름세에 석유 제품이 큰 폭으로 뛰었고 농산물 물가지수도 상승했다. 지난 8월 농산물가격지수는 지난해 8월 대비 7.8% 뛰었는데 이 중 곡물·식량 작물은 11.5%, 채소·과실은 8.2% 올랐다. 소비자 월급 줄자 발길 끊겼다소비자들의 심리도, 지갑 상황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9월 26일 발표한 ‘소비자 동향 조사’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9.7로 지난 5월 이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 생활 형편, 생활 형편 전망, 가계 수입 전망, 소비 지출 전망, 현재 경기 판단, 향후 경기 전망 등 6개 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지표로 100보다 높으면 소비 심리가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황희진 한국은행 통계조사팀장은 “글로벌 경기 회복 지연에 따른 수출 부진 우려, 체감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을 반영한 소비자들의 실질 임금도 지난해보다 월 5만3000원 줄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8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명의 1~7월 월평균 실질 임금은 355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줄었다. 매년 1~7월 기준으로 실질 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관련 통계 작성 연도인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 1000조원 넘었다
“코로나 때보다 어려워"…치솟는 물가에 지갑 닫는 소비자[벼랑 끝에 선 자영업]
고정비용은 증가하고 수익은 낮아지면서 대출로 연명하는 자영업자도 크게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1분기말 1033조7000억원에 달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51%나 급증했다. 소득이 더디게 개선되는 자영업자의 대출이 빠르게 늘면서 자영업자 빚의 부실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월 말 소상공인이 은행에서 받은 개인 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45%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25%포인트 높아져 기업 대출 가운데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대기업 연체율이 0.02%포인트 낮아진 것과 대조된다.

2금융권에서 자영업자가 빌리는 대출의 부실 위험은 더 심각하다.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개인 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 6월 말 6.35%로, 지난해 6월 말 1.78%에서 1년 만에 3.5배 급증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이 3년 안에 폐업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그 이유로는 영업 실적 지속 악화(29.4%), 자금 사정 악화, 대출 상환 부담(16.7%), 경기 회복 전망 불투명(14.2%) 등 금융비용 부담이 컸다. 고금리 상황에서 높아지는 고정비용을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추광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어두운 경기 전망 속에 다른 대안이 없거나 대출금·임차료 등의 부담으로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고려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내수 활성화 촉진 등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줄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